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하재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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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이야기
여름에는 우산이 자주 필요하니까
예쁘고
펼치고 싶은 너의 우산을 많이 가져야 한다고,
유일하게 기억하는 선생님의 가르침입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면,
앞에 앉은 사람의 책이 홀리듯 재밌을 것 같고
책등의 제목을 훔쳐보며
책장 너머로 펼쳐질 여러 계절의 하늘을 상상합니다.
사계절이 영화 속 엔딩 자막과 같이 지나가는
바람 속
새들의 깃털이 떨어뜨린 가벼운 행선지를 계속해서
쫓고 있습니다.
친구들이 먼저 떠나고
여름과 나 사이에는
왔다가 가버린 것들과
아무래도 오지 않는 것들이
구름의 모양들이 만들어집니다.
풍선껌, 아이스크림, 강아지, 너의 얼굴의
윤곽이
흩어져
손가락으로 따라 그릴 수 없습니다.
우산을 손에 쥐고
거리를 걷다가
아 이건 남의 우산이구나, 깨닫고는
다 쓰지 못한 곡의 마지막 소절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듣습니다.
비가 우산을 타고 발등으로 떨어져 내립니다.
너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노래의 맨 뒷부분은
다른 사람이 부른 후렴구가 반복되고
그것이 참 아름답습니다.
오후의 비가 내려서
너의 어깨는 젖지 않고
나의 두 발등은 젖은 채로
나의 우산을 생각합니다.
우산살 하나하나에
접힌 이야기들이 해저처럼 담겨 있다 펼쳐지는
다음 여름의 나의 우산입니다.

하재연 l
2002년 《문학과사회》 등단. 시집 『라디오 데이즈』 『세계의 모든 해변처럼』 『우주적인 안녕』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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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호 신작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