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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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향지 

     

 

 

 

 달비계 타는

     

 

 

 

 

  25층 지붕에 유리 청소부 밧줄 걸렸다

  달 높이로 올라간 유리창들

  몽롱한 잠 깨워서 물로 씻어주는 날

 

  하늘 가운데 로프를 걸고 자유자재 조종할 수 있는 사람

  하늘 속 그네 의자에 앉았다

 

  멀리서 바라볼 때는 그림이더니

  한 겹 버티컬 블라인드 날 사이로 보니

  가장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밥그릇

 

  건너편 지붕에서 왔다 갔다 하던 모자가

  마침내 우리 유리창까지 왔다

 

  눈을 주고 손을 주고 발을 줄 수 있는 도구들

  빠짐없이 허리에 둘렀다

 

  매달고,

  매달렸다,

 

  끝이 끝을 붙잡고 있다,

 

  행동반경 이삼 미터,

 

  내려다보는 깊이는 아득하다,

 

  땅에 발을 디딜 때까지

  흔들리며 내려가야 할

  로프

 

  한 사람의 서커스

  한 사람의 외로움까지

  달비계를 타고 있다

 

  달비계에 달린 물줄기가 유리창을 훑고 지나간다

  더께 앉은 얼룩 씻어내리기에는 역부족인 물줄기

 

  모자의 전면은 거울이다

  유리창 이면의 얼룩까지 어른어른 겹치는 순간

  문득문득 자기 얼룩까지 떠올라

  더 먼 구석까지 밀고 다니는 거품 방울들

 

  모양 칼라 높낮이 모서리 같아도

  같은 흠집 같은 얼룩은 없었다

 

  마당 있는 집에서 살 때

  우리 유리창은 우리 손으로 닦았다

  흐르는 물을 끌고 다니며 질퍽질퍽

  봄맞이할 수 있었다

 

  세상 안 모든 얼룩은 무엇과 스치며 얽힌 흔적들이다

  희미하거나 모를 때는 그냥 지나가지만

  이미 한 덩어리 되었을 때는

  독한 세제와 거친 마찰과 충분한 물이 필요해진다

 

  가진 계란을 한 바구니에 모아 담지 말라지만

  사람들은 점 점 더

  달비계 타는 유리 크레바스 그늘로 모여든다

 

 

 

 

 

 

 

 

 

 

 


 

신작시_이향지.png

이향지  l

1989년 《월간문학》 등단. 시집 『괄호 속의 귀뚜라미』 『구절리 바람소리』 『물이 가는 길과 바람이 가는 길』 『내 눈앞의 전선』 『햇살 통조림』 『야생』, 에세이 『산아, 산아』 등, 편저 『윤극영 전집 Ι ∙ ΙΙ』가 있음. 〈현대시작품상〉 수상, 2013·2022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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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호 신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