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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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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펴낸곳 (주)달아실출판사

출간일 2022년 12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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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아실시선 61.

2016년 《문학광장》으로 등단한 이선정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오민석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이번 시집은 한마디로 “시로 쓰는 시론서”일 것이다. 그는 이 시집에서 시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말하고 있으므로 이번 시편들을 ‘메타시(metapoetry)’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는 '중층의 언어'인 시, 또 '규정을 거부하는 언어'인 시를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시적 현실에 대한 시인의 비판은 치열한 언어적 수행을 자신의 문학적 동력으로 삼은 시인의 태도에서 나오는 것이니만큼 충분한 설득력을 지닌다. 이선정 시인은 이렇게 얘기한다. “시가 죽은 게 아니라 시인이 죽은 것이다. 시계가 죽은 것이지 시간이 죽은 게 아닌 것처럼.” 한 편의 시는 창작의 결과물이자 시인이 생으로 쓴 과정 자체이다. 시를 알고픈 누구에게라도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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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쓰는 시론

이선정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은 대단히 특이하게도, 시와 시인과 문단에 대한 촌철살인의 단검 던지기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하나같이 위트와 풍자, 해학이 넘쳐난다. 한 권 시집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니, 읽는 내내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그러나 때때로 그 미소는 쓴웃음으로 바뀐다. 이 휘황찬란한 시대에 문학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가? 외화내빈이 심한 우리 문단의 어둑어둑한 풍경도 그렇지만 최첨단 전자기기와 영상문화가 활자의 위축을 가져온 데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면서 왜 시가 필요한지, 왜 시인이 존재해야 하는지, 시종일관 날카로운 목소리로 力說하고 있다. 시인은 그 시대와 불화하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고 역설적으로 말하는 시인, 그이의 이름은 동해에 출몰하는 대왕고래처럼 박력이 있는 시인 이선정이다.

 

― 이승하(시인 · 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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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를 끼고 사는 이선정 시인은 나의 SNS 친구다. 등단은 남해를 베고 자는 내가 어찌어찌 앞섰지만, SNS에서는 그가 상수(上手)다. 이른바 팬덤이나 조회 수를 보면 시인은 동해 고래급이고 나는 남해안 납작납작 엎드린 새끼 도다리쯤 되려나 싶다. 차에 실어둔 귤 하나가 얼자 ‘따뜻한 아랫목에 모셔 3일장’을 치르는 따뜻한 시인이고, 옳은 길을 가지 않는 시인에 대해서는 쓴소리를 입속에 감추지 않는 엄격한 시인이다. 그래서 이번 시집에 시와 시인에 대한 애정과 지적이 많다. 이번 시집에 내가 먼저 쓴 적이 있는 「고래, 52」가 실려 있다. 우리는 같은 소재를 노래했지만 내가 고래 소리에 집착할 때 시인은 “고래가 닿지 못하는 소리 저 너머의 바다”와 “가장 신선하고 난해한 바다”를 보는 시인이다. 동해다운 넓이와 깊이가 부럽다.

 

― 정일근(시인 · 경남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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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친 고름을 찢었다

터뜨리고 보니 울음주머니였다”

ㅡ 「시인의 말」 中

 

 

 

 

 

 

 

  미슐랭의 시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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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씹을수록 구토가 나, 대체 뭐가 문제지? 분명 기존의 레시피대로 고급진 재료에 특이한 향신료를 썼거든, 이집 저집 얻어온 싱싱한 수사도 듬뿍 뿌렸어, 다행히 색다름에 중독된 몇은 맛을 몰라도 맛있다고 해, 독한 향에 길들여진 혀를 가져야 하거든, 진정한 미식가는 실종되었어, 아니, 그들의 서식처는 변두리, 실상 정체가 요리사인 변종 미식가들이 세운 고급진 레스토랑에 입장할 회원권이 없지, 콜로세움 같은 레스토랑에서는 솔직한 혓바닥을 숨긴 요리사들이 화려하게 토핑된 음식에 손뼉을 치며 매일 서로의 요리를 칭찬해, 변두리 미식가들을 철저히 외면한 채 줄줄이 코스로 나오는 새로움을 가장한 비슷한 요리를 씹지

 

  의도를 묻는 건 실례야

  굳이 찾자면, 아니야! 요리 안에는 없어

  혹시 그것을 담은 접시에 숨겼을지도 몰라

  접시의 갈비뼈까지 깊숙이 손을 넣어봐

 

  웃는 낯빛으로 서로를 탐색하며, 좀 더 특이한 향신료를 교환하며, 꾸역꾸역 구토를 즐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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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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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가 이해되기 시작한 건 슬픈 일이야

쓰고 또 쓰고

지우고 쓰고

또 쓰고 지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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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무한해

무한하다는 말은 왜 슬프지?

용솟음치든 꼬물거리든 자빠지든 무릎이 깨지든

어찌하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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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고래 청고래 향고래 범고래 혹부리고래

브라이드고래 아르누부고래 피그마부리고래

허브부리고래 부리고래부리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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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틀거린다, 휘젓는다, 내달린다, 난다, 움츠린다,

기진맥진한다, 베인다, 잠수한다, 숨통이 조인다,

베인다, 바다에 베인다, 놓지 못한다, 그냥 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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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가 점점 사라지는 건 바다가 무한하기 때문이야

무한한 바다의 갈퀴에 질식당하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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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구멍이든 파보면

오래전 사라졌던 눈이 퀭한 고래가

부리고래부리고래 자신을 벤 바다를 꿰매고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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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가 닿지 못하는 소리 저 너머의 바다

가장 신선하고 난해한 바다를 입에 문

슬픈 52Hz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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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일근 시인의 시 「고래, 52」가 있다. 52Hz로 홀로 노래하는 고래, 보통 고래의 주파수가 15~20Hz이기에 다른 고래들과 소통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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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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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라서 용서된다

실천문학, 문학동네, 문학과지성

그 이름이라 다시 본다

 

껍데기에 손톱만큼 붙은 명찰

개쑥같이 시를 써도 찰떡같이 문학성인가?

다시 살펴봐도 개쑥이면 내 눈이 상한 것

 

쓴 사람 이름을 그 이름 하나가 덮는

참으로 기이한 이름

 

그거 하나 붙이자고

5년째 문턱에 줄 서 있는 S

몇 개의 자잘한 상장 거머쥐고

10년째 달리고 있는 N

 

그리고 D, H, K.......

무수한 점들의 몸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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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에 연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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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시장 뒤져 품절된 시집을 겨우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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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 상급이라더니 첫 번째 시에서 벌써 밑줄,

그 밑줄에 발목 잡혀 더 나아가지 못한다

밑줄로 이어진 낯모를 이와의 끈끈한 연대

문장 아래 조아리고 참회했을 그의 고뇌와 손잡고

나는, 묵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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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는 안 되지만 이러기도 하였지

죄를 고하며 함께 기도하는 낯선 이의 손

동질감 어린 밑줄을 덧대고 덧대며

거기서, 운다

 

모르는 이여 묻겠네

자네를 밑줄 그은 오래된 문장을 기억하는가?

 

“수십 번도 더 내가 살해하고 용서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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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하 시집 『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세계사, 1991) 중 「길 위에서의 약속 ㅡ 볼프강 보르헤르트에 얽힌 추억」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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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ㅣ이선정

 

강원 동해 출생. 2016년 《문학광장》 등단.

시집 『치킨의 마지막 설법』, 시에세이집 『나비』가 있음.

2020년 강원문화재단 창작기금 수혜.

중앙대학교 일반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 수료.

계간 《동안》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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