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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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신미나 

 

 

 

 

무영(無影)

 

        

 

   

 

  첫 번째 꿈에 연수는 배춧잎 속에 있었다. 애벌레처럼 동그랗게 등을 말고 잠들었다. 옥색 배춧잎을 홑이불처럼 덮고서 단꿈을 꾸었다. 그 안이 너무도 포근하여 잠에서 깨고 싶지 않았다. 종일 풋잠에 들었다가 설핏 깼다. 밥도 먹지 않고 내처 잠만 잤다.

  두 번째 꿈에 연수는 호수 한가운데에 떠 있었다. 어떤 할머니와 배를 탔다. 할머니는 연지곤지를 찍었고, 누런 베옷을 입었다. 양쪽 볼에 찍은 연지곤지가 금방이라도 후드득 떨어질 것처럼 기이하게 선명했다.

  “괜찮다, 아가. 울어. 울어라… 괜찮다.” 할머니는 조가비처럼 작고 툽툽한 손으로 연수의 등을 연신 쓸어주었다. 연수는 토할 것만 같았다. 그러다 눈을 번쩍 떴다.

 

  베개가 눈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연수는 자면서 언제 이렇게 많이 눈물을 흘렸나 싶었다. 퉁퉁 부은 눈이 잘 떠지지 않았다. 연수는 그만 살고 싶었다. 지난하고 무기력한 삶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세상은 나를 버렸다. 아무런 의욕도 없는 삶을 연수는 인제 그만 끝내고 싶었다. 연수는 중얼거렸다. ‘데려가지… 할머니. 괜찮다고만 하지 말고, 나를 데려가지…’

 

  언젠가 연수는 엄마로부터 기묘한 꿈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할머니가 어디로 가더라.”

   “어디로?”

   “나도 몰라. 한 짝을 문밖에 걸어두고 갔어.”

   “무엇을?”

   “늬 할머니가 신던 누비버선을.”

  할머니는 맨발로 어디를 갔을까. 갈대가 무성한 둔덕을. 은사(銀絲)처럼 빛나는 백발을 무성하게 날리면서. 그 꿈을 꾸고 나서 며칠 뒤, 엄마는 집안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따-악!“

  그 소리가 들렸을 때 엄마는 부엌에서 숟가락으로 생강 껍질을 벗기는 중이었다. 그리고 불길한 예감이 들어 바짝 심장이 죄어드는 것만 같더란다. 엄마는 무슨 사달이 났다 싶어 몸을 벌벌 떨며 밖으로 나가 봤더란다. 시멘트 바닥에 뭔가 딱딱한 걸 세게 내리치는 소리. 그 크고 무서운 소리.

  엄마가 본 것은 할머니였다. 할머니가 길바닥에 대자로 누워 있더란다. 엄마는 할머니의 두개골이 시멘트 바닥에 깨지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고삐 풀린 황소가 할머니의 발을 밟은 채, 가슴팍을 뿔로 들이 박았다. 할머니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그 자리에서 숨을 거뒀다.

 

  연수는 오늘 꿈에 나타난 할머니가 엄마 꿈에도 등장했던 할머니인 것처럼 여겨졌다. 마땅한 이유 없이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연수는 실제로 할머니를 본 적 없었다. 제사 지낼 때 영정 사진으로만 봤을 뿐이다. 할머니는 연수의 손을 꼭 쥐고 노래를 불러주었다. 그때 연수는 양수 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흐릿한 알이 된 것만 같았다. 둥둥, 동동. 얇고 탄력 있는 막에 둘러싸여 둥둥. 이리저리 잔물결에 쓸리며 흔들리는 수초처럼 어화둥둥.

 

   “하나가 가면 둘이 된다

   둘이 넘으면 서이 된다

   천만이 만만이 산도 새로 솟는데

   왜 짐승 같은 눈물은 매듭 한 올 못 푸나

 

   어여 가니라 갔다 오니라

   서이 넘으면 너이 오너라

   네 눈썹 희게 되거든, 밤이 밝게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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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토츠가사레바후타츠가쿠루

 

  엄마는 한여름에도 춥다고 했다. 입술에 보랏빛이 돌았다. 떨며 이불을 덮고 지냈다. 어떤 사람들은 정신병이라 했고, 누군가는 신병이 들었다고 했다. 한겨울에 엄마는 덥다고 했다. 입술이 터서 하얗게 말랐고, 입에서 단내가 났다. 몸에서 불이 난다고 했다. 어떤 날은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어떤 날은 뭉티기를 사다가 허겁지겁 맨손으로 육회를 집어 먹곤 했다.

 

  하루는 집에 웬 여자가 찾아왔다. 그 여자는 엄마한테 말했다. 신을 받지 않으면 신벌을 받을 거라고. 엄마는 그 여자를 신어머니라고 불렀다. 엄마는 신어머니를 따라 무주로 갔다. 연수는 천장을 보며 무주, 무주라고 되뇌다 쓴 입을 다셨다.

 

  엄마는 연수를 버리고 신을 선택했다. 혈연을 끊는 고통을 주는 신이라면, 신이 아니라 귀신 아닌가. 연수는 신의 뜻이 얼마나 높은지 알고 싶지 않았다. 그저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채로 혈혈단신이 된 상황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제 샤먼이라면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었다. 도대체 예견된 운명이란 게 있기나 한가. 그런데도 매일 밤, 왜 이토록 무기력하게 선명한 꿈을 꾸는지 모를 일이었다. 마치 꿈꾸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만 같았다.

 

  연수는 축축한 베개를 베고 누워 고시원 창문에 비친 나무 그림자를 보았다. 그 앙상한 나무 그림자의 굴곡을 눈으로 좇았다. 마치 어릴 적에 엄마가 손그림자로 만들어주던 매처럼 보였다. 아니, 부챗살을 편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연수는 뭔가 뱃속에 뜨겁게 들어와 포개졌다가 한꺼번에 쑤욱 빠져나간 것처럼 허기졌다. 그리고 곰곰 신어머니라는 여자가 엄마를 데리고 떠날 때 했던 말을 떠올렸다.

   “너 대신 받은 거야. 네 엄마가. 안 그러면 네 몸을 친다고.” ■ 

 

 

                                                

   1) 一つが去れば二つが来る

      하나가 떠나면 둘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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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나  l 

200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싱고,라고 불렀다』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 산문집 『다시 살아주세요』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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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호(VOL.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