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023
Extra Form Output
저자 김효선 

  

    

 

 

 

흙

ㅡ 내가 빚는 내 얼굴로 사라지기

 

 

        

 

 

언제부턴가 봄을 기다리는 이유는 쑥이다. ‘쑥’이라고 하니 뭔가 쑥 올라올 것 같은 자세다. 그 쑥이 뭐라고 나는 이 봄을 기다릴까. 기온이 올라가면서 햇살이 물큰해져 급한 마음에 쑥을 찾아 나섰다. 햇볕 잘 드는 곳을 골라 눈에 힘을 줘 보지만 아직 파릇한 목덜미는 보이지 않았다. 눈동자가 땅에 닿을 만큼 허리를 구부려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그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고양이 한 마리가 나를 향해 야옹거리며 걸어오는 것이 아닌가. 덩치가 꽤 컸다. 나는 너무 놀라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놀라서 지른 소리에 고양이도 걸음을 주춤하더니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그러더니 벌러덩 드러누워 버리는 것이 아닌가. 도대체 나보고 어쩌라는 말이지? 배가 고파서 그런가 하고 마침 가방 안에 있던 과자를 던져 주었다. 그런데 먹지도 않고 계속 가냘픈 소리로(그렇게 들렸다) 야옹거리기만 했다. 동물의 털을 한 번도 쓰다듬어본 적 없는 내가 그 소리를 알아들을 리 없다. 낯선 세계와의 조우는 내겐 참 어려운 일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어떤 두려움으로 닫아버린 세계다. 가슴이 더욱 철렁 내려앉은 건 고양이라기보다 살쾡이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얼굴 생김새가 어딘지 좀 달라 보였다. 나는 참 아이러니하게도 동물에게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면서 동물 다큐멘터리를 즐겨본다. 현실에서는 다가가기 힘든 존재지만 어느 정도 거리를 둔다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들의 세계는 보면 볼수록 꽤 신비롭고 흥미진진했다. 쫓고 쫓기는 먹이사슬의 관계. 흙에서 뒹굴고 땅속에 숨고 결국 다른 동물들의 먹잇감으로 덩그러니 남겨졌다가 자연스레 흙으로 스며든다. 여전히 문명과 상관없는 원시의 태도다. 현실을 똑바로 마주하기 힘들 때 비현실적 태도는 회피라기보다 오히려 자기방어에 가깝다.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쓰는 몸부림 같은.

하필 고양이는 왜 내 주변에 와서 누워 있는 걸까. 내가 쓰다듬어주길 바라기라도 하는 걸까. 나는 좀 멀찍이 떨어져 땅에 코를 박고 애써 모른 척했다. 그때 마침 산책을 나온 부부가 고양이를 발견하고는 말을 걸며 다가왔다. 여자는 고양이 털을 빗질하듯 쓰다듬으며 아이 다루듯 계속 대화를 했다. 고양이는 그때마다 야옹야옹하며 배를 뒤집고 흙바닥에 뒹굴었다. 좋아서 그러는 건지 어떤 건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여자는 산책을 포기할 만큼 고양이와 대화를 나누며 연신 웃었다. 남편에게 계속 “조금만, 조금만” 하면서 고양이 곁을 떠나지 못했다. 고양이는 거의 이장희 시인의 “봄은 고양이로소이다”의 흡족한 표정으로 뒹굴었다. 온몸에 흙을 묻히며 뒹구는 고양이와 그 땅에서 얼굴을 밀어 올리려는 쑥. 운동화에 흙을 묻히며 가볍게 걸어가는 사람들.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는 가장 중요한 바탕은 흙이었다. 흙빛과 어우러져 마냥 선해지는 눈빛들. 풍경에 녹아드는 마음이 이런 걸까. 그 흙을 뒤집으면 굼벵이도 나오고 지렁이도 나오고 온갖 꿈틀거리는 생명이 그 안에서 살고 있다. 흙은 어떤 얼굴도 함부로 내치지 않았다.

숨을 쉰다는 말은 바람의 호흡법이다. 모든 생명을 비롯해 사물까지도 안과 밖을 드나든다는 말이다. 흙으로 만든 도자기나 그릇, 옹기는 숨을 쉬기에 오래 보관해도 싱싱하다. 그러니까 흙은 숨 쉰다는 말이다. 흙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에 관한 지질학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숨 쉬는 일은 살아 있다는 표시고 이 땅에 존재한다는 말이다. 내딛는 걸음마다 한 사람의, 한 생명의 존재 이유가 묻어 있다. 물론 같은 환경의 흙에서 자랐다고 해서 또 같은 형태의 결과물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거기엔 알 수 없는 다양한 기운들이 모여 서로의 운명을 바꿔놓기도 한다.

한때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는 말이 유행했다. 지금은 또 다양한 수저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환경과 상황에 맞춰서 만들어낸 신조어들이다. 흙수저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열심히 청소하는데 보지도 않고 청소하라고 윽박지르는 말 같아서 빗자루를 내던지고 문을 쾅 닫아버렸다. 이미 충분히 알고 있는데, 그래서 몸부림치고 있는데 거기다 대놓고 너는 절대 흙수저를 벗어날 수 없다고 못박는 것 같아서. 인간이 탄생한 이래 신분이라는 계층 구조는 사라진 적이 없다. 법적으로 신분 철폐를 했다고 해서 없어진 게 아니다. 암묵적으로 은밀하게 공공연히 수면 아래서 때를 노릴 뿐이다. 입 밖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 우리는 그런 사회에 살고 있다는 걸 안다. 권력을 가진 자는 그걸 드러내기 위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 하고,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은 그걸 감추기 위해 물 밑에서 쉴 새 없이 발버둥 친다. 흙 속에 숨겨진 진주를 찾아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이 땅을 적셔야 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생존과 약육강식으로 얼룩진 지구의 민낯을 처음 본 사람은 누구였을까. 그 첫 발자국을 짐작할 수 있는 곳이 제주에 있다. 안덕면 사계리 일대와 대정읍 바닷가에서 사람 발자국 화석과 동물 발자국 화석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약 1만 5천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해안가에 쌓인 응회암질 쇄실성 퇴적층이다. 세계적으로도 사람 발자국과 동물 발자국이 함께 나타난 경우는 거의 없다고 알려져 있다. 보행 흔적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어 그 가치가 매우 높다. 그러니까 처음 인간이 내딛게 된 땅은 보드라운 흙이 아니었다. 물론 우리가 만지는 부드러운 흙이 되기까지 여러 단계를 거치고 물, 바람, 공기 등등 다양한 물질들이 한데 섞여 흙이라는 물질이 탄생했다는 과학적인 사실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다. 흙이 되지 못하고 석회질의 지층으로 남는다거나 암반 형태로 굳어지는 상태. 푹 패인 발자국이 화석처럼 굳어진 데에는 뭔가 신비로움이 발동한다. 질퍽한 회반죽에 발을 담갔을 때의 느낌이 피부로 스며들어 왠지 모를 난처함이 뒤따른다. 이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그들의 삶이 선사시대의 한 장면처럼 떠오른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호모사피엔스로 진화하기 위해 벌였던 생존의 현장. 그렇게 진화는 인간과 환경의 만남으로 시작되었다. 지금 우리는 먼 훗날 어떤 흔적으로 존재할까. 보이지 않는 망과 망으로 연결된 기계와 밀접한 세상에 사는 우리는. 녹이 슨 채 버려지고 바닥에 뒹구는 어떤 얼굴들이 겹쳐지는 건 그저 기우에 불과한 걸까. 흙이 품지 못하는 떠돌이 화석들이 몹시 애잔하게 뇌리를 스친다.

우연히 건물을 짓기 위해 굴삭기로 흙을 파낸 덕분에 오래전 유물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매장문화 덕분에 우리는 흘러온 시간을 유추하고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확인한다. 왜 하필 흙 속이었을까. 영원성에 가장 가까운 물질이라서 그랬을까. 성장한다는 말은 뭘까? 여전히 나인데 생장을 멈추지 않는 영혼은 어디에 머무는 걸까. 겨울이면 나무들은 죽은 얼굴처럼 보인다. 봄여름에 알았던 이름을 겨울이면 잊어버린다. 새로운 계절을 맞기 위해 자신을 버리고 서 있는 일. 삶은 때때로 버려야 한다는 걸 알지만 그보다 손에 움켜쥔 것들이 빠져나갈까 오히려 전전긍긍하며 살게 된다. 땅은 또 다른 생명이 버리는 것들을 흡수하고 영양분으로 받아들인다. 물론 생명의 몸에서 나온 것들이어야 한다. 문명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은 땅을 시들게 하고 병들게 한다. 생명은 생명을 잉태할 때만 그 길을 열어준다.

신화로 만들어진 시공간을 섬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제주에는 신이 많다. 특히 제주를 창조했다는 설문대할망은 그 거대한 몸집만큼이나 영향력이 세다. 섬 중앙에 우뚝 솟아 있는 한라산은 설문대할망의 기운을 담고 있는 듯 신령스럽다. 자신만의 이상향을 건설하고 싶었던 여신. 섬에 있는 지명에는 하나같이 설문대할망의 숨결이 흐른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야기들은 초월적인 삶의 자세를 잉태하기도 한다. 우리가 사는 이 땅의 피와 살이 누군가의 간절함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사는 이유 역시 다르지 않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는 내가 이 땅에 태어난 순간 내 피와 살에 섞여 흐르는 인간의 본질이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존재를 바라보다 결국 존재를 인정하는 순간 눈을 감는다. 지구는 알 수 없는 영혼의 기운으로 가득하다. 우리가 인연이라 부르고 운명이라 부르고 기적이라고 부르는 이름들. 어떻게 우리에게 다가와 무엇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태어나고 자라고 성장하는 그 모든 순간에 생명을 지탱하는 힘은 흙, 곧 땅이라는 이름이다.

봄이 오면 흙을 갈아엎는다. 뒤집는다. 오래 가려워 딱지가 앉은 곳을 삽으로 콕콕 누른다. 흙이 눈을 뜬다. 땅속에 있던 벌레들도 웅크렸던 몸을 길게 늘이며 볕을 쬔다. 꼬물꼬물 흙에 몸을 비벼댄다. 들숨과 날숨으로 공기를 빨아들이며 흙이 다시 일할 시간. 아지랑이로 피어오르는 흙의 얼굴이 드디어 기지개를 켠다. 또 다른 얼굴을 빚어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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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효선  l 

2004년 《리토피아》 등단. 시집 『서른다섯 개의 삐걱거림』(문화체육관광부우수도서), 『오늘의 연애 내일의 날씨』 『어느 악기의 고백』(2020년 아르코문학나눔도서), 합동시집 『시골시인-J』가 있음. 〈시와경계문학상〉 〈서귀포문학작품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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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