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025
Extra Form Output
저자 신혜정 

   

 

 

 

 편지

  —워커

 

 

 

 

  밤에 생각했어요. 내일 신을 신발에 대해. 가지런하게 놓여 있는 신발장의 신발들을 상상하며 낮은 자세로 몸을 받쳐 줄 플랫슈즈를 떠올렸습니다. 밤이 내려앉을 때의 무드처럼 오렌지빛을 띈 카멜 색상의 스웨이드 플랫슈즈. ― 그 옆에는 양의 가죽을 부드럽게 무드질한 핑크색 구두가 있습니다. 핑크색 구두 옆으로는 인조가죽으로 만든 튼튼한 워커들이 가지런합니다. 복숭아 뼈 안쪽으로는 단단한 지퍼를 달았고요. 발목을 얽어매는 워커화의 코팅 끈을 단단히 조이는 상상을 합니다. 신발장의 목록들을 상상으로 훑고 나니 워커부츠에 앵글이 멈춥니다. 나는 내일 신을 신발로 블랙 워커화를 지목하였습니다. 연한 블루진 위에 크림 톤의 풀오버 니트를 입고 검정색 라이더 재킷을 걸쳐 내일의 착장을 완성하기로 합니다. 얼마나 멋진 패션입니까. 이제 밖으로 나가서 공기를 마음대로 밟을 수 있습니다. 땅에 떨어진 흙을 아무렇게나 밟을 수 있습니다. 지나가던 개미도 밟을 수 있겠습니다. 누군가 떨군 담배꽁초, 연기와 함께 뱉은 침을 마음껏 짓이길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마음대로 걸어 다닐 수 있습니까. 굴러다니고 있습니까. 나의 신발장에는 다양한 신발들이 있고, 나는 내가 신을 신발을 마음대로 고를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하였습니다. 겨울에 불어온 바람에서 잠깐 봄의 온기를 느낀 것도 같았습니다. 언젠가 시민들을 짓밟았던 무장 계엄, 서슬 퍼런 시절의 군화. 그 군화를 본뜬 신발이 색상별로 신발장에 놓여 있다는 것이, 어쩌면 그럴 수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기도 했던 밤. 내일은 이 어둠 속에서도 군화를 닮은 신발을 신고 마음껏 짓밟고 다닐 수 있겠다고 안도하던 밤도 있었던 것입니다. 당신은 그 하늘 아래 빛이 마음에 드십니까. 많이 보고 싶었던 밤도 있었습니다. 이 바람과 이 햇빛과 이 공기가 우리의 뺨에 닿아 따스함을, 시림을 때로 매서움을 보여주듯이 어떤 것은 그냥 현상일 뿐이겠지만, 모든 사람이 취해 있는 어떤 밤 홀로 술을 마시지 않은 자의 고독처럼 나는 밭은기침을 하며 잠깐 아득해졌습니다. 그것을 현실과의 해리라고 부르지는 말기로 합시다. 그때 잠깐 당신을 떠올렸던 것은 실수였을 지도 모릅니다. 아무 이름도 부르지 않기로 했던 것을 잠깐 잊었습니다. 우리는 영영 앞모습으로만 남기로 했고 뒤를 남기지 않기로 했습니다. 뒤돌아도 영영 웃는 앞모습으로만, 우리 그만 짓밟히지 않기로 합시다. 이후의 뒷모습은 당신의 상상에 맡기겠어요. 상상은 영원히 역사에 남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그만 히스토리를 지워주시겠어요?

 

 

 

 

 

 

 

 

 

 

 


 

신작시_신혜정.jpg

신혜정  l 

2001년 《대한매일》 신춘문예 당선. 시집 『라면의 정치학』 『여전히 음악처럼 흐르는』, 산문집 『왜 아무도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나』 『흐드러지다』등이 있음.

 

 

 

—

2025년 3월호(VOL.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