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023
Extra Form Output
저자 하재연 

     

 

 

 

 여름 이야기

 

 

 

 

 

  여름에는 우산이 자주 필요하니까

  예쁘고

  펼치고 싶은 너의 우산을 많이 가져야 한다고,

 

  유일하게 기억하는 선생님의 가르침입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면,

  앞에 앉은 사람의 책이 홀리듯 재밌을 것 같고

  책등의 제목을 훔쳐보며

  책장 너머로 펼쳐질 여러 계절의 하늘을 상상합니다.

 

  사계절이 영화 속 엔딩 자막과 같이 지나가는

  바람 속

  새들의 깃털이 떨어뜨린 가벼운 행선지를 계속해서

  쫓고 있습니다.

 

  친구들이 먼저 떠나고

  여름과 나 사이에는

  왔다가 가버린 것들과

  아무래도 오지 않는 것들이

 

  구름의 모양들이 만들어집니다.

  풍선껌, 아이스크림, 강아지, 너의 얼굴의

  윤곽이

  흩어져

  손가락으로 따라 그릴 수 없습니다.

 

  우산을 손에 쥐고

  거리를 걷다가

  아 이건 남의 우산이구나, 깨닫고는

  다 쓰지 못한 곡의 마지막 소절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듣습니다.

 

  비가 우산을 타고 발등으로 떨어져 내립니다.

 

  너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노래의 맨 뒷부분은

  다른 사람이 부른 후렴구가 반복되고

  그것이 참 아름답습니다.

 

  오후의 비가 내려서

  너의 어깨는 젖지 않고

  나의 두 발등은 젖은 채로

 

  나의 우산을 생각합니다.

 

  우산살 하나하나에

  접힌 이야기들이 해저처럼 담겨 있다 펼쳐지는

  다음 여름의 나의 우산입니다.

 

 

 

 

 

 

 

 

 

 

 


 

신작시_하재연.png

하재연  l

2002년 《문학과사회》 등단. 시집 『라디오 데이즈』 『세계의 모든 해변처럼』 『우주적인 안녕』이 있음.

 

 

 

—

2023년 9월호 신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