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2019
Extra Form Output
저자 양균원 

까마귀처럼 가라

 

 

 

가지에서 가지로

까마귀처럼 가고 싶다

나를 보내는 너의 시각에서

가도 가도 풀밭인 곳으로

너의 중심을 떠나

한 걸음에 풀 서너 포기씩

나의 중심도 풀 서너 포기에 한 걸음씩

뒤에 남겨두고

농담이 살아 숨 쉬는

수묵화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끝없이 이어지는 풀, 풀

풀 곁에 풀로 걷고 있다

네 이름을 부르니 풀벌레가 날아간다

네 손을 잡으니 풀씨가 흩어진다

시작이 없어서 끝이 없는,

이곳이 사막이라면 풀은 모래다

이곳이 바다라면 풀은 물이다

내려놓기에는 그만인 이곳

먼 산이 자꾸 낮아진다

세상의 모든 것이 풀 높이로 내려와

허공에 밑줄을 긋는다

가도 가도 싱겁게 푸른 십리에서

난, 드디어 아무것도 아닌

나일 수 있을 것,

이렇게 가고 싶다

​

​

 

 

 

 

 

 

 

 

 

 

 

 

 

SE-69786d8e-7eec-4118-a869-66690676b859.jpeg

양균원 ㅣ

전남 담양 출생. 1981년 《광주일보》, 2004년 《서정시학》 등단. 시집 『허공에 줄을 긋다』 『딱따구리에게는 두통이 없다』, 연구서 『1990년대 미국시의 경향』 『욕망의 고삐를 늦추다』가 있음.

​

​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9년 0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