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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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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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네 목소리

 

 

 

  볼륨을 낮출 때마다

  고함지르며 다가서는 너에게

  차라리 보청기나 껴보지 그래!

  덩달아 언성이 높았던 나였다

  파장의 둘레로

  쇳물이 흘러넘친다

  응고는 되겠지만 굳어버린다 해도

  누구의 침묵이 아닐 것이다

  중심이 무너져야

  생활은 자리 잡는 것,

  차마 내치지 못하고

  무심한 듯 둘러대지만

  이 허영에도 간절함은 있다는 것,

  멀어지며 흐려질 너의 무게를

  나는 언제까지 견뎌낼 수 있을까?

 

 

 

 

 

 까마귀

 

 

 

  기른다는 새가 하필 까마귀냐고,

  모과나무 가지에 앉아 우짖던 것이

  산책길까지 따라와 깍깍거린다

  흉조라는 저 새, 내 속을 제가 안다는 듯

  갈퀴 같은 파뿌리를 게워낸다

  소문을 송두리째 져다버리려고

  종일 앉았다 가는 강가에는

  찢어발긴 넋두리뿐인데

  너는 어둠이 빚어 보낸 전령일까?

  거기까지 따라와 하루를 휘젖는다

  이제 내가 거두는 것은

  부리뿐인 악다구니의 새,

  갈가리 물어뜯길

  귀청이나 가엾게 여기라고!

 

 

 

 

 

 

 

 네 살의 사랑

 

 

 

  사랑이라는 말뜻을 세 돌잡이가 알까마는

  할아버지 사랑해요, 세계의 저쪽에서

  말을 막 배운 손자가 솜사탕을 건넨다

  사랑은 그렇지 태평양을 건너뛸 만큼

  지척에서 용약하지, 일흔이 넘도록 간직해온

  나도 내 네 살의 사랑을

  기억이라는 희미함으로 떠올려본다

  두 세대를 지나 이제야 들춰보는

  제적등본이라면 누구도

  네 살의 기억을 믿지 않겠지만

  그때 일 나는, 어렴풋이 기억한다

  굴뚝에 덧댄 사랑채 댓자리 위에 눕혀져 있던

  주검은 누구였을까, 네 살을 밖으로 내몰고

  묵묵부답으로 돌아앉은

  환상으로만 장면인 의식의 밑자리

  소문으로 피어올랐던 파란을 사망 신고하고

  다시 태어난 일생이 되어 묵호며 속초로

  캐나다며 또 어디로 흘러가 버린 그때의 수족들을

  지금 누가 맞춰보고 있는가?

  솜사탕인 채 태평양을 건너오는

  그 네 살을 향해, 나도 사랑한다,

  황급히 되받는다, 오랜 부채인 그 마음으로!

 

 

 

 

 

 

 

 


자선시


 

 

 

 

 

 언니

 

 

 

  엄니의 큰 딸이 언니니 엄마 대신이라고

  쌍둥이 자매의 서열은 호되게 훈육된 탓인지

  자리를 바꿔 앉아도 동생은 어느새 뒷자리

  그래, 언니는 엄마의 한 끗 아래니

  (ㄴ은 ㅁ을 내려 깎은 형상)

  언니는 동생 뒤로 숨으려하지 않았다

  완강하던 키도 쪼그라들어

  앞뒤로 구르며 저기,

  팔순의 자매가 기우뚱거리며 걷고 있다

  무덤까지 함께 갈 기세라도

  아우는 언니 다음이므로 제 차례에 마음 쓰인다  

 

 

 

 

 

 지상의 시간

 

 

 

  오월 막바지의 꽃 넝쿨장미가

  혈맹으로 뭉쳐 치렁거리는 언덕길을 내려가다가

  문득 그대 없는 세상에 십 년 하고도 오 년을

  그림자 끌며 흘러왔다는 생각에

  갑자기 그쪽 형편은 어떠냐고 묻고 싶다

  그대는 아직도 이 골목의 시인이니

  새로 쓴 시가 궁금하고

  나는 물구나무 세운 그늘 집이었음을

  활짝 핀 꽃송이들로 오늘따라 쓸쓸해진다

  젊음은 소란스럽지, 예전처럼 늙어서

  노회한 시의 가슴을 더듬을 때

  만져지는 것은 몰라보게 겹진 주름들,

  저 불꽃장미 또한 지상의 꽃이니

  며칠만 타올랐다 스러지는 것을

  나는 여한 없이 바라본다, 저버린

  약속이 없었음을 시간은 일러주리라

  며칠 내 물음처럼 맴돌던

  언덕 위 아카시야 향기도 어느새 지워졌다

  낙화의 티끌로 오는 신생이란

  이렇게 얼룩지는 후일담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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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등단.

시집 『동두천』 『파문』 『여행자 나무』 『기차는 꽃그늘에 주저앉아』 『이 가지에서 저 그늘로』 등이 있음.

〈소월시문학상〉〈현대문학상〉〈대산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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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기억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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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인의 신작시는 나이 들어 흐려진 육체의 감각으로 세상사를 바라보고 자신을 돌아본다. 선명한 선 긋기가 가능했고 재바른 몸놀림으로 몸 바꾸기도 가능했던 젊은 날의 감각을 뒤로 하고 경계가 흐려지고 무뎌지고 무너지는 감각을 쓸쓸하게 반추한다. 젊은 날 감각하던 세상이 달랐던 것처럼 노년으로 접어드는 시간 속에서 감각하는 세상도 다를 수밖에 없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던 이전의 감각에 변화가 생기고 그에 따라 젊은 날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시간과 공간을 경험하게 되면서 김명인의 시적 주체는 온몸과 마음으로 변화를 겪고 있다. 시적 주체가 통과해온 시간을 다시 바라보고 나이 들어 가는 자신을 감각하면서 시적 주체 자신과 타자와 세계를 다른 감각으로 인식하고 성찰하는 모습이 이번 신작시에서 포착된다.

 

볼륨을 낮출 때마다

고함지르며 다가서는 너에게

차라리 보청기나 껴보지 그래!

덩달아 언성이 높았던 나였다

파장의 둘레로

쇳물이 흘러넘친다

응고는 되겠지만 굳어버린다 해도

누구의 침묵이 아닐 것이다

중심이 무너져야

생활은 자리 잡는 것,

차마 내치지 못하고

무심한 듯 둘러대지만

이 허영에도 간절함은 있다는 것,

멀어지며 흐려질 너의 무게를

나는 언제까지 견뎌낼 수 있을까?

― 「네 목소리」 전문

 

나이 듦은 대개 몸이 먼저 체감한다. 시력이 떨어지고 가청범위가 줄어들어 청력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모든 감각이 둔화된다. 급속도로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우리 사회에서는 노후에 대한 아무런 준비 없이 몸의 노화를 먼저 경험하게 되는 일이 부지기수다. 노인들을 위한 복지나 문화 시설, 문화 프로그램 등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노인층을 제외한 대부분의 노인들은 텔레비전 앞에 하루 종일 방치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시에 등장하는 상황도 비슷해 보인다. 텔레비전 앞에서 “볼륨을 낮출 때마다/ 고함지르며 다가서는 너에게/ 차라리 보청기나 껴보”라고 덩달아 언성을 높이던 자신을 시의 주체는 돌아보고 있다. 이 말이 과거형으로 쓰인 것으로 보아 시의 주체도 너의 상황을 이해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듯도 하다. 너의 고함과 나의 고함, 그 “파장의 둘레로/ 쇳물이 흘러넘친다”. 이들의 고함이 육체의 녹슮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파장의 둘레로 흘러넘치는 것은 쇳물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들을 수 있던 것을 들을 수 없게 되고 볼 수 있던 것을 돋보기에 의존하지 않고는 볼 수 없게 되는 일. 아무런 문제없이 해내던 일들을 예전의 속도로 해낼 수 없고 몸의 속도가 점점 더 느려지고 생각이 산만하게 흩어지는 경험. 아마도 나이 든다는 것은 이런 일들에 익숙해지는 일이겠다. 그것은 무너짐의 감각을 이해하는 일이 아닐까. 시의 주체는 “중심이 무너져야/ 생활은 자리잡는 것”임을 깨닫는다. 살면서 누구나 수차례 무너짐을 경험하겠지만 중심이 무너지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비로소 노년의 삶도 생활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고함지르며 다가서는 너를 “차마 내치지 못하고/ 무심한 듯 둘러대지만/ 이 허영에도 간절함은 있다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네 목소리는 다름 아닌 내 목소리이기도 할 것이므로, 중심이 무너져야 생활이 자리 잡는 것임을 모르지 않지만 짐짓 무심한 척 “너의 무게”를 시의 주체는 견디고자 하는 것이겠다. “멀어지며 흐려질 너의 무게를” 견디는 일은 시의 주체가 아직은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자 하는 자존심이자 조만간 무너질 쓸쓸한 운명이라고 할 수 있다.

 

기른다는 새가 하필 까마귀냐고,

모과나무 가지에 앉아 우짖던 것이

산책길까지 따라와 깍깍거린다

흉조라는 저 새, 내 속을 제가 안다는 듯

갈퀴 같은 파뿌리를 게워낸다

소문을 송두리째 져다버리려고

종일 앉았다 가는 강가에는

찢어발긴 넋두리뿐인데

너는 어둠이 빚어 보낸 전령일까?

거기까지 따라와 하루를 휘젖는다

이제 내가 거두는 것은

부리뿐인 악다구니의 새,

갈가리 물어뜯길

귀청이나 가엾게 여기라고!

― 「까마귀」 전문

 

“모과나무 가지에 앉아 우짖던” 까마귀가 “산책길까지 따라와 깍깍거린다”. “흉조라는 저 새”의 울음소리가 시의 주체는 영 달갑지 않다. 시커먼 새의 형상과 깍깍거리는 울음소리, 거기에 흉조라는 선입견까지 더해져, 까마귀 울음소리가 “내 속을 제가 안다는 듯/ 갈퀴 같은 파뿌리를 게워”내는 소리로 들렸기 때문이겠다. 그 소리를 못내 못마땅해 하는 데에서 시적 주체의 불안이 감지된다. 깍깍거리는 까마귀 소리는 어딘지 불길하고 시의 주체가 시달렸을 소문을 상기시켰을 것이다. 불길하고 불안한 소리라는 점에서 까마귀 울음소리와 소문은 어딘지 닮았다. “소문을 송두리째 져다버리려고/ 종일” 강가에 앉았다 가 보지만 “찢어발긴 넋두리”처럼 찢긴 마음의 상처가 너덜너덜할 뿐이다. 치유와 망각의 장소가 되어야 할 강가까지 따라와 우짖으며 그의 하루를 휘젓는 까마귀를 보며 시의 주체는 까마귀가 “어둠이 빚어 보낸 전령”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나이 듦이 늘 고요함과 평온함을 동반하는 것은 아니다. 시의 주체의 평온한 일상을 훼방 놓으며 집요하게 따라다니는 까마귀 울음소리는 이미 바깥의 소리를 넘어 시의 주체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이기도 하다. 소문에 휘둘리고 악다구니에 물어뜯기는 시의 주체의 흉흉한 마음을 까마귀 울음소리가 불길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까마귀의 갈퀴 같은 울음소리와 찢어발긴 넋두리, “부리뿐인 악다구니의 새”, “갈가리 물어뜯길/ 귀청”에서 연상되는 청각적 감각과 어둠의 상징인 까마귀의 형상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면서 이 시는 악다구니의 상처 입은 마음을 인상 깊게 그려낸다.

 

사랑이라는 말뜻을 세 돌잡이가 알까마는

할아버지 사랑해요, 세계의 저쪽에서

말을 막 배운 손자가 솜사탕을 건넨다

사랑은 그렇지 태평양을 건너뛸 만큼

지척에서 용약하지, 일흔이 넘도록 간직해온

나도 내 네 살의 사랑을

기억이라는 희미함으로 떠올려본다

두 세대를 지나 이제야 들춰보는

제적등본이라면 누구도

네 살의 기억을 믿지 않겠지만

그때 일 나는, 어렴풋이 기억한다

굴뚝에 덧댄 사랑채 댓자리 위에 눕혀져 있던

주검은 누구였을까, 네 살을 밖으로 내몰고

묵묵부답으로 돌아앉은

환상으로만 장면인 의식의 밑자리

소문으로 피어올랐던 파란을 사망신고하고

다시 태어난 일생이 되어 묵호며 속초로

캐나다며 또 어디로 흘러가버린 그때의 수족들을

지금 누가 맞춰 보고 있는가?

솜사탕인 채 태평양을 건너오는

그 네 살을 향해, 나도 사랑한다,

황급히 되받는다, 오랜 부채인 그 마음으로!

― 「네 살의 사랑」 전문

 

말을 막 배운 네 살배기 손자가 난데없는 고백을 한다. “할아버지 사랑해요”라고. 시의 주체에겐 이 말이 “세계의 저쪽에서” 들려오는 말 같다. “사랑이라는 말뜻을 세 돌잡이가” 알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는 “할아버지 사랑해요”라는 말에 동요된다. 마치 달콤한 솜사탕처럼 건네진 사랑이라는 말은 “태평양을 건너뛸 만큼” 용약하고, 그 설렘과 기쁨의 감정으로 시의 주체는 “네 살의 사랑을/ 기억이라는 희미함으로 떠올려본다”.

그러나 네 살배기 손자의 사랑이라는 말에 겹쳐지는 시의 주체의 “네 살의 기억”은 달콤하기는커녕 “두 세대를 지나 이제야 들춰보는/ 제적등본”처럼 저 “의식의 밑자리” 깊숙이 숨겨둬야 하는 비밀 같은 것이었다. 억울한 죽음이 있었지만 남은 목숨들이나마 부지하기 위해서는 침묵을 지켜야 했고 식솔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리고 그 기억은 매장되었다. “굴뚝에 덧댄 사랑채 댓자리 위에 눕혀져 있던/ 주검”과 “네 살을 밖으로 내몰고/ 묵묵부답으로 돌아앉”을 수밖에 없었을 어른들과 “소문으로 피어올랐던 파란을 사망신고하고/ 다시 태어난 일생이 되어 묵호며 속초로/ 캐나다며 또 어디로 흘러가”고 흩어질 수밖에 없었던 “그때의 수족들을” 시의 주체는 지금에 와서야 의식의 밑자리 깊숙한 곳에서 꺼내어 비로소 맞춰 보고 있는 것이다. “오랜 부채인 그 마음으로” 시의 주체는 이제 비로소 “나도 사랑한다”고 황급히 고백한다. 네 살 손자의 솜사탕 같은 말이 먼 기억 속의 네 살배기를 “솜사탕인 채 태평양을 건너오”게 만든 것이다. 희미한 기억 속으로 건너가며 시의 주체는 오래 전 자신과 비로소 화해의 악수를 나누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무너짐의 감각이 선사한 작은 선물 같은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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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경수 | 평론가

1999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평론 등단.

저서 『불온한 상상의 축제』 『한국 현대시와 반복의 미학』 『바벨의 후예들 폐허를 걷다』 『춤추는 그림자』 『이후의 시』 『너는 너를 지나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다시 읽는 백석 시』(공저) 등이 있음. 중앙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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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9년 0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