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 저자 | 김현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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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는다
눈 쌓인 무덤이 녹는다
말캉한 속살을 드러내며 녹는다
돌계단이 녹는다
샛길이 녹는다 매지리가 녹는다
우두커니 앉아
희끗희끗한 앞산을 바라보며
내가 녹는다
사흘째 녹는다
정적을 깨며 녹는다
너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녹는다
긁히면 긁히는 대로
툭툭거리며 녹는다
한때 눈사람이었고
지금은 눈부시게
내 곁에 누운 사람도
깨진 유리병의 살점처럼
뚜뚝뚜뚝뚝뚝 뚝 뚝 뚝 뚝
차고 넘치게 녹는다
물에 만 흰밥처럼 풀어지며
무한히 녹는다
무언가를 드러내며
무언가를 비워가며
무언가에 홀린 듯
봄볕의 속도로 녹는다
수직으로
벽을 타고 녹는다
작은 물길에서 큰 물길로
살아 있는 듯
살기를 바라는 듯
쉰여섯 마리 은붕어가
사발 같은 연못 안으로
눈 눈 눈 눈들이
연둣빛으로 돋는다

김현서 l
1996년 《현대시사상》 등단, 200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 시집 『코르셋을 입은 거울』 『나는 커서』, 동시집 『수탉 몬다의 여행』 『짜! 짜! 짜!』, 청소년시집 『탐정동아리 사건일지』 『숨겨 둔 말』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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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호(VOL.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