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이동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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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날이 흐려
외출 준비를 하다 생각에 잠긴다
우산에 관해 말하자면 우선 손가락이 필요하다
손가락을 차례로 접으며 결국 하나의 마음이 되는 것
상대는 자주 보이지 않았으니
나는 주먹을 높이 들고 걸어야 했다
그러니까 이건 우산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주먹을 쥐었다 펴며 나는
가질 수 있는 것과 놓아야 하는 것을 배웠다
머리카락을 만지며 비를 생각한다 네 머리카락은 장마와 함께 찾아왔구나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것은 무엇인가 지나간 뒤에도 손가락에 남는 것은. 비는 종일 내리고, 그 뒤에 남은 것들을 생각한다 비는 계속 오는데 당신의 머리카락을 만지며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머리카락처럼 길고 가는 것들이 밖에 가득한데,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때
어둠은 무엇으로 가득한 것인가
무엇을 위해 텅 비어 있는 것인가
나는 걸어가며 빗속에 틈을 발견하기도 한다
우산 아래 있는 사람과
우산 밖에 있는 사람은 무엇이 다른가
주먹을 펴기 전까지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듯이, 당신 우산 안에 무엇이 있는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 당신은 아직 이별에 실패한 사람 울음에 특화된 사람 보이지 않는 사람 보이지 않아 함부로 우는 사람 보이지 않아, 볼 수 없는 사람
나는 우산을 쓰고 광장을 걸었다
비는 어둠에 녹지 않으면서
비는 어둠을 분해하며 내린다
광장은 아름다웠지만, 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니었는지 모른다
외출에서 돌아와
방 안에
우산을 펼쳐놓았다
우산은 한 손으로 쥘 수 있다
우산은 곧 활짝 피어날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
그 안으로 허기와 사랑과 치욕과 혁명이 모여들어,
비는 곧 그칠 듯하지만,
오늘 비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 페르난두 페소아,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이동욱 l
200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2009년 《동아일보》 단편소설 당선. 시집 『나를 지나면 슬픔의 도시가 있고』, 소설집 『여우의 빛』이 있음. 〈수주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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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호 신작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