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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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염창권 

 

 

 

현대시조에서 민속의 수용 양상 2

— 민속의 주체적 수용

   

 

 

 

   

민속의 시적 수용은 민속 문화의 주체로서 서민이나 민중이 되어야 하고, 작품의 형식․내용적인 면에서 목소리가 일치되어야 한다. 던데스(Alan Dundes)는 민속 주체론에서 “적어도 하나의 공통 요소라도 공유한 집단”을 folk라고 정의하며, 공유하는 요소가 직업, 언어, 종교 등 어떤 것이라도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의 다음 언급에서 문학민속학적 비평이 기존의 비평 방법과 차별성을 가져야 함을 역설한다.

 

  문학민속학적 비평은 종래의 일반적인 문학비평방법에 예속된 민속문학적 연구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한다. 그래서 그것을 소위 전통이라 일컬을 수 있는 민속이 작가에 의해서 그 작품 속에서 활용되는 양상을 확인하면서, 그것이 독자에게 작품의 의미를 전달하는 데 기여하는 양상을 파악하고자 한다. 즉 작가와 독자가 함께 서 있는 전통이라는 지평을 작품 해석을 위한 하나의 준거로 설정하는 것이다.

 

민속의 문학적 수용은 ‘작가, 민속적 소재와 관련된 작품의 내용과 형식, 독자’가 만나는 상호 연관성 속에서 설명되고 가치 평가가 이루어져야 함을 나타낸다. 민속의 내용이 목소리 혹은 담론의 수준에서 통합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정형률의 범주 내에서 그 주체의 톤(tone)으로 실현되어야 한다.

고시조에서와 같이 관조나 논평의 시점에서 대상과 거리를 두게 되면 민속의 주체화나 적극적인 수용은 이루어질 수 없다. 따라서 적극적인 민속의 실현은 ‘사건으로서의 민속적 행위’가 시적 자아의 ‘정서적 동질성’ 혹은 ‘구체적인 실존’에 통합되었을 때라야 주체화되고 또 서정갈래의 특성에 부합할 수 있다.

 

 

김상옥의 시조: 정념(empathy)의 대상으로서 민속  

     

 계층의 개념이 사라진 근대 이후로는, 민속(民俗)에서 속(俗)의 관념을 지운 민(民)의 전통적인 생활사 전체가 민속의 개념에 내포될 수 있다. 특히 잔존하는 과거의 생활사보다는 현대적 의미에서 적극적으로 재형성될 수 있는 원형적 사고나 생활사가 시적 수용 면에서 보편성이나 확장력을 높일 수 있다. 김상옥의 경우, “우리 민족의 얼인 전통성을 그의 작품 속에서 되살려내어 민족성을 고취”한다는 평가(이순희, 2011)를 받는 만큼, 상고 취미가 아닌 시대정신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전통이나 민속을 수용한다.

 전통적인 정한의 생활사는 민족 정서로 대변되며, 민족 문학의 특성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이때 고유한 심리적 정동(affect)이 시의 무드를 주조화(主調化)하고 작품 전체를 지배함으로써 대상 세계를 내면화 시키는 힘을 발휘한다. 인간이 가진 노스탤지어의 근원적 공간은 고향이자 어머니의 품이다. 이는 곧 잃어버린 모성적 시공간이자 회귀 불가능한 유년기이다.

 

   비오자 장독간에 봉선화 반만 벌어

   해마다 피는 꽃을 나만 두고 볼 것인가

   세세한 사연을 적어 누님께로 보내자.

 

   누님이 편지 보며 하마 울까 웃으실까

   눈앞에 삼삼이는 고향집을 그리시고

   손톱에 꽃물 들이던 그날 생각하시리.

 

   양지에 마주 앉아 실로 찬찬 매어주던

   하얀 손 가락 가락이 연붉은 그 손톱을

   지금은 꿈속에 본 듯 힘줄만이 서누나.

— 김상옥, 「봉선화」 전문

 

“누님”은 자신의 손톱에 봉선화 꽃물을 들인 뒤에, 남동생에게도 같은 일을 해 주었다. 이러한 민속적 행위와 함께 떠오른 누님에 대한 기억은 제2의 모성에 대한 향수와 함께 유년기에 대한 애틋한 정념을 불러일으킨다. 시적 화자도 성장하면서 타관을 떠도는 나이가 되었고, 그 누님은 더 먼저 시집을 가서 “고향집”은 향수의 대상이 되었다. 여성의 미용과 관련된 ‘봉선화 꽃물들이기’의 속신(俗信)처럼, 손톱 밑의 꽃 색깔이 지기 전에 첫사랑을 만나고 싶다는 여성적인 소망은 결혼하여 친가를 떠나게 되면서 사랑과 이별이라는 이중적인 애환의 상태가 된다.

시적 화자는 유년기의 화자로 설정되어 있다. 유년기 소년의 눈에 비친 과거의 현재화이자 동일화이다. 즉 “누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성년이 되기 이전인 제2의 모성을 잃어버린 상실감을 드러내기에 적합한 유년기로 설정하여, “누님”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농도 짙게 드러낸 것이다. 이로써 이 시를 주조하는 분위기는 “누님”에 대한 그리움이고, 민속 모티프인 ‘봉선화 꽃물들이기’는 이별과 그리움이라는 정념(empathy)에 통합됨으로써 전통사회가 가진 가족사적 애환이라는 보편성으로 확대된다.

민속 중에서 민간신앙은 생활사 전반에 투사되면서 의미를 부여하는 원질적인 사고의 기반이다. 민간신앙은 삶과 죽음의 모든 장면에 개입하면서 사회적 금기를 제공함과 동시에 개인적, 집단적 치유의 방법을 제공한다.

 

   살구나무 허리를 타고 살구나무 혼령이 나와

   채선(彩扇)을 펼쳐 들고 신명나는 굿을 한다.

   자줏빛 진분홍을 돌아, 또 휘어잡는 연분홍!

 

   봄은 누룩 딛고 술을 빚는 손이 있다.

   헝클린 가지마다 게워 넘친 저 화사한 발효

   천지(天地)를 뒤덮는 큰 잔치가 하마 가까워오나 부다.

— 김상옥, 「축제(祝祭)」 전문

 

신령스런 사물이나 대상에게는 귀신이나 혼령이 붙어 있다. 그리고 그 귀신을 달래거나 쫓아 보내는 샤먼인 무당이 있다. 무당은 “彩扇을 펼쳐 들고 신명나는 굿을 한다.” 귀신이나 혼령과 함께 춤을 추며 노는 것이다. 살구나무가 꽃을 피우는 모습은 “彩扇을 펼쳐” 든 무당의 모습과 흡사하다.

이윽고 둘째 수에서 “봄은 누룩 딛고 술을 빚는 손이 있다.”고 선언함으로써 뭇 생명의 신명과 꽃핌을 술의 발효 과정에 은유적으로 대입한다. 살구나무가 꽃을 피우는 모습은 무당이 굿을 하는 것과 동일하게 접신이 들려 신명난 상태이다. 즉, 봄이 가진 생명력은 사물들에게 잠복되어 있는 생의 누룩을 발효시켜 “天地를 뒤덮는 큰 잔치”와 같은 굿판을 벌이게 한다는 것이다.

그의 다른 작품인 자유시 「살구나무」에서도 혼령과 굿의 모티프가 반복되어 나타나는데, 나무가 꽃 피우기 전에 “시꺼먼 가지”의 시간을 보내듯, 어둑한 발효의 과정을 거쳐 마침내 신명난 굿처럼 꽃을 피워내는 것이 봄이 가진 힘이자 생명력이다.

 

   

   요 며칠 동안 그 앙상하고 시꺼먼 가지는 문득 자줏빛으로 옮아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무슨 채선(彩扇)을 가진 귀신이 나와 굿을 하는가 보다…… 웬일인가 눈여겨 지키노라면 이윽고 붉은 빛이 어룽져 군데군데 묻어나기 시작하였다.

 

   그들의 후예인 나는 지금 어느 수선스런 시간의 강변에 서서 생각한다. 반드시 내게도 저렇듯 황홀히 눈부신 발효(醱酵)를 가질 날이 지척같이 먼 곳에 드디어 가까워옴을 생각한다.

— 김상옥, 「살구나무」 2, 6연

 

술이 발효되는 것처럼, “시꺼먼 가지”도 발효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윽고 “彩扇을 가진 귀신이 나와 굿을” 하는 모양새로 “붉은 빛이 어룽져 군데군데 묻어나기” 시작하면서 나무 전체가 화사해진다.

“김상옥 시조에서는 이념의 상관물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생활적 구체를 지닌 자연 혹은 시인 자신의 내면과 깊이 상응하는 자연이 나타난다.”(유성호, 2012)고 했을 때, 살구나무의 신명은 시적화자의 내면에 투사된 자아의 대유물이다. “시간의 강변에 서서 생각”하는 화자에게도 “저렇듯 황홀히 눈부신 醱酵를 가질 날이 지척” 간에 당도할 것임을 예감한다. 신명나는 굿판이지만, “저렇듯 황홀히 눈부신 醱酵”의 끝은 “시간의 강변”에 닿아 있다. 시조 「祝祭」가 생명성이 발효되는 화려한 굿판을 벌였다면, 자유시 「살구나무」는 발효 끝에 이르게 될 삶의 엄숙성이 바탕에 깔려 있다.

 

 

송선영의 시조 : 실존적 거처로서의 민속  

   

민속의 주 무대는 ‘민(民)’이 활동하는 생활 공간이다. 즉 서민이나 민중의 실존적 삶이 영위되는 시공간이다. 제3세계 국가에서 민속학은 탈식민주의적 경향을 띄게 되는데, “하나의 인간 집단이 자신의 고유성이나 본래성을 회복하여 탈식민화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대표적인 인본주의 실천 학문”(강정원, 2013)임을 선언한다. 이러한 견해에 동조한다면, 민속이 실행되는 시공간은 실존의 가장 기본적인 범주로 포섭된다.

연날리기는 겨울철 놀이로 갖추어야 할 준비물과 함께 기후적 조건 면에서 성사되기가 가장 어려운 놀이에 속한다. “연날리기를 마치고 그 연을 날려 보낼 때는 ‘송액(送厄)’, ‘송액영복(送厄迎福)’과 같은 글자를 쓰거나 연 주인의 주소, 성명, 생년월일 등을 써서 날린다.” 액막이연의 기능은 놀이자의 액을 멀리 띄워 보낸다는 주술적인 성격을 지닌다. 연이 잘 떠올라 멀리 날아가는 상태를 보고 길흉을 점치는데, 놀이의 까다로운 성격만큼이나 성사되기가 쉽지 않고 실패의 확률도 높다.

 

   볼 붉은 겨울 아이가 종일 연(鳶)을 띄우더니

 

   허연 뒷강 숲에 몸을 푸는 노을이여

 

   이윽고

   어둠 저켠에서

   문풍지가

   울고 있다.  

 

   세밑 밤을, 누나는 끝내 아니 비치고

 

   잠든 공단(工團) 밖에 또 서성이는 눈발이여

 

   아이의

   반쯤 탄 연(鳶)이 하나 사라진다,

   아득히.

— 송선영, 「겨울의 章」 전문

 

“볼 붉은 겨울 아이”는 놀이의 주체이자 회고된 과거의 나이다. 연날리기는 성장기의 과업 중의 하나로 즐거운 놀이라기보다도 신중하게 완수해야 할 과제와도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윽고 / 어둠 저켠에서 / 문풍지가 / 울고 있다.”에서 보듯, 연을 날리는 “겨울 아이”의 상황은 녹록하지 않으며 불길한 징조마저 엿보인다. 유년기의 아이가 겪는 실존은 “세밑 밤을, 누나는 끝내 아니 비치고”, 차가운 기다림에 기댄 “잠든 工團 밖에 또 서성이는 눈발이여”와 같은 탄식이 덧붙여진다. 이와 같은 불운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가. 그것은 “아이의 / 반쯤 탄 鳶이 하나 사라진다 / 아득히”와 같이 실패한 유년기의 과업 때문이다. “반쯤 탄 鳶”은 미완성이라는 운명에 대한 관념과 겹쳐지면서 고단한 현실을 점검하는 상징으로 작동한다. 액막이연의 모티프를 차용한 이 작품은 피폐해 가는 농경 사회의 뒷면에 “잠든 工團 밖”을 배치하면서 뼈아픈 실존의 상황을 환기시킨다. 이 시에서 차용된 민속 모티프는 전통의 잔존체로 머물지 않고 현재화되면서, 서민층의 애환이 공업 사회의 어두운 뒷골목으로 스며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겨울의 章」에서 제2의 모성으로 “누나”가 등장한다면, 시인의 현실에서는 “할머니”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광복이 되고 개학을 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를 여의게 된다. 갑작스런 어머니의 죽음은 그에게 큰 슬픔이었고, 할머니에 의지하여 초등학교를 마쳤을 때 6·25가 발발한다.” 따라서 유년기는 모성을 잃은 외로운 시기였고, 언제나 죽음이 가까이에 있었다. 시대적으로도 “강설(降雪)의 / 먼 요령 소리”가 들려오는 상중(喪中)이었다.

 

   Ⅰ

   겨울 청대밭의 / 달이 / 홀로 / 눈을 털면

 

   잠 깨어 달려가는 / 목이 / 긴 / 내 유년(幼年)이

 

   한동안 / 청대를 흔든다.

 

   어머니를 부른다.

 

   Ⅱ

   일진(一陣)의 상두꾼이 / 상앗대를 저어가네

 

   이승의 / 끝 / 숲에서 / 생솔이 타고 있네.

 

   강설(降雪)의 / 먼 요령 소리,

 

   저 幼年의 기침 소리.

 

   Ⅲ

   여울목 휘돌아오는 / 들새, 그 고단한 나래.

 

   적요(寂廖)의 귀 밝히면 / 잡힐 듯 / 먼 / 목소리가……

 

   열(熱) 오른 / 이마를 짚는 / 달, 달빛의 차가운 손.

— 송선영, 「겨울 비망록(備忘錄)·五」 전문

 

첫째 수(Ⅰ)는 “어머니”를 잃은 소년의 상실감이 극화되어 있다. 즉 유년기의 현재화이다. “잠 깨어 달려가는 / 목이 / 긴 / 내 幼年”은 꿈속에서도 “어머니”를 찾아 헤맨다. 여기서 “청대”는 하늘길로 이어진 수직의 중심축이다. “한동안 / 청대를 흔”드는 것은 어머니의 혼령을 불러오겠다는 기구이다.

둘째 수(Ⅱ)는 상여가 나가는 장례의 풍경이 현재의 시점에서 구체화 된다. “이승의 / 끝 / 숲에서 / 생솔이 타”는 장면과 “降雪의 / 먼 요령 소리”는 시각, 후각, 청각 등이 공감각적으로 인화된 사진이며 이미지이다. 이 이미지는 서정적 주체의 내면에 박힌 심리적 외상의 흔적이다. 이로써 실존은 고독해지며, 양육의 손길로부터도 멀어진다. 이처럼 과거의 현재화를 통해서 모 상실의 경험을 환기했을 때, 실존적 고독감은 인간으로서는 결코 회복될 수 없는 것으로, 인간이 보편적으로 겪는 통과의례에 해당된다. “저 유년의 기침 소리.”는 시간적 거리두기를 통해 과거의 상처를 객관화시키며, 셋째 수로 이행하는 단서가 된다.

셋째 수(Ⅲ)는 유년의 상처를 확인한 뒤에 이어진 현존 상태의 고독감이다. 현존의 상황은 “여울목 휘돌아오는 / 들새, 그 고단한 나래”에서 보듯, 생활에 지친 내색이고 이를 어루만지고 위로해 줄 손길이 필요하다. 그러나 본원적 고향으로 스며들어 간 “목소리”는 “귀 밝히면 / 잡힐 듯” 멀리서 들려온다. 따라서 “熱 오른 / 이마를 짚”어 주는 것은 “달, 달빛의 차가운 손.”일 뿐이다. 모 상실 이후, ‘나’라는 자아는 결코 단독자로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모 상실의 경험을 아프게 이야기하는 소년 화자에게 연민을 보내지만, 어느 순간 스스로가 “어머니”와 결별한 존재임을 깨닫게 되고, 인간은 누구나 단독자로서의 고독에 처해 있으며 자신도 그 고독에 동참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상례의 풍경은 애도를 통해서 죽음이 내면화, 극화된다. 애도가 없는 곳에서 죽음은 가치 없이 버려지고 사물화된다. 애도가 진행되는 동안 죽음은 아직 살아있는 셈이다. 상례의 풍경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앞길을 트는 만장, 종이꽃으로 만들어진 꽃상여와 상두꾼의 상엿소리, 그리고 이를 길게 뒤따르는 애도의 무리들이다. 복잡한 애도의 과정은 죽음 그 자체를 오래 머물러 있게 한다.

“「귀성록(歸省綠)」은 1994년 4월 26일 시위 도중 사망한 명지대 1학년 강경대의 운구 행렬을 다루고 있다. 5월 14일 광주 망월동을 향하다 운암동 톨케이트에서 저지당한 후 밤낮 치열한 공반전을 치루었다. 19일 일요일에 그 저지선을 뚫고 금남로를 향하는 강경대 열사의 운구 행렬 모습이다.”(박현덕, 2009)

 

   이윽고 고향 땅은 야전장이 되어 갔다

 

   서울발 꽃상여 하나, 한길 덮은 만장 행렬

 

   치열한 오월의 밤이

   운암동을 흔들었다.

 

   가파른 망월 길의 징 소리도 멀어지고

 

   검게 탄 노점 언저리 두 노인의 긴 그림자……

 

   고뿔든 아침 태양이

   빈 폐허를 쓸었다.

 

   언덕 위 하늘집이 안개 속에 잠긴 주일

 

   대낮에도 촛불 켠 채 아, 얼룩진 말씀이여

 

   목 붉은 통성 기도를

   파도 타고 흐른다.

— 송선영, 「귀성록(歸省綠)」 전문

 

당국에서는 애도 행렬을 저지하려고 한다. 이는 죽음이 살아 있음으로 의미화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 죽음의 의미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당국과 이를 뚫고 죽음의 현재화를 시도하는 애도 행렬 간의 대립을 보여준다. 시적 화자의 시선은 애도의 행렬 속에 섞여 있다.

장경렬(2008)에 의하면, 이 시에서 애도의 감정은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누어진다. “먼저 “만장행렬”로 채워진 “치열한 오월의 밤”이 전달하는 격정과 분노의 감정을 읽을 수 있다. 한편 “검게 탄 노점 언저리 두 노인의 긴 그림자……”나 “빈 폐허를 쓸”고 있는 “고뿔든 아침 태양”이 전하는 무력감과 좌절감을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셋째 수의 “대낮에도 촛불 켠 채 아, 얼룩진 말씀이여”에서 보듯, 시적 화자의 어조는 기구와 논평의 형태이며, 상황에 대한 응시이다. 즉, 후자인 무력감과 좌절감이 이 시의 주조를 이룬다고 볼 수 있다.

만장 행렬을 앞세운 애도의 방식은 공동체의 의식 속으로 파고들며 현대에도 되살려진다. 이와 같은 행위가 타당성을 갖는 것은 민족 공동체라는 신념이 민속적 문화소(文化素) 혹은 모티프를 통해 결속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송선영의 다른 여러 작품에서도 이와 같은 민속적 원형이 시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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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 모티프의 적극적인 수용의 예로 김상옥과 송선영의 작품에 주목하여, 그 특징적인 양상을 주제화하여 보았다. 먼저, 민속 세계와의 정서적인 통합의 예로 김상옥의 「봉선화」, 「祝祭」를 예시였다. 주제 비평의 제목은 ‘정념(empathy)의 대상으로서의 민속’이다. 다음으로, 민속 모티프를 비유적 상관물로 수용한 예로, 송선영의 「겨울의 章」, 「겨울 備忘錄 5」, 「歸省綠」 등을 예시하였다. 주제 비평의 제목은 ‘실존적 거처로서의 민속’이다. 이들 작품이 성공적인 까닭은 민속의 단순 수용이 아닌 작가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차원에서 변용이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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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창권  l

199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시조), 199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시) 당선. 시집 『한밤의 우편취급소』 『오후의 시차』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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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호(VOL.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