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 저자 | 하두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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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피티
자,
우리 시작할까요?
[관계자 외 출입금지 구역]
펼쳐놓은 것은 모두 멈춰 있는 골목입니다
지워지는 것이 많은 벽에서 우리를 들춰보기 시작합니다
깨진 보도블록 위
부서진 평면을 다시 맞춰가며
해쓱한 벽에 깊이 박혀 있는 만만찮은 마음을 꺼냅니다
담벼락에 검은 고양이의 새하얀 울음을 새기면서
간단히 빵을 먹어요
서두르다 컵 안의 우유가 쏟아질 뻔했죠
이 벽이 맞아?
맞을까? 아냐, 아냐
각각의 벽에 눈높이 인사도 해봅니다
마르지 않는 붓과 물감처럼
생각나는 것과 생각 드는 것으로 완성되어가는 벽
햇볕은 아직 따사로운데요
벽 뒤에서 우리가 구겨질 수 있어
더 빨리 색칠을 해야 해요
등을 맞대고 상상하다 내버려두어야 할 곳이 점점 많아지면
탕진하는 늦봄의 라일락 향기처럼
스프레이를 뿌리듯 발 빠르게 움직여요
이 벽에서 저 벽으로 옮겨 가는 동안
내 손에서 비둘기 몇 마리 골목으로 날아올라
감쪽같아 보이는 세상도 탄생해요
이제는
꽉 채운 벽화에서 한 발짝 떨어지기 위해
자전거 열쇠를 풀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아 보려구요
뒤로 뒤로 물러나며

하두자 l
1998년 《심상》 등단. 시집 『불안에게 들키다』 『프릴 원피스와 생쥐』 『이별 뒤에 먼 곳이 생겼다』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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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호(VOL.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