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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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한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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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런 너〉, 한보리 시 / 한보리 곡

 

   

 

 

   

딸과 백숙

  

 

 

 

 

  딸이 여름 즈음에 몸을 푼다길래 나는 뒷마당에 닭을 기르기로 했다. 아무 닭이 아닌, 내 손으로 내 마당에서 키운 닭을 먹이고 싶어서였다. 봄날, 닭장을 새로 짓고, 장날 병아리를 사고, 날마다 물과 모이를 주며 정성을 들였다. 닭들은 바람대로 잘 자라주어 뒤뚱뒤뚱 걷는 뒤태가 볼만하였다.

 

  딸이 딸을 낳았다. 어른들이 흔히 말하던 내리사랑이라던 말은 여러모로 맞는 말이었다. 아직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아기인데도 손녀는 아내와 나의 눈을 멀게 했다. 처음으로 손녀를 안아보는 아내는 눈이 살풋 젖어 있고, 그 어미를 바라보는 딸의 미소에도 환한 슬픔이 묻어 있다.

  몸이 축나 있을 딸을 위해 닭을 잡았다. 유난히 더운 여름날 나와 아내와 딸과 사위가 머리를 맞대고 백숙을 먹는다. 내가 키운 닭이라 차마 목으로 넘기기 쉽지 않았지만, 애써 맛있다며, 거 참 맛있다며 먹었다. 숟가락에 노랗고 동그란 것이 걸려 나왔다. 뱃속에 있던, 아직 나오지 못한 배냇알이었다. 옛날 그랬듯이 귀한 것이라고, 아내가 내 그릇에 넣어준 것이었겠지. 나는 또 귀한 그것을 딸에게 먹이고 싶어 슬쩍 딸의 그릇에 넣어 주었는데……. 숟가락으로 몇 번 구슬려 보더니, 그릇 가상이로 밀어 놓더니, 백숙을 먹는 숟가락이 드문해졌다.

 

  딸은 첫 아이를 유산으로 잃은 적이 있다. 백숙 위에 올려진 노란 배냇알을 보고는 잃은 아이를 떠올렸을까? 아니면 세상의 모든 생명이 갖고 있는 근원적인 슬픔에 대해, 아니면 나고 나지 못한 생명들을 생각하다가 갑자기 마음이 어두워졌던 것일까, 딸은 “아빠, 나 이거 못 먹겠어!” 하며 내 그릇으로 떠넘겨 주었다. 나는 짐짓 별일 아닌 듯 받아서 얼른 먹어버렸다.

 

  딸은 결국 백숙을 남겼다. 딸이 남긴 백숙은 내게도 오래 남아서 삶과 죽음, 운명에 관한 생각이 오래 떠나지 않았다.

  살아 있던 무엇이 사라지는 일, 세상에는 없던 무엇이 생겨나는 일, 자연의 눈으로 보면 모두 당연한 순리다. 하지만 이리 쓸쓸함에 잠기게 되는 건 어인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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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보리  l

시인, 작곡가, 가수. 시집 『꽃 한 송이 주지 못했네』가 있음. 자작곡 음반 〈아내는 우동을 좋아해〉 〈소를 찾아서〉, 나팔꽃 동인 음반 〈아무도 슬프지 않도록〉 〈너를 향한 이 그리움은 어디서 오는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 참여 음반 〈집 나온 시,길 떠나는 노래〉 〈산〉 〈백창우-시를 노래하다〉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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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