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황유원 | ||
|---|---|---|---|

[이달의 시인] 황유원
신작시: 별들의 속삭임 / auto reverse / 사슴 머리 여인숙에서
자선시: 밤섬의 저음 / 무한대의 밤
[시인론] 김주원 "무심한 아름다움이 드러날 때"
신작시
별들의 속삭임
시베리아의 야쿠트인들은
입김이 뿜어져 나오자마자 공중에서 얼어붙는 소리를
별들의 속삭임이라고 부른다
별들의 속삭임을 들어본 자들은 아마
야쿠트인들이 처음이었을 거다
그들 말고는 그 누구도 그 어떤 소리에
별들의 속삭임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적 없었을 테니까
너무 춥지 않았더라면
너무 추워서 하늘을 날던 새들이 나는 도중 얼어
땅에 쿵,
얼음덩어리로 떨어질 정도가 아니었더라면
별들은 속삭이지도 않았을 거다
별들의 속삭임은 가혹해서 아름답고
아름다워서 가혹한 lo-fi 사운드
그것은 가청 주파수 대역의 소리를 원음에 가깝게 재생하는 데는 별
관심이 없는 아름다움이고
별들의 속삭임을 듣는 자는 시베리아 아닌 그 어디서라도
하늘의 입김이 얼어붙는 소리를 듣는다
추운 날 밖에서 누군가와 나눠 낀 이어폰에서도 별들이 얼어
사탕처럼 깨지며 흩날리는
가루 소리를 듣고
머리가 당장 깨져버릴 것처럼 맑을 때
머리가 벌써 깨져버린 것처럼 맑을 때
그런 맑고 추운 밤이면 사방 어디서라도
별들이 속삭이는 소리 들려온다
무심한 아름다움이다
auto reverse
갑자기 하늘이 환해지면
켜놨던 불을 끄고
충분한 추위가 없으면
일부러라도 눈을 내려
설산에 오른다
여러 고난을 겪을수록
여러 사람의 고난을 이해하게 되고
나는 여러 사람이 되고
갑자기 하늘 어두워지면
지그시 눈을 감아 그 어둠
두 배로 어둡게 만든다
어느덧 두세 배로 불어난 어둠 속에서
하지만 두 배든 세 배든
실은 그냥 같은 어둠일 뿐인 어둠 속에서
하산을 시작한다
함께 내려가는 여러 사람들
다 돌아간 카세트테이프의 나머지 한쪽이
마저 돌아가기 시작한다
사슴 머리 여인숙에서*
오늘 아침
가슴에 한쪽 손을 올려놓는 것만으로도 가슴속에 사슴 뛰는 소리 들려온다면
그건 그냥 살아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삶을 향해 마구 돌진하고 싶다는 뜻이고
삶의 푸른 풀을 마구 뜯어대고 싶다는 뜻인데
그렇게 사슴 다 뛰쳐나가버리고 나면
마침내 홀로 남겨진
텅 빈 가슴속
고요
그 고요의 한복판에서
오늘은 문득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 키스 재럿, 게리 피콕, 폴 모션의 앨범 〈At the Deer Head Inn〉.
자선시
밤섬의 저음
ㅡ 성기완 형께
밤섬에 다녀왔습니다
오로지 밤섬의 저음을 듣기 위해
과연, 형 말대로 밤섬은 저음 그 자체더군요
밤은 시종일관 차분히 가라앉아
도무지 고음을 낼 생각은 없어 보였고
섬도 수면 위로 솟은 부분이긴 하나
도저히 고음이라고 하긴 어려웠으니까요
하긴
하늘의 입장에서 보면 에베레스트라고 그게 무슨 고음이겠냐마는
밤섬에 다녀왔습니다
밤섬의 저음*은 제가 <ㄹ: sonicwallpaper4poetrybook>에 다녀올 때마다 가장 깊어지는 저음
소리로 먼저 만난 밤섬은
ㅂ과 ㅅ의 양어깨를ㅏ와 ㅓ가 좌우에서 붙잡아주고
(없는 친구들이 혼자 술 취한 저를 좌우에서 붙잡아주고)
ㅁ 둘이서 제가 걸어가는 아래를 단단히 지탱해주는 모양이었습니다
밤섬의 기반암은 단단하고도 부드러운 마음씨 ㅁ
총면적 24만 1490㎡에 해발고도 3.0~5.5m에 이르는 그 황홀한 저음이란!
과연 밤섬의 저음이란 난생 처음 들어보는 아주
전면적인 저음이어서
저는 밤새 거기 두 발 담근 채
같은 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이나 되뇌며
고음의 반대편에 위치한 물은 죽음의 명상을 위한 탁월한 질료적 가르침이라는
바슐라르의 말이나 되뇌며
흐르는 물 쳐다보다 왔습니다
흐르는 물의 가장 낮은 저음까지 내려갔다 왔습니다
밤섬에 다녀온 후로도 저는 한동안 계속
더 낮아지고 있습니다
남들 눈에 띄지 않을 만큼
누구도 발 디디지 못할 만큼
다음에 저를 만나면
못 알아보실지도 몰라요
그럼 아마도 더 낮은 저 아래를 내려다보셔야겠죠
무한대의 밤이 우리를 낳았고
우리 또한 무한대의 밤을 낳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각자 밤 위에 뜬 섬 한 채로
그 섬의 그 어둡고 거대한 녹색 저음들로
밤새
웅웅거릴 것입니다
* 성기완의 시집 『ㄹ』 수록 시이자 앨범 <ㄹ: sonicwallpaper4poetrybook> 수록 곡.
무한대의 밤
몇 달간 밤잠을 설쳐가며 두꺼운 벽돌 책을 다 번역하고서 마침내 뜨거운 욕탕에 들어가 그동안 밀린 한숨을 한꺼번에 휴우— 내쉬었는데
깨고 나니 꿈이었다
간밤에 가장 친한 친구가 자살을 했다 나는 너에게 별 의미가 아니었나보다, 하고 좌절해 혼자 술을 마셨는데
깨고 나니 꿈이었다
나는 이제 살 만큼 살고서 죽을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중인데
깨고 나니 꿈이었다
깨고 나니 꿈이었다
우리집 강아지는 늘 잠이 덜 깨 있었고
잠이 깰 때쯤 다시 잠이 들어 밤과 낮을 찬물과 더운물처럼 뒤섞었는데
깨고 나니 꿈이었다
장자를 만나 물었다: 제가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북 치고 노래 부를 수 있을 실력이 되겠습니까? 장자가 무시하고 말했다: 걔네 잘 지내? 노자가 말했다: 잘 지내긴 다 죽었지 걔네가 나이가 몇인데
자고 나니 내 차례였다
원래 없던 게 없어졌는데 슬플 게 뭐가 있느냐는 맹인 보르헤스에게 알바비를 받고 책을 읽어주던 소년이 말했다 괜찮으면 다음번엔 네가 한번 해볼래? 나는 보르헤스에게 내가 쓴 이야기를 들려주며 한 시간 동안 그를 여섯 번 웃겼고 마지막에 한 번 울렸다
깨고 나니 꿈이었다
깨고 나니 꿈이었다
영원히 깨지 않는 꿈을 꾸었다
깨고 나니 꿈이었다
의식과 무의식의 비밀을 모두 파헤치는 꿈을 꾸었다
깨고 나니 꿈이었다
또다시 살인을 저지른 첼리니가 다음날 메두사의 목을 쳐든 페르세우스 동상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속옷에 사정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그는 “다음은 네 차례야”라고 말하며 내 항문에 불끈거리는 자지를 쑤셔넣었다
깨고 나니 꿈이었다
낚싯바늘을 삼켰다 나는 한 마리도 아닌 네 마리 제주 은갈치였고 바늘을 삼킨 순간 이제 다 끝장이라는 걸 알았다 이제 다 끝장이 난 나는 뭍에 올라 식탁 위에서 환히 파헤쳐지기 직전, 아버지에게 마지막으로 한번 더 대들었고, 아버지는 내게 불같이 화를 냈으며, 나는 죽을힘을 다해 마지막으로 한번 더 아버지의 목을 힘껏 졸랐다 주먹으로 머리 위 베개를 내리치는 동시에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그 꿈은 진짜가 아닌 것들과 가짜가 아닌 것들로 뒤섞여 있었고
동창회에 가서 자식 자랑을 실컷 하고 친구들에게 등신 소리를 들었다 태어나길 정말 잘했다고 태어나서 스무번째로 생각했다
깨고 나니 꿈이었다
이제 학부모가 된 너와 둘이 따로 만나 바닷가 횟집에서 소주를 마셨다
깨고 나니 꿈이었다
갑자기 술 취한 인간 하나가 내 옆에서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고 깜짝 놀란 나는 손에서 술잔을 떨어뜨렸지만
그거야 어찌됐든 비명을 지를 때만 우리 인생은 조금이나마 가치 있어지는 것 같다
으아악!
깨고 나니 꿈이었다
더이상 아무 일 안 해도 먹고살 수 있게 되었다
깨고 나니 꿈이었다
더이상 남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깨고 나니 꿈이었다
이제는 다들 나를 거들떠도 보지 않게 되었다
깨고 나니 꿈이었다
사실 우리가 앞으로 보내야 할 시간은 이미 다 흘러가버렸는데
우리의 인식 속도가 따라가질 못해 흘러간 시간을 아직도 이렇게 흘려보내고 있는 거란 얘길 들었다
어째 기쁠 때도 은근 늘 허무하더라니!
깨고 나니 꿈이었다
산속에 텐트를 치고 살았는데 자연인 프로그램 팀이 와서 먹을 것을 주고는 대신 촬영을 좀 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깨고 나니 꿈이었다
깨고 나니 차가운 텐트 속이고
나는 또 혼자고
시간은 밤이고
너무 추워서 콧물을 질질 흘리며 울었는데
콧물을 닦을 휴지가 없어 대충 손으로 닦고 바지에 비볐다
깨고 나니 꿈이었다
이곳은 천국입니까 지옥입니까? 천국도 한순간에 지옥이 되는 법이고 지옥은 멀리서 천국의 천국됨을 묵묵히 지켜주는 성인에 다름 아니니라
깨고 나니 지옥이었다
지옥 덕분에 천국도 있는 거란 사실을 잠시 위안으로 삼았다가
천국을 없애면 지옥도 사라질 거란 생각에 천국을 없앨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깨고 나니 천국이었다
천국에서 나는 너무 배불리 처먹어서 천국을 폭파해 지옥을 구제해야겠다는 의지조차 상실했다
깨고 나니 꿈이었다
꿈이었지만 기분 더러웠다
깨고 나니 꿈이었다
깨지 않는 꿈이었다
깨지 않는 꿈이 바닥에 떨어져 깨졌다 아니 이게 얼마짜린데…… 흑흑……
깨고 나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모든 게 다 제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나무 위에서 녹은 눈물이 얇게 쌓인 눈 위로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눈을 뜨고 듣다가 눈을 감고도 들었다 눈이 물을 맞고 사라지는 낮은 볼륨의 소리를
이것은 꿈이 아니고 내가 방금 실제로 겪은 일이다 이 글을 메모하느라 장갑을 벗은 한쪽 손이 얼어가고 내 머리 위로는 계속해서 녹은 눈물이 떨어져내린다
— 이봐요, 가속도가 붙었을 때는 멈추려 해도 도무지 멈춰지질 않아요
— 그렇다면 뛰어내리는 수밖에
깨고 나니 꿈이었고
아직도 꿈은 달리는 중이었고
깨고 나니 꿈이었고
어느새 다시 꿈속이었다
레퀴엠을 듣는 검은 풍뎅이가 등에 나를 태우고 달렸다
나를 태우고 집안 구석구석 가지 않은 곳이 없었다
먼지 쌓인 식탁 아래와 벽장과 책장 틈새……
검은 풍뎅이는 나의 상여로구나
어린 시절 밟아 죽이고 굶겨 죽인 모든 검은 풍뎅이들이
나의 지옥이었구나
이제 나는 그 검은 풍뎅이 위에 올라타
온갖 더러운 곳을 다 가봐야만 하는구나
가보지 못한 더러운 곳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게 될 때까지
커다란 공처럼 뭉쳐진 먼지와 먼지와 먼지의 산을 넘고 또 넘어……
깨고 나니 꿈이었다
하얀 불이 켜지면 점점 자라나기 시작하는
등갓에 수놓인 흰 꽃
깨고 나니 꿈이었다
어느 시에선가 그런 노래를 부른 적이 있다
물이 든 병에 천천히 꽃다발을 꽂아주듯
병든 꽃다발에 천천히 물을 부어주듯
서로 상처 주고
또 용서하고……
깨고 나니 꿈이었다
깨고 나니 꿈이었다
무엇에도 비견할 수 없는 온갖 형형색색의 꽃들이 그대로 인해 피어났어요 단 하룻밤 만에 이상한 봄이 왔어요 보도블록 사이에 피어나는 꽃이랑 열대지방에 피어나는 길고 커다란 꽃들이 모두 한꺼번에 난 사진 찍는 거 싫어하는데 그 꽃을 그 모든 꽃을 모조리 다 찍을 수 있는 모든 각도에서 찍어 간직했죠 오직 그대에게 보여주기 위해 사진 한 장 한 장을 모두 기억했어요 그대는 내게 말했죠 네가 이렇게 자유로웠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 그대는 아니라고 말하지만 이 모든 게 그대 때문이라고 말해요 이상한 봄이 왔어요 그대로 인해 모든 게 그대로인데 그대로이긴 한데 난 그대에게 이게 다 당신 때문에 핀 거라고 당신은 내게 이제 너는 너무 자유로워졌다고 이렇게 아름다운 꿈을 꾼 적이 없어 나는 눈물이 흘러 전 세계의 모든 계절에 피는 꽃들이 다 피어 있는 언덕, 거기서 난 눈을 떴는데
눈을 뜨고도 생생한 꿈이어서
도무지 꿈 같지가 않았다
무한대의 밤을 그어 한번 터진 환희는 과연 멈출 줄을 모르고
깨고 나니 꿈이었다
그리고 봄이 왔다
속에서 멈추지 않는 환희를 견디며 흔들리는 마이크처럼 휘청대는 한 그루 꽃나무
입속에 집어넣은 구름이 온몸의 상공을 떠돌다 전부 돌아올 때까지 단꿈을 꾸네
그런 노래가 들리는 듯한 봄꿈을 꾸었다
멀리서 우레가 운다
우르르르르 거인이 울려다
울음을 참는 것 같아
거인의 등허리 위에 낀 이끼들이 우르르 지반을 이탈하려다
다시 고요를 되찾은 것 같아
멀리서 우레가 우니 좀
간지럽고
괜히
슬프군
애인이 혼자서 울다가
내 생각에
울음을 그치고 불을 끄는 것만 같군
이것은 꿈인지 현실인지도 모르겠고
올해 첫봄의 천둥소리가
이내 심금을 울리노라
이것은 영화에서 들은 대사인지 내가 쓴 대사인지도 모르겠고
사실 나는 요즘 현실감각이 극도로 희박해졌는데
깨고 나니 꿈이었다
어릴 때 내가 부화시킨 개구리 알이 몇 개였던가
다리 난 올챙이들이 화초 끝까지 기어올랐고
그때는 학교도 들어가기 전이었는데
깨고 나니 채 뒷다리도 나기 전이었다
나쁜 생각이 떠오르면 나도 몰래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댔다
마치 생각이라는 게 머리에 붙어 있는 흙먼지라도 된다는 양
깨고 나니 머리가 흙속에 처박혀 있었다
깰 필요도 없는 꿈이었다
그 꿈은 현실 그대로였고
샤토브리앙의 비문
파도와 바람 소리만을 듣고 싶어한 사람을 위한 해변의 묘지
얼마나 좋을까
파도와 바람 소리만 듣고 살 수 있다면
그러나 파도와 바람 소리만 듣고 살 순 없는 노릇이고
파도와 바람도 실은 여러 의미로 해석되는 것이고
세상에 샤토브리앙이 원한 파도와 바람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러니 파도와 바람만을 원할 수도 없는 노릇인데
하여튼 나는 해변의 묘지에 홀로 선 채
그 비문을 읽으며 감격에 겨워 있었다
깨고 나니 꿈이었다
이번만은 깨지 않았으면 했는데
깨고 나니 꿈이었다
뿌리(Puri)의 골든비치에서 봤던 파도치는 화장터
스와르가드와르, ‘천국의 문’을 생각하면 언제나 시체 타는 냄새와 함께 거대한 파도 소리가 밀려온다
거기서 불타는 시체들이 모두 나의 시체들이었다고 해도 날 놀래킬 순 없어
갑자기 내 눈앞에서 툭 떨어지던 정강이뼈가
내 것이었다 해도
깨고 나니 꿈이었다
이봐요 네르발 씨, 오늘도 랍스터와 함께 해변으로 산책을 나오셨군요? 아뇨 저는 네르발 씨와 함께 산책 중인 랍스터인데요 이봐요 랍스터 씨, 지금이 몇 시죠? 저는 시계가 없습니다 시계는 저급해요 아니 글쎄 궁금하지도 않은 시간을 자꾸 보여주지 뭡니까 여름이 지나 가을이 되면 결국 몸은 텅 비게 될 텐데 텅 빈 터널 같은 마음속으로 찬바람만 자꾸 불어올 텐데……
깨고 나니 무너진 터널 밖이었다
해변에서 십 미터쯤 붕 떠서 아래를 바라보았다
십 미터쯤 붕 떠서 바라보자 현실은 꿈이 되었고
그날
만삼천 피트 상공에서 내려다본 바다는
조니 미첼의 앨범 <Blue>의 커버 색깔이었다
깨고 나니 꿈이었다
구름은 올려다보면 좋지만
내려다보면 기절하죠
바다 위 구름의 바다
나는 구름 속을 헤맨다 구름 속을 헤매지 않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
지금 드는 생각의 이착륙을 위한 긴 활주로가 필요해
여전히 같은 꿈속이었다
나는 어느덧 빛으로 가득한 그리스식 회랑에 당도해 있었다
새하얗고 튼튼한 기둥
일렬로 늘어선 기둥은
믿음직스러우면서도 어딘지 조금
기만적이고
어차피 깨고 나면 다 꿈이다
깨지 않는 꿈을 꿀 순 없을까
쯧쯧쯧, 한심한 자여—
죽은 후의 일은 궁리치 말고
태어나기 전에 그대가 어디 있었는지나 궁리해보거라
하고 피타고라스가 말했다
꿈 깨, 라는 말
돌이켜보면 그 모든 게 긴긴 꿈에서 깨어나려는 노력이었고
사는 일이 앞뒤가 막막하다고는 하지만
사실 우리네 생은 앞뒤가 모두 뚫려 있구나
온몸에 힘을 주면 환생이고
온몸에 힘을 빼면 해탈이라는 생각에
잠시 힘을 빼고 한가로이 구름 위에 누워 있었는데
바야흐로 머릿속에 무한이 해방되었는데
깨고 나니 꿈이었고
어느새 다시 꿈속이었다
나는 끝없이 펼쳐진 긴 회랑을 끝도 없이 걷고 있었다
황유원 l
2013년 《문학동네》 등단. 시집 『세상의 모든 최대화』 『이 왕관이 나는 마음에 드네』 『초자연적 3D 프린팅』이 있음.
시인론 / 김주원
무심한 아름다움이 드러날 때
— 황유원의 최근 시들을 읽고
시인은 번역가이다. 사물과 자연, 현상들의 비밀과 아름다움에 그는 자신만의 언어를 입혀 세상에 돌려준다. 그것은 숨겨져 있다기보다는 도처에 존재하지만 우리가 무관심하게 지나쳐서 발견하지 못한 것들인 경우가 많다. 시인과 번역가의 공통점은 대상에 대한 축자적 해석에 그치지 않고 대상이 불러일으키는 감응에 열려 있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이들은 불완전한 언어의 한계를 넘어 발견의 기쁨과 사유를 촉진한다. 시인에게 발견이란 기존의 인식을 걷어치우는 방식이 될 테지만 황유원의 시는 이미 그 자리에 있었으나 있는 줄 몰랐던 아름다움을 향해 있다.
시베리아의 야쿠트인들은
입김이 뿜어져 나오자마자 공중에서 얼어붙는 소리를
별들의 속삭임이라고 부른다
별들의 속삭임을 들어본 자들은 아마
야쿠트인들이 처음이었을 거다
그들 말고는 그 누구도 그 어떤 소리에
별들의 속삭임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적 없었을 테니까
너무 춥지 않았더라면
너무 추워서 하늘을 날던 새들이 나는 도중 얼어
땅에 쿵,
얼음덩어리로 떨어질 정도가 아니었더라면
별들은 속삭이지도 않았을 거다
별들의 속삭임은 가혹해서 아름답고
아름다워서 가혹한 lo-fi 사운드
그것은 가청 주파수 대역의 소리를 원음에 가깝게 재생하는 데는 별
관심이 없는 아름다움이고
별들의 속삭임을 듣는 자는 시베리아 아닌 그 어디서라도
하늘의 입김이 얼어붙는 소리를 듣는다
추운 날 밖에서 누군가와 나눠 낀 이어폰에서도 별들이 얼어
사탕처럼 깨지며 흩날리는
가루 소리를 듣고
머리가 당장 깨져버릴 것처럼 맑을 때
머리가 벌써 깨져버린 것처럼 맑을 때
그런 맑고 추운 밤이면 사방 어디서라도
별들이 속삭이는 소리 들려온다
무심한 아름다움이다
- 「별들의 속삭임」 전문
‘별들의 속삭임’은 입김이 뿜어져 나오자마자 공중에서 얼어붙는 소리로 극지(極地)의 혹한 속에서 들려온다. 너무 추워서 나는 새도 쿵 떨어지는 밤, 가청 주파수 대역을 넘어서 들리는 소리가 어떤 것인지 짐작하는 것은 쉽지 않다. 가혹하고 아름다운 그 소리에 이름을 붙인 시베리아의 야쿠트인들은 추운 밤하늘의 공기와 별들과 사람의 숨결이 하나로 이어질 수 있다고 믿었던 걸까. 그 소리는 인간의 가청권에서 이탈하므로 불완전하고 거친 로파이(lo-fi) 사운드처럼 “가청 주파수 대역의 소리를 원음에 가깝게 재생하는 데는 별 / 관심이 없는 아름다움”이다. ‘별들의 속삭임’을 듣는 자는 어디서라도 ‘하늘의 입김’이 얼어붙는 소리를 듣는다. 그는 맑고 추운 밤, ‘무심한 아름다움’을 듣는다.
‘별들의 속삭임’은 야쿠트인들의 전설 속에 등장하는 신비한 현상일지 모른다. 그것은 보통의 지각 능력으로 감지하기 어렵지만 이 시에서는 사방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로, 가혹한 아름다움에서 무심한 아름다움으로 변모한다. 다시 말하면 ‘별들의 속삭임’은 시베리아 한복판이 아니라 어디에나 있다. 세상의 신비를 느끼기 위해 신비한 능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 소리는 “머리가 당장 깨져버릴 것처럼 맑을 때 / 머리가 벌써 깨져버린 것처럼 맑을 때” 들을 수 있다. 이 시의 묘미는 이 부분에 있다. 별들이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 데 머리의 뛰어난 지각 능력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머리’가 깨지면 맑아진다. ‘그런 맑고 추운 밤’이면 어디에서도 그 소리가 들려온다. 이 시에서 ‘아름다움’은 더 이상 가치 판단의 결과가 아니다. 인식하고 판단하는 기능이 사라져야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에 대해 이 시는 말하고 있다. 황유원의 시는 이미 그 자리에 있는데 우리가 알지 못했던 아름다움을 슬쩍 보여준다. 방법은 아주 쉽다. 늘 하던 방식을 버리면 된다. 그리하여 감정이나 생각이 없는 무심(無心)한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에 관한 우리의 익숙한 관념을 중지시킨다.
오늘 아침
가슴에 한쪽 손을 올려놓는 것만으로도 가슴속에 사슴 뛰는 소리 들려온다면
그건 그냥 살아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삶을 향해 마구 돌진하고 싶다는 뜻이고
삶의 푸른 풀을 마구 뜯어대고 싶다는 뜻인데
그렇게 사슴 다 뛰쳐나가버리고 나면
마침내 홀로 남겨진
텅 빈 가슴속
고요
그 고요의 한복판에서
오늘은 문득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 「사슴 머리 여인숙에서」 전문
‘사슴 머리 여인숙에서(At the Deer Head Inn)’는 재즈 앨범 제목이다. 이 시에서도 ‘무심한 아름다움’과 같은 순간이 있다. 음악은 알 수 없는 매혹의 경험이니까. 가슴 속에 사는 사슴 한 마리는 삶의 모습을 닮았다. 사슴은 그냥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삶을 향해 뛰쳐나간다. 마구 돌진하는 사슴의 강렬한 움직임이 지나가고 나면 텅 빈 가슴 속 ‘고요’와 만난다. 이 ‘고요’는 ‘마침내’ 홀로 남겨진 텅 빈 상태이며 황유원 시에서는 ‘무심한 아름다움’에 견줄 수 있는 말이다. 음악은 삶을 고양시키기도 하지만 우리를 ‘고요’ 속에 머물게 한다. ‘고요’ 속에서는 아무 것도 안 하고 싶다. 마지막 구절을 권태나 거부의 의미로 읽으면 곤란하다. 그것은 텅 비어 있어서 무엇을 하려는 목적에서 자유로운 상태이기 때문이다. 삶을 향해 뛰쳐나간 사슴이 아니라 그냥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한 가슴으로 머무르는 것. ‘고요’는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삶을 향해 무엇을 하려는 목적이 질주하는 동안 경험되지 않았을 뿐.
깨고 나니 꿈이었다
더이상 남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깨고 나니 꿈이었다
이제는 다들 나를 거들떠도 보지 않게 되었다
깨고 나니 꿈이었다
(중략)
돌이켜보면 그 모든 게 긴긴 꿈에서 깨어나려는 노력이었고
사는 일이 앞뒤가 막막하다고는 하지만
사실 우리네 생은 앞뒤가 모두 뚫려 있구나
온몸에 힘을 주면 환생이고
온몸에 힘을 빼면 해탈이라는 생각에
잠시 힘을 빼고 한가로이 구름 위에 누워 있었는데
바야흐로 머릿속에 무한이 해방되었는데
깨고 나니 꿈이었고
어느새 다시 꿈속이었다
나는 끝없이 펼쳐진 긴 회랑을 끝도 없이 걷고 있었다
- 「무한대의 밤」 부분
‘무한대의 밤’이란 깨지 않는 꿈과 같다. 막막하다 싶으면 뚫려 있고 환생과 해탈은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어 무엇이 진짜인지 알 수 없다. “깨고 나니 꿈이었다”는 이 시에서 여러 번 반복된다. 인생이 꿈처럼 덧없고 허무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삶이 깰 수 없는 꿈이라는 것을 자각한 자의 목소리이다. 황유원의 최근작 『초자연적 3D 프린팅』(문학동네, 2022)에 실린 이 시는 한 편의 긴 이야기이다. 『금강경』의 유명한 구절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이 시집에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초자연적 3D 프린팅’은 ‘여몽환포영’의 현대적 번역어일 것이다. ‘여몽환포영’은 세상의 모든 존재가 꿈, 허깨비, 물거품, 그림자와 같다는 뜻으로 존재의 실체 없음에 관한 비유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시의 화자는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하고 믿었던 많은 것들이 ‘깨지 않는 꿈’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꿈은 존재의 근본적인 실체가 없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비춘다. 「무한대의 밤」이 종교적 관념을 직역(直譯)한 것은 아니겠지만 꿈의 불교적 함의를 의식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사실이다. 황유원 시인이 좋은 번역을 하는 시인이라는 점이 잘 드러난 작품은 다음의 시가 아닌가 싶다.
과연 밤섬의 저음이란 난생 처음 들어보는 아주
전면적인 저음이어서
저는 밤새 거기 두 발 담근 채
같은 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이나 되뇌며
고음의 반대편에 위치한 물은 죽음의 명상을 위한 탁월한 질료적 가르침이라는
바슐라르의 말이나 되뇌며
흐르는 물 쳐다보다 왔습니다
흐르는 물의 가장 낮은 저음까지 내려갔다 왔습니다
밤섬에 다녀온 후로도 저는 한동안 계속
더 낮아지고 있습니다
남들 눈에 띄지 않을 만큼
누구도 발 디디지 못할 만큼
다음에 저를 만나면
못 알아보실지도 몰라요
그럼 아마도 더 낮은 저 아래를 내려다보셔야겠죠
무한대의 밤이 우리를 낳았고
우리 또한 무한대의 밤을 낳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각자 밤 위에 뜬 섬 한 채로
그 섬의 그 어둡고 거대한 녹색 저음들로
밤새
웅웅거릴 것입니다
- 「밤섬의 저음 ㅡ 성기완 형께」 부분
황유원의 시는 음악적 요소를 중요하게 활용하는데 “밤섬에 다녀왔습니다 / 오로지 밤섬의 저음을 듣기 위해”로 시작하는 이 시도 마찬가지이다. 밤섬의 저음은 수면 아래 깊이 잠겨 있어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이유 때문에 화자는 난생 처음 들어보는 ‘전면적인 저음’에 감응한다. 흐르는 물이 철학자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것처럼 시인은 ‘저음’에 매혹되어 물의 가장 낮은 저음까지 내려간다. 밤섬을 다녀온 후에도 그는 계속 낮아져서 ‘더 낮은 저 아래’ 저음이 될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바슐라르가 저음에 있는 물을 “죽음의 명상을 위한 탁월한 질료적 가르침”이라고 한 것처럼 저음으로의 침잠은 시인에게 죽음의 명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죽음의 명상은 개체적 자아의 소멸에 관한 것이 아니라 ‘우리’와 ‘무한대의 밤’이 서로 태어나게 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흐르는 물’이 계속 순환하는 것처럼 말이다. ‘밤섬의 저음’은 ‘밤’의 ‘섬’이나 ‘흐르는 물’의 ‘저음’처럼 별개로 보이지만 서로 분리되지 않는 거대한 공동체(‘무한대의 밤’)를 가리킨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각자 밤 위에 뜬 섬 한 채로 / 그 섬의 그 어둡고 거대한 녹색 저음들”이다. 제목 「밤섬의 저음」은 매우 세심하게 조합된 단어들이다. 이 시는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인다라망(因陀羅網)에 관한 명상이다.
「auto reverse」에서 “여러 고난을 겪을수록 / 여러 사람의 고난을 이해하게 되고 / 나는 여러 사람이 되고”라는 구절도 사람들 사이의 연결에 관한 것이다. 시인은 고난이 타인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힌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고난을 겪은 사람은 자아의 협소한 범위를 넘어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 사람들은 그렇게 연결된다. 그것이 ‘나’가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될 수 있는 이유이다. 삶이란 이 과정의 오토 리버스 같은 것인지 모른다.
시인이 번역가인 이유는 그가 지닌 연결의 능력 때문일 것이다. 황유원의 시들은 이미 있는 사물과 현상들을 다시 보게 만든다. 분열하고 갈등하는 세계 속에서 ‘별들의 속삭임’과 ‘고요’, ‘밤섬의 저음’ 같은 말들은 우리와 가까워진다. 사방에서 들리는 별들의 속삭임, 목적에서 해방된 텅 빈 고요와 낮고 깊게 연결된 밤섬의 저음을 떠올려 보면 그것들이 세상의 배경 음악처럼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기에는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 ‘무심한 아름다움’처럼 기존의 관성을 지우는 방식이 필요할 뿐이다. 시인은 물의 가장 낮은 저음까지 내려가 존재의 연결점을 찾아내고 ‘고난’이 ‘이해’의 다른 말임을, ‘나’와 ‘여러 사람’이 동의어가 될 수 있다는 것까지 알아낸다. 황유원의 시 덕분에 우리는 비로소 더 커다란 연결의 아름다움을 믿을 수 있게 되었다.

김주원 l
2021년 《창작과비평》 평론 등단.
—
2023년 2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