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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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민규 

     

 

 

 

 오늘도 프로크루스테스의 얼굴로

   

     

 

 

 

  잠시 눈을 감고 서기로 한다

  칠포, 정자, 주전

  반짝이는 해변들의 길이는 어차피 상대적인 것

  벨트 푼 바지로 출렁대는

  비릿한 파도의 포말이

  벌써 반생도 남지 않게 된 내 삶의

  몇 걸음 앞에서

  수평선 쪽으로, 몰래 썰물로 뒷걸음질 치다가

  녹슨 등대들의 유언을 모으려

  귀를 세우다가

  그것은 한때

  중얼거리는 오후의 한때를 나는 보내고 있다

  그것은 자유

  더는 꿈이 사라진 자유 그것은

  더는 누구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지 않게 된 바다

  날카로운 이빨을 감추고 입을 꾹 다문 수평선의 바다

  산소 호흡기처럼

  소라고둥에 입을 대고 외쳐 보아도

  식칼 든 수평선 뒤로

  좀처럼 물러서지 않으려는 결기의 바다

  모래알처럼 창백한 얼굴로

  오늘도 나는

  밀물로 뒤바뀌는 시간을 기다린다, 오늘도

  해변에 서 있는 건

  느닷없이 밀려와 내 발목을 잘라내고

  상대적인 만큼

  나보다 큰 키의 여인을 사랑하기 위한 것

  내 무릎까지 싹둑 잘라내고

  억지로 키를 맞추어

  볼품없는 나를 사랑하기 위해 다가오는 것

  첫 신호의 바다

  그러고 보니 아직 반생이나 남았더군

  죽여달라고 지겹게

  중얼거리는 나를 향해

  쏴아쏴아 파도로 칼을 갈며 다가오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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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  l

2008년 《문학사상》 등단. 시집 『박카스 만세』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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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호 신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