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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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허연 

  

이달의시인_허연.png

 

 

  [이달의 시인] 허연
  신작시: 마지막 비행 / 우울한 고원 / 지하철 정거장에서

  자선시: Y의 해변 / 시는 검고 애인은 웃는다

 
  [시인론] 오연경 "
날아오른 것들의 빛나는 슬픔"

 

 

 

 


 신작시 


 

 

 

 마지막 비행    

  

 

      

 

   

  태양에 대해 뭔가 쓴다는 건

  어떤 긴 사연들과 대결하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은 울고 태양은 뜬다

 

  숱한 눈물이 말라서

  기체가 되어버린 나방을 안다

 

  스스로 타버린 것들

  유리한 것이 불리한 것이 될 때까지

  날아오른 것들

 

  한 일과

  하지 않은 일이 운명을 결정하는 법

 

  타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깨끗해지는 하늘

  타버린 것들

  날아오른 것들

 

  태양은 헌신을 받아주지만

  답은 해주지 않는다

 

  타버린 나방에게만 보였던 세상이 있다

 

 

 

 

 

 

 

 

 

 

 



 

 

 우울한 고원

     

     

 

 

  

  1.

   

  반대편을 볼 수 없어서

  이 고원에선 날개가 필수다

 

  결국 A가

  기뻐도 기쁘지 않다며 울었을 때

  우리는 날아오르기로 했네

 

  처음도 마지막도 아니었던

  지난여름

 

  남쪽 창문과 북쪽 창문을 번갈아 보다가

 

  벽지 무늬를 따라가다 보면

  햇살은 어느새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은 채

  방 한가운데 들어와 있었고

 

  A가 가라앉았던 그 여름

  나는 아프느라 바빠서

  내일도 모레도 말해주지 못했네

  아프면 순간만 있으니까

 

  A의 금붕어와 A의 사과나무와

  A의 노래와 그리고

  A의 이동

  이런 걸 볼 수 없었네

    

  2.

   

  늘 그 모양인 게 싫어…

  그럼 이렇게 하자 A

 

  내 자전 속도에 맞춰

  A는 반대편으로 날아

  그러면 나를 만날 거야

 

  시든 이파리 같은 얼굴로

  A는 날아올랐네

 

  반대편에서 만난 우리는

  도착의 놀라움을 안다

  놀랍게도 달라질 수 있는 건 없었네

   

  3.

   

  상승기류는 슬픔을 날려 보내는 게 아니라

  슬픔을 스쳐갈 뿐이다

  슬픔은 있다

 

  우리는 주문을 외운다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을 상상하기

 

  “이젠 이별과 함께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

 

  고원에서 내려다보면

  보이는 운명들이 있었다.

 

 

 

 

 

 

 

 

 

   

 



 

 

 지하철 정거장에서*

       

   

    

      

 

  (나아지는 건 없다)

 

  숲에선 어떤 위험도 잊으면 안돼요

  안내할게요

 

  모두가 두려워한다는 게 이 숲의 매력이죠

  증명해야 할 이유가 있나요?

 

  우리는 최초의 생명일까요

  아니면 최후의 생명일까요?

 

  당신은 오후에 죽은 자일까요

  아니면

  아침에 태어날 자일까요?

 

  대답은 하면 안 돼요

  숲에선 털어놓지 마세요

 

  숲에 사는 모든 것들은 위험해요

  고요하거든요

  그들의 무기예요

 

  여기서 모든 것들은 매일 매일

  운명이 바뀌어요

  측백나무가 쓰러지듯

  이 음(音)에서 저 음으로

 

  모두에게 좋은 일은 절대 없어요

  그래도 모두가 순응하죠

 

  숲에서의 날들은 그래요

  모순이 아닌 것처럼 말이에요

 

  숲에 사는 모든 것들은 결국

  자기 자신을 체험해요.

 

 

                            

  * 에즈라 파운드의 시

 

 

  

 

 

 

 

 

 

 

 


 자선시 


 

 

 

 Y의 해변

 

 

 

 

 

  (타인들과 나누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다)

  Y는 하루가 차갑고 현명했다고 생각했다.

  해가 질 무렵이었고

  바다에서는 소녀들이 까르르대며 모래사장을 뛰어다녔고

  상인들은 물끄러미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확실하게 살고 싶거나 죽고 싶거나 한

  그런 풍경은 아니었다.

  그저 해변이었다.

  Y는 커피를 마시며

  사선으로 난 파라솔의 긴 그림자가

  조금씩 오른쪽으로 움직일 때마다

  어떤 노래의 첫 구절을

  휘파람으로 불었다.

  잠시 후 자리에서 일어난 Y는

  주차된 차들 유리창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면서

  슬프지만 신이 난 듯한 걸음걸이로

  생선 굽는 냄새가 가득한 상가에 들어섰다.

  좁은 길을 무용수처럼 걸으며

  기쁨과 슬픔이 흘러 다니는

  이 해변 마을의 밸런스에 대해 생각했다.

  십일월의 바다는 Y에게

  의미심장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이었고

  감각이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관리되지 않는 것

  해변에서 Y는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파묻었다

 

  실루엣만 그려진 채 팔려나가는

  색칠 놀이 그림책처럼

  Y가 있었다.

 

 

                             

  - 《문학과사회》 2022년 봄호

 

 

 

 

 

 

 

 

 

 

 


 

 

 

 시는 검고 애인은 웃는다

        

   

    

  

 

  용서는 해뜨기 전에 하는 거라지만

  이불에서 나오듯

  아파트를 나왔다

 

  견인선이 필요하다

  강의 싸늘함을 보다가

  가슴을 치며 2월에 대해 쓰거나

 

  무개화차가 필요하다

  무인역사에서

  이상한 용기를 내서

  헤어져야 할지도 모른다

 

  불현듯

  애인은 애인이 아닌 것 같다

  사랑도 사랑이 아닌 것 같다

  뼛속으로 길을 내는 일인 것 같다

 

  청하는 것보다 서로 많이 주었지만

  우리는 적다

  얼굴이 안 보이고

  심장이 안 느껴지고

  단지 시를 낳을 것이다

 

  지난겨울은

  멀리서 온 나쁜소문처럼

  아무 확신이 없었고

  가엾게도

  셀 수 없이 희한한 것들을 만들고

  그것들은 언제나 초안이었다

 

  애인은

  혼자가 되어서 성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혼자가 될때 성숙해지는 거라고 말했다

 

  나는

  회청색 새들이

  수 세기 동안 그래왔듯이 그날의 근심을 퍼뜨릴 것이다

 

  시는 검고

  애인은 웃고

  우리는 달성될 것이다

 

  어떤 날씨와 어떤 날씨의

  교체에 관한 이야기다

 

 

                             

   - 《문학동네》 2022년 봄호

 

 

 

 

 

 

 

 

 

허연  l

1991년 《현대시세계》 등단. 시집 『불온한 검은피』 『나쁜 소년이 서 있다』 『내가 원하는 천사』 『오십 미터』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가 있음. 〈현대문학상〉 〈한국출판학술상〉 〈김종철문학상〉 〈시작문학상〉 등 수상.

 

 

 

 

 

 

   


 시인론 / 오연경   


 

 

 

 

 

날아오른 것들의 빛나는 슬픔

ㅡ 최근 시에 부치는 단상

 

        

 

 

 

허연의 시는 일관되게 슬픔으로 가득하다. 그 슬픔은 우리가 저마다 겪었거나 겪고 있는, 그래서 잘 알고 있는 보편적 경험을 관통하지만, 그의 언어를 통해서야 비로소 그것이 남긴 고유한 질감을, 아찔하고 아름다운 슬픔의 감정을 재경험하게 된다. 허연의 시는 각자 살아온 생의 굽이마다 버려두고 떠나온 나를, 지금 이 순간에도 혼자서 바람을 맞고 있는 저 고원의 나를 마주하게 해준다. 고원은 숲속을 헤매고 땅바닥을 기어 다니느라 올려다보기를 잊은, 그러나 그곳에서라면 운명을 바꾸지는 못해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삶의 다른 지평이다. 허연은 이번 신작시에서 저 고원 위의 조망을, 거기서 날아오른 것들의 운명을 그려 보인다. 태양을 향한 날갯짓은 익히 알고 있는 신화적 이야기지만, 허연은 이 모티프를 통해 “스스로 타버린 것들”(「마지막 비행」)의 존재론적 비행을 보여준다.

    

   태양에 대해 뭔가 쓴다는 건

   어떤 긴 사연들과 대결하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은 울고 태양은 뜬다

 

   숱한 눈물이 말라서

   기체가 되어버린 나방을 안다

 

   스스로 타버린 것들

   유리한 것이 불리한 것이 될 때까지

   날아오른 것들

 

   한 일과

   하지 않은 일이 운명을 결정하는 법

 

   타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깨끗해지는 하늘

   타버린 것들

   날아오른 것들

 

   태양은 헌신을 받아주지만

   답은 해주지 않는다

 

   타버린 나방에게만 보였던 세상이 있다

- 「마지막 비행」 전문

 

   

“세상은 울고 태양은 뜬다”. 세상이 우는 것과 태양이 뜨는 것 사이에는 어떤 선후관계도, 어떤 인과 관계도 없다. 세상의 본질이 울음에 있다면, 사람살이와 무관한 태양의 본질은 변함없이 뜨고 지는 데 있다. 지구가 도니까 지구 위에 사는 인간 입장에서 ‘뜬다’고 말할 뿐, 태양은 기원을 알 수 없는 먼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인류 문명사와 상관없이 자기 자리를 지켜온 존재자다. 그러나 인간은 태양에 대한 긴 사연을 기록하며 인류 문명사를 일구어 왔다. 시인은 “태양에 대해 뭔가” 쓰기로 결심하면서 “어떤 긴 사연들과 대결”을 각오한다. 그만큼 이 시는 긴 사연들을 품은 최후의 이야기, 역사와 신화를 넘어선 시적 인간론을 꿈꾸고 있는 것이 아닐까. “숱한 눈물이 말라서 /  기체가 되어버린 나방”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태양은 눈물이 마르는 일, 액체가 기체로 변하는 일에 관여한다. 이 관여에는 어떤 감정도, 어떤 의도도 없다. 그러나 태양을 향해 날아오른 나방에게는 “숱한 눈물”로도 견디기 힘든 감정이, 한 줌 연기가 될지언정 몸을 버릴 의도가 있다. 그러니까 “스스로 타버린 것들”에게는 그렇게 자기를 태워버릴 수밖에 없는, “유리한 것이 불리한 것이 될 때까지” 자기 자신을 끝까지 밀고 가야만 하는 궁극의 무엇이 있다. 이카로스에게 밀랍으로 만든 날개는 크레타 섬을 탈출하게 해줄 ‘유리한 것’이었지만 그것이 곧바로 ‘불리한 것’으로 녹아내릴 때까지 이카로스는 태양 가까이 날아올랐다. 추락하기 직전 유리한 것과 불리한 것이 자리를 바꾸는 순간 이카로스가 가장 높은 곳에서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타버린 나방에게만 보였던 세상이 있”는 것처럼 추락과 소멸, 실패와 죽음이 예정된 그 최대한의 날아오름에서만 볼 수 있는 세상이 있다. 그 궁극의 지평을 향한 날갯짓은 “답”을 바라지 않는 “헌신”, 오로지 스스로 “한 일과 / 하지 않은 일”에 존재의 운명을 걸겠다는 결연한 감내가 아니겠는가.

소멸을 향한 저 마지막 비행은 어리석고 무모하지만 시적이다. 지금-여기에서는 볼 수 없는 무언가를 보기 위해, 약속되지 않은 예외적 순간을 위해, 지금까지의 자신을 지켜주었던 모든 것들을 버린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여기에는 철저히 혼자서 자기 자신과 대결하는 절대 고독이 있다. 하지만 세상의 울음에는 언제나 타인이 개입해 있다. 타인에 대한 불가능한 꿈이 미망(迷妄)을 낳고, 사랑의 미망은 고독과 싸운다. 날개의 두 번째 용도가 여기에 있다.

   

   반대편을 볼 수 없어서

   이 고원에선 날개가 필수다

 

   결국 A가

   기뻐도 기쁘지 않다며 울었을 때

   우리는 날아오르기로 했네

 

   처음도 마지막도 아니었던

   지난여름

 

   남쪽 창문과 북쪽 창문을 번갈아 보다가

 

   벽지 무늬를 따라가다 보면

   햇살은 어느새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은 채

   방 한가운데 들어와 있었고

 

   A가 가라앉았던 그 여름

   나는 아프느라 바빠서

   내일도 모레도 말해주지 못했네

   아프면 순간만 있으니까

 

   A의 금붕어와 A의 사과나무와

   A의 노래와 그리고

   A의 이동

   이런 걸 볼 수 없었네

- 「우울한 고원」 부분

 

   

A는 울고 나는 아프다. A의 울음과 나의 아픔은 서로에게 닿지 못한다. 고원에서는 반대편을 볼 수 없다. 자기편의 시야만 가능한 것이 고독한 생명의 존재론적 한계이자 조건이기 때문이다. A에게는 “A의 금붕어와 A의 사과나무와 / A의 노래와 그리고 / A의 이동”과 같은 숱한 사연이 있다. “나는 아프느라 바빠서” 그것들을 볼 수 없었고 “아프면 순간만 있”어서 어떤 약속도 할 수 없었다. 햇살이 우리의 “방 한가운데 들어와 있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는다. “늘 그 모양인 게 싫어”서 “우리는 날아오르기로 했”다. 반대편으로 날아 다시 만난다면 우리는 달라질 수 있을까? 반대편에서의 만남은 이루어졌지만 “놀랍게도 달라질 수 있는 건 없었”다. 있는 힘을 다해 날아 오른다 해도, 볼 수 없었던 반대편에 도착한다 해도 슬픔은 사라지지 않는다. 타인에게 닿아보려는,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을 상상”해보려는 날갯짓도 “슬픔을 날려 보내”지 못한다. “이젠 이별과 함께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라는 말이 A와 내가 함께 할 수 있는 최후의 다짐, “고원에서 내려다보면 / 보이는 운명들”의 미래인지도 모른다.

허연은 늘 운명에 대해 말한다. 그는 인간의 의지로 바꿀 수 없는 운명을 인정하지만, 그 운명을 최선을 다해 겪어내는 인간의 숙연한 선택을 숭배한다. 허연의 시는 자신의 운명을 직시할 저 고원 위에 우리를 데려다 놓고 이미 지나간 슬픔과 앞으로 닥쳐올 슬픔을 한눈에 조망하게 한다. 그리고 다시 지상으로 내려와 고원의 조망을 간직한 채 현실을 살게 한다.

   

   숲에 사는 모든 것들은 위험해요

   고요하거든요

   그들의 무기예요

 

   여기서 모든 것들은 매일 매일

   운명이 바뀌어요

   측백나무가 쓰러지듯

   이 음(音)에서 저 음으로

 

   모두에게 좋은 일은 절대 없어요

   그래도 모두가 순응하죠

 

   숲에서의 날들은 그래요

   모순이 아닌 것처럼 말이에요

 

   숲에 사는 모든 것들은 결국

   자기 자신을 체험해요.

- 「지하철 정거장에서」 부분

 

    

이 시는 “(나아지는 건 없다)”라는 괄호 친 문장으로 시작한다. 괄호는 이 문장이 건드릴 수 없는 대전제라는 것을 암시한다. 인간의 의지로 나아지게 할 수 없다는 것이 숲의 본질인 것이다. 이 숲의 위험은 누구도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데 기인한다. 우리가 “최초의 생명”인지 “최후의 생명”인지, 당신이 “오후에 죽은 자”인지 “아침에 태어날 자”인지 아무도 모른다. 시간은 선형적으로 흘러가지만 시간이 결정하는 운명에 대해서는 개입할 수도, 예언할 수도 없다. “숲에 사는 모든 것들”이 위험한 이유는, 모두가 이 알 수 없는 운명에 침묵으로 순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좋은 일은 절대 없어”도 매일 매일 바뀌는 운명의 리듬에 순응하며 “이 음(音)에서 저 음으로” 자기 자신을 연주할 뿐이다. 오늘은 눈물을, 내일은 사랑을, 그리고 가깝거나 먼 훗날에는 죽음을 맛보며 “숲에 사는 모든 것들은 결국 / 자기 자신을 체험”한다.

이 시의 제목은 에즈라 파운드의 시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것은 “군중 속에서 유령처럼 나타나는 이 얼굴들, / 까맣게 젖은 나뭇가지 위의 꽃잎들”이라는 강렬한 이미지로 이루어진 짧은 시이다. 에즈라 파운드가 어둡고 우울한 지하철의 군중 속에서 꽃잎처럼 떠오르는 존재의 현현을 포착했다면, 허연은 빽빽한 군중의 숲에서 당장 어떤 다음을 맞이할지 모른 채 자신의 운명을 연주하는 무력하고 성실한 고독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다음 계단에서 고꾸라질지, 그다음 계단에서 어딘가에 도착할지 알지 못한 채 환희도, 약속도 없는 생의 계단을 묵묵히 오른다. 형벌 받은 시시포스처럼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관리되지 않는 것”을 최선을 다해 밀어 올리며 “타인들과 나누고 싶지 않은 것들” “할 수 없는 이야기”(「Y의 해변」)를 가슴에 묻는다.

우리는 Y의 해변에서 그의 시선과 그의 생각과 그의 휘파람과 그의 발걸음을 좇아 그가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듣는다. 거기에는 언제나 무개화차 지나가는 소리가 있다. 시간처럼, 운명처럼, 사랑처럼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들이 비를 맞으며 속수무책으로 실려 가는 소리. 위험하지만 매력적이고, 쓸쓸하지만 아름답고, 모순 덩어리이지만 껴안을 수밖에 없는 생이 무심한 속도로 제 갈 길을 가는 소리. 떠나가는 소리는 선명한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막막하다고 생각할 때 이토록 환하게 주어지는 이미지가 있다.

 

   시는 검고

   애인은 웃고

   우리는 달성될 것이다

 

   어떤 날씨와 어떤 날씨의

   교체에 관한 이야기다

- 「시는 검고 애인은 웃는다」 부분

 

 

“애인은 애인이 아닌 것 같”고 “사랑도 사랑이 아닌 것 같”을 때 사는 일이 “뼛속으로 길을 내는 일”이라는 생각이 찾아온다. “청하는 것보다 서로 많이 주었”던 날들의 날씨가 있고 “다시 혼자가” 된 날들의 날씨가 있다. 아침마다 가슴을 치며, 밤마다 자신에게로 침잠하며, 헤어지고 다시 헤어지고 혼자가 되고 다시 혼자가 되어 뼛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단지 시를 낳을 것이다”. 그렇게 날씨와 날씨의 교체를 겪고서야 “우리는 달성”된다. 각자의 고원에서 날아오를 수 있는 데까지 날아오르는, 태울 수 있는 것을 끝까지 태우는 생의 과업에 충실할 때 비로소 저 고달픈 시간은 시를 낳는다. 그리하여 “시는 검고 / 애인은 웃”는다. Y의 해변에는 검은 시의 빛나는 슬픔과 웃는 애인의 고독한 아름다움이 있다.

 

 

 

 

 

 

 

 

 

(수정) 시인론_오연경.png

오연경  l 

2009년 《동아일보》 문학평론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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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