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한보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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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강물이었을 때〉, 이토록 시 / 한보리 곡
내 몸속의 여덟
강물을 따라가며 울던 날이 많았다. 산 그림자가 강물에 차분히 들어앉아 있었고 목이 긴 두루미가 푸른 산허리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면 슬픔은 잠깐 울음을 잊고 망초꽃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에 마음을 두었다. 가벼워진 마음이 옛날을 더듬는다.
한때 나는 슬픔은 비누 같은 것이라고, 세월이 가면 차츰 닳아서 무디어지고 작고 동그래져서는 이내 흔적없이 사라지는 것이라 여겼던 적이 있었다. 책상 아래를 청소하다가 덜컥 걸려나온 고무지우개나 책갈피에 끼워진 메모지에도 묵은 기억이 있어 슬몃 슬픔이 일어날 때가 있다. 어떤 슬픔도 닳아서 사라지는 일은 없었다. 다만 마음속 모퉁이 자주 열지 않는 서랍에 넣어두었을 뿐, 슬픔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슬픔은 책상 아래 손닿지 않는 곳의 먼지처럼 덧쌓이는 것은 아닐까?
내 몸속에 여덟 살의 내가 살고 있다. 내 늙은 몸속에 세상 무서운 것 없던 서른의 내가, 지천명의 내가, 이제는 그러거나 말거나 세상에 무심해진 이순의 내가 함께 살아있음을 안다. 내 안에는 강이 하나 흐른다. 여러 겹의 시간과 기억이 혼재해 흐르는 강이다. 그 강가 모래톱에 어린 내가 늙은 나를 데리고 산다. “옛날의 일들이 몸 안에서 출렁”이면 어린 여덟살의 내가 늙은 내 등을 쓰다듬어주기도 한다.

한보리 l
시인, 작곡가, 가수. 시집 『꽃 한 송이 주지 못했네』가 있음. 자작곡 음반 〈아내는 우동을 좋아해〉 〈소를 찾아서〉, 나팔꽃 동인 음반 〈아무도 슬프지 않도록〉 〈너를 향한 이 그리움은 어디서 오는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 참여 음반 〈집 나온 시,길 떠나는 노래〉 〈산〉 〈백창우-시를 노래하다〉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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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