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이지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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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선지 위의 시어들 2
— 박완호 시 「새」 : "길게 울어라, 온몸으로 멍든 상처로"
길게 울어라
하늘에서도 날고
땅끝 먼발치에서 목 놓아 우짓는 새
저들 어깨 출렁이는 자유
가슴에서 가슴으로 물결치는
날개 흔들며 훨훨 날아
달려도 달려도 가라앉지 않는 무게로
하늘 땅 어디서나
허리 펴고 꼿꼿하게 일어서는 그대
너는 울어도 입술로만 울지 않고
너는 울어도 눈물로만 울지 않고
온몸으로 채찍질하며
시퍼렇게 멍든 살덩이로 우는구나
울어도 슬프지 않은 노래는
마른 들판 같은 살 속으로 빗물처럼 듣는데
이 땅 어디서나
지친 날개 접고 내려앉는 그대
길게 울어
네 그림자조차 꺼리는 빈 들에서
자유 이는 하늘로 멀리 날아라
꿈을 꿨다
꿈을 꿨다. 일상이다. 새벽녘에 잠든 것으로 기억한다. 잠이 깬 시간은 다시 새벽. 하루를 밝히는 햇볕은 미처 창문에 닿지 않았다. 숙면을 취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꽃잠’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나 고작 ‘덕석잠’으로 소중한 휴식을 갈음해야 할 만큼 나는 바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잠꼬대처럼 중얼거리며 다시 ‘개잠’을 청한다. 적어도 세 시간은 더 자야 한다. 그때부터는 본격적으로 뒤척이기 시작한다. 그리곤 마치 실전을 사는 것처럼 꿈을 꾼다. 늘 그랬다. 오늘은 비둘기였다. 좁은 골목에 불 꺼진 가로등 위로 비둘기가 몇 마리 푸득거렸다. 내 창가에 앉아 아침을 달라는 듯 “구구구 구우~” 소리를 내기도 했다. 잠결에도 나는 그 소리가 좋았다. 그러나 창을 맞대고 홀로 사는 할머니는 그 소리마저 정색을 했다. “저리가~ 엠병할 노무 비둘기 새끼. 똥이나 찍찍 내지르고.” 꿈결 같은 아름다운 시간은 아주 드물게 찾아온다. 매일 꾸는 개잠 꿈의 8할은 의미 없거나 기억이 나지 않거나 아니면 흉몽이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하수구 위에 비둘기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골목을 덮고도 남을 날개를 가진 새 한 마리가 잠들어 있는 나의 얼굴을 덮친다. 그리곤 날카로운 부리를 흔들어 쪼아댄다. 독수리다.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고 나는 그저 방관할 뿐이다. 독수리가 쪼아대는 대상은 내 얼굴이 아니라 하수구 위에 늘어진 비둘기였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휴우~” 얼마나 큰 한숨이었는지 그 소리에 잠을 깬다. 늦은 아침을 위해 콩나물을 다듬으며 생각한다. ‘같은 종족을 죽여야만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동물이 몇이나 될까. 있겠지. 있을 거야. 그러나 사람만큼은 아니잖아?’ 오늘도 괜한 꿈만 꾸었다. 또 개꿈이다. 고작 비둘기의 사체나 뜯으려고 그 먼 시베리아로부터 찬 바람 헤치며 독수리가 날아왔겠는가 말이다. 독거인 같은 밥상을 차려놓고 콩나물 해장국을 한 숟가락 뜨며 생각한다. 아침 선잠의 꿈에 나온 독수리처럼 나는 누군가의 죽은 목숨 위에 날카로운 발톱을 들이대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게 살아 왔지는 않은가. 혹은 그렇게 살아야 하지는 않는가. 그래도 한때 찬란한 꿈을 꾼 적은 있었다.
꿈을 꿨었다
벗으로부터 사진을 전송받은 게 며칠 전이다. 바탕은 흰색이었으나 세월의 때를 잔뜩 묻힌 사진 한 장. 제목은 “완쾌되지 못한 것들에 대해 ㅡ 사람글패 제2시집”. 그도 이 책을 찾느라 온 집 안을 뒤집었었다고 하소연했을 만큼 오래된 시집이었다.
채 여드름 기가 가시지 않았던 소위 문청 시절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갓 제대한 청춘의 유일한 전리품인 야전상의 하나로만 일 년을 버텼던 철없는 복학생이었다. 시인이 되어야 한다고 매의 눈으로 시어를 사냥하던 청춘들과 어울리는 것 자체가 나 같은 딴따라에게는 무척 즐거운 일이었다. “이 책 발간이 90년도였지 아마?” 나름 이모티콘을 쏘아가며 살갑게 물었을 때 돌아온 답은 지극히 무뚝뚝했다. “아니 89년도.” 오랫동안 묵혀놓은 추억을 끄집어내면서 시인과 나는 정감 어린 단문을 주고받았다. 책 출간에 맞춰 무슨 행사를 했었던 것 같기는 하다. 강의실이었는지 단과대 앞 벤치였는지 아니면 고갈비 500원 하던 술집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늘을 신앙했지만 나의 꿈은 땅 위에 있었다. 오월이면 광주의 아픔을 최루탄 연기 속에서 달랬고 칠팔월엔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 누워 조국 통일을 외쳤다. 고공농성을 위해 골리앗 크레인으로 올라가는 노동자들의 함성을 조간신문의 1면 제목으로 들으며 울분을 토했었다. 그것이 나의 신앙이고 일상이었고 꿈이었다. “새”를 읽었다. 그리고 시인의 새를 부러워했다. 나의 꿈은 날개를 접고 내려앉으나 시인의 꿈은 가라앉지 않는 무게로 길게 울고 멀리 날고 있음을.
꿈을 꾼다
노래를 적어놓은 악보 원본은 찾을 길이 없다. 다만 기억에서만 선명하게 살아 2000년이 되어서야 음반으로 나오게 된다. 시집을 받은 즈음에 노래를 만들었고 이후 볕이 좋아 어슬렁거릴 때면 흥얼거리기 에도 좋았다. “길게 울어라 온몸으로 멍든 상처로. 멀리 날아라 슬프지 않은 노래로 이 땅 어디에나 자유로 날아라”. 노래를 부르면서 나는 언제나 자유였다. 시집이 발간된 후 일 년 뒤에 시인은 유수의 문학 잡지를 통해 등단했다. 등단 턱을 얻어먹었는지 등단 턱을 냈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꿈이 무엇인가를 물을 시간은 이미 지났다. 다만 지난날의 꿈이 나의 삶을 어떻게 지켜 왔는가를 반추하는 시간만 남았다. 그러나 꿈은 다시 꾸어 보는 것이다. 지상의 과제를 안고 사는 것을 꿈으로 여기는 날들을 접고 자유 이는 하늘로 한번 날아보고 싶은 것이다. 여전히 삶은 상처이나 그 상처 또한 축복이라고 믿으며 빛 내림 가득한 일몰의 한복판을 거슬러 날아가고 싶은 것이다.
“바다 그 황홀한 일몰 위에 어깨 위에 내리는 통증을 맡기며
길 없는 길을 날아 새 길을 만드니
언제라도 떠나지 않은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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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youtu.be/KvPD9XZeBpw


이지상 l
가수. 작곡가. 1991년 〈통일은 됐어〉 〈내가 그대를 처음 만난 날〉로 작품 활동 시작. 음반 《사람이 사는 마을》 《내 상한 마음의 무지개》 《위로하다 위로받다》 《기억과 상상》 《기억과 상상》 《그리움과 연애하다》 《나의 늙은 애인아》 등, 산문집 『이지상, 사람을 노래하다』 『스파시바 시베리아』 『여행자를 위한 에세이 北』 『대한민국 도슨트—포천』이 있음. 시노래 운동 모임 〈나팔꽃〉 동인.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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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2월호(VOL.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