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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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염창권 

 

 

 

 

 

사설시조에서 익명성과 개인적 실존

    

   

 

 

 

현대시가 장형화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정감적 현실이나 내용의 은유적 압축에서 벗어 나서, 삶의 서사성을 시의 양식에 투과하고자 하는 의욕이 앞서는 것이다. 더구나 현대인이 겪고 있는 삶의 유동성과 맞물리면서, 갈래의 테두리가 희미해지고 다양한 혼종 장르적 표현 양식이 나타나게 되었다.

한편으로, 최근에 사설시조의 창작이 활발해지면서 창작 집단의 일군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다른 갈래의 작가들이 대형 출판사의 상업성에 노출되면서 지향점을 잃은 것과 마찬가지로, 사설시조 창작에서도 그 형식 개념이 공식적으로 소환되지 않았을뿐더러, 그 필요성에 대한 가치 규명에도 소홀한 실정이다. 즉, 근대성의 징표로 여겨졌던 사설시조의 특성으로 무엇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며, 어떤 방식으로 현대인의 정서를 고양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사설시조 특유의 독법과 창작론의 개발은 아직 해결되지 못한 과제이다.

     

  사설시조가 갖는 근대성의 의미  

 

사설시조(장시조)가 갖는 근대성에 대한 논의는 金允植·김현(1973)의 『韓國文學史』에서 출발한다. 이 개론서에서는 시조를 ‘자생적 예술과 그 양식’으로 보고, ‘시조의 붕괴’를 타이틀로 하여 평시조의 장형시화에 시대사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시조를 사대부 계층의 향유물로 보고, 이와는 다른 중인 계층인 김천택 등의 가객의 참여와 서민 계층으로 확산된 수용자층에 대한 관심을 피력한 것으로, 사설시조의 작품이 갖는 근대적 요소에 대한 해석적 고찰은 아니었다. 즉, 향유층의 다변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서의 근대성 실현과도 같은 의미이다. 이는 고정옥의 다음과 같은 비판을 ‘타당하다’고 인정한 데서 미루어 볼 때, 가족 관계의 해체 및 신분 계층의 동요에서 오는 근대성에 한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金允植·김현; 61-63쪽)

 

  그들은 詩가 될 수 있는 사물(事物)인지 여부(與否)를 판단(判斷)할 문학적(文學的) 교양(敎養)을 갖지 못하였기 때문에 검버섯이나 뼈사바위 같은 것을 노래하고 상평통보(常平通寶)를 노래하고 심(甚)한 것으로는 이, 벼룩, 모기까지 노래했던 것이다. 이는 무교양(無敎養)한 서민(庶民)의 문학(文學)이 항시(恒時) 빠지기 쉬운 함정(陷穽)이다.(고정옥)

 

  서민·중인 계층이 사회적으로 잠재 세력을 구축하여 자기들의 생명 리듬을 필요로 하게 될 때 그것이 지속 발전을 이룩하려면 스스로 독자적인 양식(樣式)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장시조는 갑자기 그러한 능력이 없어 상놈이 양반의 관을 빌어 입은 형국이며, 따라서 희화적이며 과도기적인 양식이다.(金允植·김현)

 

위와 같이 장시조를 과도기적이며 실패한 양식으로 보는 관점은 장시조가 갖는 미학적 요소나 근거를 발견하지 못한 데서 오는 오해로서, 가치 판단의 근거는 사대부 계층의 상고적(尙古的)인 태도, 즉 도학적인 교양에 못 미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이때의 근대성에 대한 의미 부여는 다음과 같은 이항 대립에서 찾아볼 수 있다.

 

평시조 : 사대부 계층의 도학적 관념 세계 ↔ 장시조 : 중인 서민 계층의 일상, 사물들

 

이와 같은 대립쌍에서 후자의 경우는 사대부 계층이 가진 시적 수준에 못 미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역설적으로 현대시에 비견될 수 있는 일상의 구출로서의 근대성의 실현이라 볼 수 있는 지점이다. 앞에서 고정욱이 비판적으로 논구한 “검버섯, 뼈사바위, 상평통보(常平通寶), 이, 벼룩, 모기” 등의 소재는 일상성을 드러내는 사물들로(하이쿠의 대가 바쇼나 잇사 등이 이와 같은 소재를 즐겨 사용하였음은 익히 알려진 바이다.), 문학의 양식이 일상적 삶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과 비속함에서 정서적 출구를 찾는 실존 자체는 오히려 개인의 각성이나 자유에 근거를 두는 근대성, 현대성에 부합되는 일면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다음과 같은 논지를 통해서도 뒷받침될 수 있다.

 

  詩語의 측면에서, 사설시조는 산문적 진술을 원용하면서 동시에 언어를 민중적인 것으로 해방시켰다는 점이다. 속어, 비어는 물론 음담패설, 생활어 등을 자유롭게 구사함으로써 귀족어, 지식어, 교양어로 씌어진 전시대 시가의 언어 규범을 무너뜨린 것이다.(오세영)

 

오세영(1991)은 “우리 시문학사에서 근대시는 18세기 사설시조에서 비롯된다.”고 규정하고, “사설시조에서 보이는 표현상의 자유로움, 형태 면에서의 새로움과 양식 면에 반영된 근대의식은 신체시보다 오히려 사설시조 쪽이 더 강하다”고 하였다.

그럼에도 사설시조에 대한 가치 평가에서 제약적 관점이 제기되는 것은, 그 표현 자체가 갖는 직설적 화법이나 주제의 노출 수준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즉 시적 표현의 형식으로서 조야함을 드러낸다고 보이는, 논평적인 어조나 주제의 직설적인 노출 등은 형식 미학의 측면에서 미완의 상태에 있음을 나타낸다. 이는 오세영이 지적한 대로 신체시 또한 그 표현의 미숙성으로 인해 주류적 장르로 정착되지 못한 상황과 유사하다.

   

  익명의 주체와 골계의 형식  

 

김영운(2015; 28-29쪽)은 “현전 가집들에 수록되어 전하는 사설시조의 대다수를 노래로 부르기는 사실상 어려웠을 것”으로 추정한다. “하규일(河圭一)이 12가사 중 4가사를 부르지 않았다든가, 가곡(시조 등)을 부르는 일패(一牌) 기생은 잡가(雜歌)를 부르지 않았다는 사실” 등은 연행자의 음악적 지향점을 드러내 보이는데, 전문 가객 스스로가 농락의 대상으로 비치는 것을 꺼렸다는 점 등도 사설시조의 연행 환경에서 오는 제약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나머지 작품들은 “사적인 독서를 통한 감상을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이 가능해진다. 따라서, 만횡청류에 포함된 대다수의 사설시조는 ‘읽는 사설’이나 ‘가사(歌詞)형 시’로 향유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는 현대의 ‘읽는 시조’의 전례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 있게 받아들일 수 있다.

 

문제는 작자의 익명성이다. “음악적으로는 평조와 계면조 사이의 성질을 지녔다.”(정호완, 2008)는 점은 사설시조의 가사(歌詞)가 잡가의 형식과 소통되는 공통의 기반을 지녔음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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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은 무명씨의 작품으로, 성적 에로티시즘에 속하는 내용이다. ②는 고종 무렵의 가객인 안민영의 글로 인생 회고의 과정에서 오는 회오와 무상감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①과 ②의 차이는 무엇인가? 먼저 ①에서 시적 화자는 익명적 주체이다. 이 주체의 위치는 구비전승된 주체일 수 있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그룹의 집단적 주체일 수도 있다. 또한 이 주체는 대상화, 객관화되면서 그 행위의 자질이 과장되거나 희화화된다. 이처럼 사설시조에 나타나는 골계미는, 그러한 익명적 주체를 대상화한 상태에서 개인적 욕망을 투사함으로써 내기담이나 경쟁담을 듣듯, ‘나는 아니 한 번도 쉬어 넘어가리라.’와 같은 발설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수사적으로는 “어젯밤도 혼자 / 지난밤도 혼자”와 같은 반복을 통한 심화나 점층법, 점강법 등의 강조법이 주요 장치로 등장한다.(박철희는 사설시조의 특성으로 ‘웃음의 미학(유희 충동), 윤색되지 않은 솔직함’ 등을 들고, ‘반복과 확장’을 민간 전승 시가의 특색으로 본다.) 이때의 주체는 한 번뿐인 생에서 좌절을 겪지만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을 좇아 공동체의 도덕적 규범을 벗어나더라도, 개인적 실존을 최상의 가치로 올린다는 점에서, 근대적 각성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된다.

이와 같은 자아의 각성과 실존적 삶에서의 추구는, 적극적인 작가 의식을 바탕으로 하여 ①에서 ②로의 전환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②의 초, 중장에서, 삶의 내력과 역정의 진술을 바탕으로 하여, “백 번 불린 쇠 아니면 만 번 씻은 돌이노라”와 같이 연마된 자신의 현존에 대한 회오적 평가를 거친 후에, 종장의 “물에 섞인 물 아니면 꿈속의 꿈이런가 하노라.”와 같은 무상감을 드러낸다. 물론 이때의 시적 주체는 “칠십”을 지난 작가 자신이며, 집단적 발화가 아닌 개인적 서정의 표출이다. 사설시조의 형태로 전체 서사가 길어진 것은 “비바람 눈서리와 산짐승 바닷물결 / 들 더위 두메 추위 다 갖춰 겪었으며 빛난 의복 멋진 음식 좋은 벗님 고운 색과 술 노래 거문고를 싫도록 지닌 후에”와 같은, 그가 지나온 생애의 내력을 펼쳐 보이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종장에서도 도학적 이데올로기로 환치될 수 없는 실존의 고독한 상태를 현재화하기 위해, 종장의 음보 단위를 3배 이상으로 확장하고 있다. 이와 같은 개인적인 실존은 발아기의 근대 자유시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는 것으로, 사설시조의 자유시로의 이행기적 일면을 입증한다.

결론적으로 ①과 ②의 차이는 시적 주체의 대상화 양상과 개인적 주체로서 자기 발화의 양상 간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①과 같은, 무명씨 작품에서 언롱(諺弄), 금기의 위반으로서의 성적 자기표현이 분방하게 나타나는 것은, 작가적 측면에서는 사대부 계층에서 당대 이데올로기의 검열을 피하기 위한 장치로 볼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 잡가 형식이 구비전승되는 적층문학에 연원을 두고 있다고 했을 때 서민층의 생활사에서 소재를 가져온 평민 문학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사회제도가 질서 있게 통제될 수 없었던 시대에 암묵적으로 자행되었던 성적 풍속도의 일면일 수 있음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일부다처제의 사회였으며, 내용상으로도 처용가에서 비롯되어 고려 가요를 지나면서 조선조 잡가에 이르기까지 일관성 있게 이어져 온 주제였음을 근거로 할 수 있다.

이유야 어떻든 익명화된 시적 주체에, 향유자들이 가진 시선인 성적 금기의 위반에 대한 욕망이 투사되어 있다는 점에서, 개인성의 실현이라는 근대적 주체의 성격을 찾아볼 수 있다.

     

  표현의 간결성과 구체화 간의 차이  

 

앞에서 인용한 ①과 ②의 사설시조에서 의미 선언이 간결한 단시조형으로 정리하면, 밑줄 그은 부분과 같이 될 것이다. 그 외의 남은 부분이 사설시조를 성립시키는 초과 음보들이다. 사설시조는 일반적으로, 초장을 제외한 중장, 종장 중에서 기준 음보율을 초과하여 가사(歌詞)가 두 음보 이상이 길어진 경우로, 평시조의 파생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창(唱)의 박자수(拍數)를 위의 사설시조에 대응시키면, [1장], [2장]은 초장, [3장]은 중장이 되며, 나머지 [4장], [5장]을 합한 것이 종장이 된다.

①에서 밑줄 그은 바와 같이 단시조(평시조)의 형태로 압축하면, 수식이 없는 상태에서 선언적인 담화 형태가 된다. 즉 주체의 정서가 그대로 노출되어 결핍된 신세의 한탄 혹은 폭로와 더불어 지향점에 대한 선언을 직정적으로 노출한다. 이에 비해 사설시조 원문은, 님을 기다리는 고독한 밤의 표정이 구체화, 전경화되어 있다. 또한, 역설적인 면에서 타자화된 고독, 그리고 그 고통을 희화화시킨다. 이를 통해 궁극에 닿고자 하는 비루한 욕망의 문제가 폭로되며, 보편적인 의미에서 님이라는 기표로 떠오른 욕망의 의미가 통속의 자장 내에 보편성 있게 포섭될 수 있게 한다.

②에서도 밑줄 그은 것을 참조하여 단시조(평시조)의 형태로 압축하면, 앞과 다름없이 선언적인 담화 형태가 된다. 즉 주체인 ‘나’가 겪어 본, “세상의 고통이나 쾌락의 경험은 담금질한 쇠나 물에 씻긴 돌 같은 것이다. 칩십이 되고 보니 그러한 일들이 꿈속의 꿈만 같다”와 같은 선언적 의미 구성에 이르게 된다. 이와 달리 원문인 사설시조에서는, 인생 경험에 있어 고통의 내용과 풍족했던 쾌락의 내용이 배가(倍加)되면서 생애를 구체화, 전경화시킨다. 초기의 시련을 거친 후에 누렸던 쾌락의 내용들은 모두가 부러워할 만큼 총족된 경험이었으므로 이를 가감 없이 나열해야 할 필요가 생긴다. 그럼에도 이를 “우습고 느꺼워라”, “꿈속의 꿈”이라고 한다. 즉, 단시조에서 허무감이 표면적으로 선언되었다면, 사설 시조에서는 경험 세계를 구체화, 전경화함으로써 허무감 자체가 인간 누구에게나 주어져 있는 문제라는 보편성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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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시조 문단에서는 ‘3장 6구 12음보’ 설이 다수를 이루지만, 애초에 가람 이병기는 ‘3장 8구 12음보’설을 제기하였다. 가람은 시조의 자수율 표준화에 대응하여 시조에 무슨 글자 수가 정해져 있었느냐고 하며, 조윤제의 표준 자수율(3, 4, 3(4), 4 / 3, 4, 3(4), 4 / 3, 5, 4, 3)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두었다. 이와 더불어 조동일은 고시조의 전체 작품에 대입하여 통계적으로 보면, 4% 정도에 해당할 뿐이므로 이를 정형으로 삼기에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러한 잘못된 지침이 오히려 창작을 부당하게 구속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논란은 노랫말이 가진 특수성에서 연유하는 것으로, 노래는 가사(歌詞)의 전달을 넘어서서 혹은 그보다도 연창이나 연행의 성공에 비중을 더 두기 때문이다. 시조는 처음부터 정형시가 아니었다.(달리 말하면 당시의 창작자에게 정형의 기준이 없었고, 박수(拍數)에 따른 결과로써 4% 정도의 확률로 나타난 것이 표준 자수율과 유사했다) 이와는 달리, 식자층이 향유 했던 정형시로는 한시(漢詩)의 절구(絶句)와 율시(律詩)가 엄존했다.

이렇게 볼 때, 1920년대의 시조 부흥 운동은 현대시조에 맞는 정형 양식을 새롭게 형성하는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우리의 국자(國字)가 될 ‘한글’에 대한 새로운 인식, 그리고 정체성 확립이라는 문화적 각성이 따라 이에 부합하는 표현 양식을 요청받았을 것이다. 이때, 우리 말과 국자(國字)인 한글로 표현할 수 있는 정형 양식이 ‘시조’라는 이름으로 호명된 것이다.

그러나 표준형으로 제시된 자수율 자체는 절구나 율시를 참조한 글자 수였고, 한편으로는 하이쿠를 참조한 음절 수였다. 즉, 소네트와 같이 행 배열의 수, 라임의 규칙성 등에 근거하는 정형시가 아니었다. 한국어와 일본어는 교착어이고, 중국어는 고립어이다. 중국어는 고립어이기에 우선 글자 수를 확정하기에 용이하며, 글자마다 음성 실현에 있어 길이가 다르고 성조 따라 의미가 분화되기에 ‘운(韻)’, ‘평측’ 등의 규칙성을 부여할 수 있다. 일본어는 교착어로 단어 운용이 신축적이며, 한자 표기의 경우에는 1자(字) 1음절이 아닌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 시조의 표준 자수율은 중일 양국의 정형 양식을 참조한 상태에서(글자 수, 음절 수의 이중 구속), 우리만의 양식 수립이라는 강박이 작용한 결과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표준 자수율이 교과서에 제시되어 학습됨으로써, 이후의 현대시조 문단을 발아시켰고 창작의 지침 역할을 하여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하면, 시조의 표준 자수율은 1920년대에 새롭게 재형성되었다. 고시조와 현대시조 간에 계승된 면과 재형성된 면이 있는데, 먼저 계승된 지점은 삼장의 의미 결속과 음보 단위의 율격적 진행이다. 다음으로 재형성된 지점은 노랫말에서 시(詩)로 성격이 바뀐 것과 표준 자수율의 구속에 놓이게 되었다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필자의 견해를 밝히면, 현대시조의 형식론에서는 — 삼장에 따른 의미 전개와 결속, 음보율에 따른 긴축(평시조)과 확장(사설시조) 등이 시조의 현대성을 제어하는 정형 양식의 기준으로 적합하리라고 본다.

 

 

                                 

  * 사설시조와 관련된 서지사항 목록은 필자의 다음 글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염창권, 「갈래의 양식은 어떻게 재형성되는가」, 『시조학논총』 59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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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창권 ㅣ

199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시조), 1991년 《소년중앙》 문학상(동시), 199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시) 당선. 시집 『한밤의 우편취급소』 『오후의 시차』 등, 동시집 『망치를 이해하는 방식』, 평론집 『존재의 기척』 등, 학술서 『어린이문학과 교육』 등이 있음. 〈중앙시조대상〉 〈노산시조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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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호(VOL.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