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 저자 | 박완호 | ||
|---|---|---|---|
번지점프
서로 먼저 죽겠다고,
추락할 때를 기다리다 말고
번지점프 티켓 같은
패를 번갈아 손에 쥐고 돌리며
매번 새로운 낙엽이 진다, 허공에서는
이파리가 하나씩 떨어질 때마다 낯선
꿈의 새순이 덧니처럼 돋았다 지워지고
잇단음표를 달고 몰려드는,
티켓도 없이 앞다퉈 떨어져 내리는
암표 구매자들
낙엽 진 자리에 돋아날
연한 절망은 그러므로
나의 몫이 아니다, 그건
나도 모르는 나의
얼굴, 꿈에서조차 만날 일 없는
민낯의 절망
일련번호 없는 번지점프 티켓을 손에 들고 저기 아무렇게나 서 있다

박완호 l
1991년 《동서문학》 등단. 시집 『문득 세상 전부가 되는 누군가처럼』 『누군가 나를 검은 토마토라고 불렀다』 『기억을 만난 적 있나요』 『너무 많은 당신』 『물의 낯에 지문을 새기다』 등이 있음. 〈김춘수시문학상〉 등 수상.
—
2023년 3월호 신작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