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 저자 | 나석중 | ||
|---|---|---|---|
초점
이런저런 속절없는 생각을 발끝에 모아 디디며 걷는 날이다, 지난해에도 이맘때였던가, 누군가 저쪽으로 가벼운 손을 들어 가리켰다
관리인이 없는 공동묘지에는 역시 풀꽃이 지천이다, 어떤 봉분은 자손이 끊기었는지 작은 기척에도 놀란 멧새가 날아가는 마른 쑥대밭이다
주검을 가두는 일은 망자에 대한 기억을 저장하는 것인가? 한참 대답이 없다, 묻은 자는 옆에 없고 죽은 자는 못 들은 척이다
작은 풀꽃 앞에 무릎 꿇고 초점을 맞추는 노인장의 손등이 봄볕에 그슬려 흰 뼈가 드러나도록 야위었다
그 틈에, 해묵은 잔디밭을 여미며 겨우 솟아난 구슬붕이가 꽃단추처럼 반짝였다

나석중 l
2005년 시집 『숨소리』로 작품 홛동 시작. 시집 『저녁이 슬그머니』(2021년 아르코 문학나눔 도서) 『목마른 돌』 『외로움에게 미안하다』 『풀꽃독경』 『물의 혀』 『촉감』 『나는 그대를 쓰네』, 전자 시집 『추자도 연가』 『모자는 죄가 없다』, 디카시집 『라떼』 『그리움의 거리』가 있음.
—
2023년 8월호 신작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