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신동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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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할아버지의 구름 봉투
봄이면 구름이 멎는다 겨울꽃 두어 송이 심어둔 화분 가에 멎는다 골목 끝에는 누가 사나 억센 손아귀 서글서글한 눈매에 비밀스럽고도 따분한 시간을 알아낸 아이 하나 손톱에 때가 끼는 줄도 모르고 배꼽을 쓸어내리며 긴 하품으로 헤집어놓은 도랑 아까시나무 지나 학교 종소리 강아지 동무 삼아 건넌다 종아리에 물비늘이 돋는 줄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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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돌아올 것만 같은 저녁나절이다 날빛에 바랜 초록 잡풀이 우거진 마당으로 처마는 낮게 기울었다 반나마 허물어진 담벼락 탱자나무 울타리 벌어진 가시 틈으로 보인다 자줏빛 아궁이 버려둔 돌절구에 고인 낙숫물에 흔들리는 댓잎처럼 비뚜로 걸어둔 녹슨 거울 속에 달이 뜨면 양은상에 동치미 감자를 쪄 올린 함지박 위로 진득하게 떠오르는 별 무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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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트는 새잎 끄트머리 연둣빛 바람 불어 들창에 창호지 갈아입히는 한나절 오래 묵은 일기를 꺼내 바람도 쐤겠다 식어가는 댓돌에 엉덩이 깔고 앉아 이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보면 누구 하나 죽어도 모르고 한 시절 건널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봄눈 내려 마당을 덮고 사위는 조용한데 마당귀 돌 틈에도 두엄더미 삭은 물에도 새싹 돋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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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챗구멍에 구정물 흐르듯 쉼 없이 뛰는 작은 심장 소리였다 무논 개흙에 앉은 살얼음 그마저 녹고 나면 코뚜레 새로 해 얹힌 소가 샛강을 건너겠다 웃으며 고랑을 내고 울며 이랑을 갈겠다 헝클어진 전깃줄 넘어가는 하늘 아래 바랜 봉투 같은 구름이 한 장 구름장을 줴뜯으며 듣는 마른 우레에도 밤 깊으면 뉘 집 자식인지도 잊어먹고 긴 잠이 들었다

신동옥 l
2001년 《시와반시》 등단. 시집 『밤이 계속될 거야』 『달나라의 장난 리부트』 『앙코르』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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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호 신작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