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 저자 | 고주희 | ||
|---|---|---|---|
제 어깨에는 점 대신 검은 새가 앉아 있어요*
초목의 녹색 눈꺼풀 사이로
노래가 유기될 때
문득 내려다본
테니스 코트에는 공이 오가고
누가 보든 말든 열렬히
바람은 빈 곳을 찾고 있어요
땀이 비 오듯 흐르는 사람들
공에 입혀진 더운 소리를 타고
결국은 실어에 이르고 말
여름의 한계선까지
그 기나긴 어깨선 같은 사각의 끝엔
작고 까만 점들이 움직여요
낡은 옷장 같은 공터에는
둥지를 튼 무성한 풀들
하도 검어
한낮에도 불구하고 유령인 듯 정령인 듯
미세하게 녹슨 저 새들의 소리
나도 모르게 질끈 붙들었던
팔손이나무의 그늘에선
뜻밖에
사랑을 나누고 난 몸에서 나는
풀내가 나요
색이 섞인 줄무늬들의 회전인 듯
코트의 끝과 끝을 서브하는
새와 그 밖의 것들
벌레들은 한 번도
라켓을 내려놓은 적이 없고
득점 없이도 우리는 질주해요
* Sultan Stevens의 노래, 〈Mystery of love〉 중에서.

고주희 l
2015년 《시와표현》 등단. 시집 『나무 없이는 아무것도』 『우리가 견딘 모든 것들이 사랑이라면』, 합동시집 『시골시인-J』 등이 있음.
—
2025년 12월호(VOL.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