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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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한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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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 정희성 시 / 한보리 곡

 

   

 

   

봄날의 연두

  

   

 

 

  벚꽃이 지고 나면 산벚꽃, 봄 산을 느린 걸음으로 올라간다. 산벚꽃이 올라가는 그 뒤를 따라 참나무 붉나무 층층나무 오리나무 등등 온갖 나무들이 피워내는 새순, 그 여린 빛이 따라 올라간다. 4월의 산빛은 하루도 같은 날이 없이 날마다 변한다. 노랑에서 겨자 연두 연록을 거쳐 초록으로. 이파리가 짙은 녹색이 되면 어느덧 여름의 초입이곤 했다.

  어려서는 오리나무의 밝고 신선한 초록을 좋아했었다. 지금도 여전히 좋아하지만 나이가 든 이제는 여러 나무들의 봄빛 중에서도 참나무의 빛깔이 좋아졌다. 오만 가지 색이 뒤섞인 변화무쌍한 그 빛을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조금은 더 젊었던 때를 생각해본다. 그땐 이것도 저것도 아닌,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어정쩡한 색을 좋아하지 않았다. 빨갛거나 노랗거나 파랗기를, 검거나 혹은 온통 흰빛이기를 바랬던 것 같다. 구부러지느니 차라리 부러져버리고 싶었던 때였다.

  봄날의 산책은 즐겁다. 화순 전대병원 뒤편 산책길을 걷는다. 키가 큰 여러 종류의 나무들로 이루어진 오솔길은 눈을 들면 연두로 가득 채워진 숲이다. 빛의 향연 화사한 풍경의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만 같다. 예전 내가 알던 숲은 나무들이 서로 공간을 침범하지 않고 동그마니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나무들의 관계이며 그 관계가 숲을 만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여기 숲은 달랐다. 서어나무 가지가 꽃핀 벚나무의 가지 사이로 뻗어 있고 팽나무, 느티나무, 동백나무와 살구나무도 사정은 그러했다. 서로의 심장 가까이 손을 넣고 있는 듯이 가까이 서로를 허용하고 있었다. 숲에 대해 내가 알고 있던 것은 오해였었다.

 

  산책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 먼발치에서 내가 걸었던 곳을 바라본다. 노랑과 파랑의 사이, 그 많은 스펙트럼의 빛깔들이 어우러진 산빛. 좋은 관계란 호오(好惡)를 떠나 상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일이며 부러지는 것보다는 내가 스스로 구부러지는 것이 포용이라는 것을 연두에게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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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보리  l

시인, 작곡가, 가수. 시집 『꽃 한 송이 주지 못했네』가 있음. 자작곡 음반 〈아내는 우동을 좋아해〉 〈소를 찾아서〉, 나팔꽃 동인 음반 〈아무도 슬프지 않도록〉 〈너를 향한 이 그리움은 어디서 오는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 참여 음반 〈집 나온 시,길 떠나는 노래〉 〈산〉 〈백창우-시를 노래하다〉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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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