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유수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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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나무 아래서
우리가 조급한 건 내가 나에게서 뒤처졌기 때문일까.
대체 오늘이라는 날에는 사백 미터 트랙이 몇 개나 들었나.
사람들이 속도를 알아챈 건 사냥감을 쫓으면서라고 들었다.
임종을 앞둔 엄마는 속도보다 빨리 와버렸다고
너무 조급했다고 아쉬워했다.
나에게 맞는 속도는 애초에 없는 일
정해진 길이를 두고 다투는 경기
전력 질주하는 트랙, 떨어뜨린 바통들, 실격들
머리카락이 달리고 손톱이 달리고 눈썹이 달린다.
피는 순식간에 지구를 한 바퀴 돌고
전력 질주하지 않은 존재는 없고
정작 제 속도도 모르면서 냅다 달리고
사과나무 아래서
사과나무가 달렸을 트랙 아래서
겹겹을 엇갈려 발끝에 건다.
지구가 떨어뜨린 바통들이 사과나무 아래서 뒹군다.
바닥과 천정을 구분하지 않는 속도들이 바람에 밟힌다.
지구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돌고
정작 속도를 자처하는 존재는 속도를 느끼지 못하고
나무도
꽃도
바람도
산도
사람도
속도의 소모품
속도를 묻히고 태어나서
모르는 내가 달린다.
오늘은 레몬처럼 시큼한 속도
내일은 사과처럼 아삭한 속도
최고의 속도는 어쩌면 멈칫
지구가 멈칫거릴 때여서
사과꽃이 시들고
사과가 달린다.

유수진 l
2015년 《시문학》 신인상, 2021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 저서 『4·3표류기』 『선택받는 글쓰기』 『태양의 사랑』 『고르구드 아버지의 영웅서사시』 등이 있음. 〈제주4·3평화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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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호(VOL.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