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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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정원 

   

 

 

 

 겨우살이처럼

 

 

 

 

 

  눈이 내렸어요 성대도 없이 우는 새처럼, 새의 깃털처럼

 

  밤이 으깨지도록 눈발은 가슴 안쪽으로 들이쳤어요 내 목소리를 찾으려고 북북 그어대던 문장 위에도 하얀 발자국은 비늘 같은 문양의 시간들을 가만 내려놓았어요 어쩌다 겨울이었어요

 

  겨울의 안팎이 이렇게 모호할 줄은 모르고 줄곧 나는 무언가에 매달려 있었어요 겨우살이처럼요 백두대간에서 본 그 겨우살이들이 우쭐우쭐 춤을 추고 있을 때 나는 한바탕 나무둥치에 걸려 넘어졌거든요 한겨울 눈구덩이 속에 넘어진다는 게 무엇인지 말할 때가 되었네요 하얀 빛무리 속에서 캄캄한 어둠에 부대낀다는 것을요 벗어나려면 내가 겨우살이가 되어 독야청청 높은 고공에 매달려 있어야 한다는 것을요 침묵의 밤이었어요

 

  침묵의 외양이 눈잣나무처럼 낮고 앙바틈했어요 눈발은 구김살 없는 소년처럼 내렸어요 소년의 눈동자처럼 내렸어요 침묵의 활을 그으면 소년의 눈에서 금세 정체 모를 우울한 음표들이 나부낄 것 같았어요 나는 침묵으로 똘똘 뭉친 말을 굴려 배불뚝이 눈사람을 만듭니다 불거진 뱃속이 더부룩할 만큼이요 공들여 숨겨온 목록들이에요 밑줄을 긋듯 들춰보면 눈사람의 서사가 빼곡했어요

 

  밤새 눈이 내려 가슴골 안쪽에 쌓였어요 이럴 때 새들은 희끗희끗 눈송이가 되나요 성대도 없이 가만 내려 쌓이다가 가만 깃털을 내려놓나요 시퍼렇게 허공에 매달린 내 환부를 눈발은 덮어주나요 적설의 이면은 온몸이 바탕이거나 온몸이 문장이어서 누군가에게는 영약이 되려는지 새벽이 우물우물 말의 오도독뼈를 뱉어내네요

 

 

 

 

 

 

 

 

 

 

 


 

신작시_이정원.jpg

이정원  l 

2002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2005년 《시작》 신인상 당선. 시집 『몽유의 북쪽』 『꽃의 복화술』 『내 영혼의 21그램』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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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호(VOL.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