2019
| 저자 | 김광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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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지는 시간에
일출봉 동암사에 만발하는 수국들, 수십 수백의
봉오리들이 한 꽃을 이루고 분홍 보라 청 그리고 백색
찬란하게 초여름을 빛내다가 한여름이 들어서자마자
화상을 입고 몸서리치며 일그러지는 소신공양
꽃이 핀다고 꽃 같은 시절만 있었으랴.
영욕의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다 피폐해지기는 한다지만
저 모양만큼 극명하게 다른 것이 있을까.
다른 꽃들이 일제히 지고 있는 시간에
구석에서 눈치만 보고 있다가 뒤늦게 피고 있는 꽃도 있다.
꽃들이 만발한 틈 속에서
꽃망울을 수줍게 내밀다가, 그러다 말겠지 싶었는데
화사하게 제 모습을 뽐내고 있는 꽃
늦게 피어서 더 아름다운 것인지
짠하게 있어서 더 매혹적인 것인지
늦둥이 꽃을 보면서는 쉽게 눈을 뗄 수가 없는데
피고 지는 모습을 한 무더기에서 동시에 보이고 있는 꽃들,
절간을 울리는 염불 소리를 듣고 있었던 것이다.

김광기 ㅣ
충남 부여 출생. 1995년 시집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호두껍질』 『데칼코마니』 『시계 이빨』 등, 시론집 』존재와 시간의 메타포』 등이 있음. 〈수원예술대상〉〈한국시학상〉 수상. 계간 《문학과사람》 발행인.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9년 09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