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상/오선지 위의 시어들
 
오선지 위의 시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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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지상 
완결여부 연재중 

 

 

 

 

오선지 위의 시어들 6

— 정양 시 「토막말」 : "정순아보고자퍼서죽껏다씨펄."

 

 

 

가을 바닷가에 

누가 써놓고 간 말 

썰물 진 모래밭에 한 줄로 쓴 말 

글자가 모두 대문짝만씩해서 

하늘에서 읽기가 더 수월할 것 같다 

 

정순아보고자퍼서죽껏다씨펄.

 

씨펄 근처에 도장 찍힌 발자국이 어지럽다 

하늘더러 읽어달라고 이렇게 크게 썼는가 

무슨 막말이 이렇게 대책도 없이 아름다운가 

손등에 얼음 조각을 녹이며 견디던 

시리디시린 통증이 문득 몸에 감긴다 

 

둘러보아도 아무도 없는 가을 바다 

저만치서 무식한 밀물이 번득이며 온다 

바다는 춥고 토막말이 몸에 저리다 

얼음 조각처럼 사라질 토막말을 

저녁놀이 진저리치며 새겨 읽는다 

 

    

  그런 날이 있었다. 늦은 아침 스마트폰을 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시였던 날. 어쩌다가 라디오를 틀면 귀에 꽂히는 게 시 낭송이고 약속 장소도 어지러운 필체의 시가 듬성듬성 붙어있는 선술집이며 술잔을 기울였던 이 또한 불콰해진 음성으로 시 노래 한 소절을 과격하게 불러대는 시인이었던 그런 날. 하루 종일 내 동선의 중심은 시였으나 그런 줄은 모르고 날이 흐리네 술맛이 착착 감기네 따위의 시덥지 않은 일설만 늘어놓다가 비척거리는 걸음걸이를 다 잡으려 털썩 주저앉은 골목에서는 능청맞게 늘어진 능소화 이파리에 입을 맞추고 청승맞은 노래를 불러댔던 그런 날. “씨펄 씨펄 ○○아 보고자퍼죽껏다 씨펄”. 통제할 수 없는 용오름처럼 밤하늘에 그리움을 뱉어내고 이내 잠들었던 그런 날.

 

  지난 5월의 마지막 날은 주말, 행선지는 횡성이었다. 영동고속도로의 주말 차량 정체는 상상을 초월한다는 시인의 걱정에 행여 행사에 늦을까 이른 아침부터 부산을 떨었었다. 〈예버덩문학의집〉을 10년 이끌었던 조명 시인의 환대는 화사했고 그 10년을 축하하기 위해서 전국에서 온 시인 소설가들이 내민 손은 따스했다. 혼자 음악인이라고 외따로 어색해하기에는 친한 이름들도 많았다. 춘천의 시인을 만났다. 그녀는 많이 아팠다고 했다. 시절이 어려우면 마음이 아프게 마련이지만 그녀는 실제로 몸이 아팠다.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고 이태원 참사 이후에는 증상이 더 심해졌다고 했다. 단지 마음으로만 아파했던 내가 미안해졌다. 그녀의 마른 손을 잡았다. “이제는 괜찮아질 겁니다. 주천강을 휘도는 물돌이동의 여울 소리가, 그곳의 바람을 양분 삼아 서로서로 꼿꼿한 전나무의 향기가 그리고 아침마다 자명종처럼 재잘거리는 물총새의 울음소리가 당신을 그렇게 만들 겁니다.” 시인을 만나 마치 시인이 된 것 같은 말을 속으로만 되뇌었다. 우리가 주고받은 것은 웃음뿐이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연극연출가인 최 작가는 대학 후배다. 속이 터질 정도로 말이 느린 친구인데 조근조근 읊조리듯 그가 보는 사회는 행사의 몰입감을 최대치로 끌어 올린다. 입체 낭독회의 주관자는 천 시인이었다. 본지에 “길이 말하길”을 연재하는 그녀는 나의 지난 칼럼을 언급해 주었고 나는 다시 시인이 될 듯한 착각에 빠지며 노래를 불렀다. 박 PD와는 시 노래에 관한 인터뷰를 했고 이름만 알고 있었던 문인들과는 마치 오래된 벗처럼 인사를 나누었다. 그날 만났던 사람들은 오직 문인들뿐, 그러니까 “그런 날” 흔치 않게 문학의 속살 속에 자리한 날이었다. 정양 시인의 부고를 들었던 날이 그날이었다. 창원 사는 시인 유철 형이 문자를 보냈다. “창원사는 김유철이오. 정양 선생님 부고 소식에 ‘토막말’을 거듭 들으며…… 보고자퍼 죽것다 씨펄.” 산 그림자가 벌써 도로를 삼킨 저녁이었다. 답장을 할 수가 없었다. 차를 세워 놓고 마음이 고요해질 때까지 산중의 그 저녁을 한참 동안을 서성거렸다.

 

  시인을 처음 만난 것은 2001년 봄 시노래 운동 ‘나팔꽃’이 피었던 샘터 파랑새 극장에서였다. 시인을 초대 손님으로 모셨고 나는 “토막말”을 처음으로 불렀다. 역시 핵심 구절은 “정순아보고자퍼서죽껏다 씨펄.”이었다. 그 구절은 선율을 붙이지 않고 중얼거리기만 했는데 반응은 제각각으로 뜨끈했다. 예상치 못한 욕설에 놀라 입을 가리는 소녀 같은 이가 있었고 통쾌하다는 듯 손뼉을 치는 이도 있었다. 다행히 불쾌한 듯 인상을 쓰는 이는 없었다. 이 구절은 실제로 시인이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보았고 군산이나 서천 어디쯤일 거라고 설명을 했지만 나의 기억이 정확치는 않다. 이 절절한 사랑의 고백이 무식한 밀물에 씻겨 나갈까 봐 조마조마하여 한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는 시인의 말은 뒤풀이 자리에서 들었던 기억이 있다. 이 구절은 두 번 반복된다. 간주 끝나고도 또 그대로 이어지니까 “씨펄”은 총 4번이 나온다. 작곡한 노래에 아무런 불만이 없다는 시인이 딱 한마디 했다. “사람들이 놀라는 것 보니 많이 나오면 거시기할 것 겉은디 그거 한 번만 허믄 안 되겄소.” 대시인의 권유에 옴싹 쫄은 나는 당연히 그리하겠다고 대답했다. 바이칼의 알혼섬을 다니러 간 친구가 사진을 보내왔었다. 바다 같은 호수의 모래사장 위에 그야말로 시처럼 하늘더러 읽어달라고 크게 써놓은 글씨 “정순아보고자퍼죽껏다 씨펄”이었다. 꽤 오랜 시간 공을 들였을 그의 편지에 대한 나의 답장은 간단했다 “너 술 많이 먹었구나.” 나의 활동과는 전혀 무관하게 동네에서 어울리는 벗이 뜬금없는 소식을 전해왔다. 이지상의 찐팬을 만났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인 줄 몰랐다며 사람 다시 보게 된다는 너스레에는 민망하기도 했다. 동명이인이 많으니 나는 아닐 거라고 짐짓 뒷짐을 졌지만 그럴 리 없을 거라는 자만도 있었다. 술자리에서 주인공을 만났다. 대뜸 “형님 나는 아니고요, 울 누이여요 누이.” 신안의 섬 출신에 전태일의 후배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이는 자그마한 봉제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울 누이가요 내가 형님 안다고 항께 환장을 해불드라니까요. 그 뭐시기인가요 욕 들어가는 그 노래. 그 노래를 좋아해 불드라고요.” 설마 했던 마음이 확신으로 굳어지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전화를 건넸다. 아직도 문학소녀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그 누이의 말이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목소리는 설레듯 떨렸고 앳되었다. 그녀는 영광에서 염전을 경영한다고 했다. 서해안, 밀물과 썰물을 다스리며 일출과 일몰 사이를 써레질하는 그녀의 빛나는 노동을 술잔에 담으며 통음했다. 젊은 날 그녀를 사랑했던 어떤 청년은 그 바닷가 어디쯤에 “애수가보고자퍼죽껏다 씨펄”을 크게 써놓았지도 모를 일이었다. 집에 있는 음반 몇 개를 주섬주섬 챙기고 서명을 했다. 곧 서해의 일몰이 찬란한 곳, 그녀의 땀방울이 봄날 숭어처럼 펄떡거리는 염전에 배달될 것이다.

  이 노래는 ‘아무나’ 모른다. 미디어를 통해 ‘씨펄“이 들어간 노래를 들을 일은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없다. 그러니 ’씨펄”이라는 막말이 세상의 어떤 고상한 언어보다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도 모른다. 더욱 그러니 이 노래를 통해 만나는 인연들은 귀할 수밖에 없다. 이 더위가 지나면 “씨펄”의 계절이 온다. 자연스레 “씨펄”의 시간도 많아질 것이다. 비틀거려도 좋은 어느 “그런 날”이 오면 “정양 시인님 보고자퍼 죽껏습니다 씨펄” 노래도 한 자락 부를 것이다. 그렇게 대시인을 추모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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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youtube.com/watch?v=Q-oa-OEKFKE&list=RDQ-oa-OEKFKE&start_radi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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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상  l

가수. 작곡가. 작가. 1991년 〈통일은 됐어〉 〈내가 그대를 처음 만난 날〉로 작품 활동 시작. 음반 《사람이 사는 마을》 《내 상한 마음의 무지개》 《위로하다 위로받다》 《기억과 상상》 《기억과 상상》 《그리움과 연애하다》 《나의 늙은 애인아》 등, 산문집 『이지상, 사람을 노래하다』 『스파시바 시베리아』 『여행자를 위한 에세이 北』 『대한민국 도슨트—포천』이 있음. 시노래 운동 모임 〈나팔꽃〉 동인.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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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호(VOL.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