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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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효선 

  

    

 

 

 

바람

ㅡ 춤추는 혼돈의 별

 

 

        

 

 

  해풍에 그을리며 말라가는 풍경이 가슴에 와 박히면 소금기도 단맛을 품는다. 여행자이거나 여행자의 시각으로 바라볼 때 어떤 사투의 결말은 아름답게 그려진다. 젖은 빨래 대신 물고기나 오징어로 해안의 풍경을 채워놓은 기다란 빨랫줄. 생물은 수분이 다 빠져나간 채 건어물이 되어 다음에 올 일을 기다린다. 슬픔이 바싹 마른 몸은 잘게 찢겨 입안에서 짭조름한 단맛을 낸다. 그렇게 생의 짠맛을 다 거둬들인 뒤에야 발길을 옮기는 바람. 젖은 것을 말리는 최적의 물질, 상쾌와 불쾌를 동시에 퍼뜨리기도 하고, 거의 죽음 직전까지 내모는 극악무도의 종족이기도 하다.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와 가장 밀접한 거리에 있다. 만약 바람이 없다면 지구는 벽과 벽으로 차단된 채 어디서 무엇이 무엇으로 다시 만날지 모른 채 살아갈 것이다.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생의 경우는 더 그렇다.

   자신의 종을 퍼트려야 살아남을 수 있는 나무와 풀들은 바람을 빌려 종족 번식에 성공한다. 자신의 힘으로 갈 수 없는 아주 먼 곳까지 날아가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일군다. 그들만의 개척 방식이다. 멕시코 산 페드로 마티르의 코끼리선인장 같은 것이 그것이다. 아주 조그만 몸으로 바람을 타고 낯선 곳으로 날아가 자신들의 이름을 새긴 섬을 만들었다. 바람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지만 바람의 이름을 새겨넣지는 않았다. 바람은 이름을 앞세우지 않는다. 다만 조력자로 존재할 뿐이다. 아주 작은 씨앗 하나가 새로운 세상을 일구는 힘. 생명은 한 세계를 파괴하고 또 한 세계를 건설하는 유한의 언덕이다. 언덕 아래에서 내려다보는 세상, 그것을 가능하게 한 건 바람이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불빛은 아름답지만 쓸쓸하다. 쓸쓸함 없이는 아름다움의 가치도 없는 것처럼. 불빛이 화려하든 초라하든 높든 낮든 눈 속에 담기면 지구라는 실뭉치를 물고 굴러간다. 지구라는 공간에 갇히면 인간은 한없이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하다는 걸 인식하기 때문이다. 환경과 진화를 거치면서 지구가 공존하고 있지만 그 안엔 훨씬 더 복닥거리는 영혼들이 혼돈에 휩싸이며 살아간다.

  바람이 태어난 곳은 아무래도 섬이다. 자신의 존재와 위엄을 드러내기에 바다는 최적의 공간이다. 특히 이월의 제주 바다는 온몸으로 바람이다. 살갗을 베일 정도로 날카로운 바람. 인간이 오랫동안 환경과 타협하면서 혹은 군림하면서 살아왔지만 바람은 어찌할 수 없는 존재다. 잡을 수도 가둘 수도 없는 물질. 아무도 막을 수 없는 무소불위의 떠돌이다. 온몸으로 척박함을 밀어붙이길 좋아하는 바람의 땅, 그곳이 섬이다. 섬에 사는 사람들은 바람을 받아들이기 위해 신화와 전설의 힘을 빌렸다.

그 바람의 신은 바로 제주의 ‘영등할망’이다. 영등할망은 해산물의 풍요를 가져오는 신으로 음력 2월 초하루 한림읍 귀덕리로 입도해 보름날인 2월 15일에 우도를 통해 제주를 떠나 본국으로 돌아간다고 알려져 있다. 전설에 따르면, “옛날에 제주 어부의 배가 폭풍우로 인해 외눈박이 거인의 섬으로 가는 것을 영등할망이 구해 주었다. 이 일로 영등할망은 외눈박이 거인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온몸이 갈기갈기 찢긴 채 죽는다. 그때 머리는 소섬(우도)에, 사지는 한림읍 한수리에, 몸통은 성산까지 밀려오게 되었다. 그 죽음을 기리기 위해 영등할망을 신으로 모시고 굿을 해주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영등할망은 영등굿 기간에 제주 바다를 돌아다니며 해산물의 씨를 뿌려주고, 어부나 해녀들이 비는 소원을 들어주고 간다고 전해진다. 영등굿은 영등할망이 머무는 음력 2월 초하루부터 보름까지 치른다. 이때는 바다에서 해산물을 채취하거나 고기를 잡지 않는다. 얼마나 바람이 거센지 목숨을 잃기도 한다. 영등굿이 끝날 무렵에야 바람이 온순해지면서 비가 내린다. 그 비를 ‘영등할망의 눈물’이라고 부른다. 섬사람들의 염원을 비는 마음이랄까 그 눈물이라는 말에서 지켜주고자 하는 간절함과 찢긴 영혼의 고달픔이 느껴진다. 전설은 죽음을 매개로 현생을 지켜내는 통과의례의 모습을 보인다. 지구의 시간을 건너가기 위한 작은 언덕들이 매번 저 위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처럼.

  언덕 위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바람. 매번 어딘가로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잊었던 기억을 부려 놓는다. 3인칭 시점으로. 나는 그게 부러웠다. 3인칭으로 살고 싶었다. 1인칭으로 살지 못할 바에는. 글을 쓸 때조차 나는 1인칭이 아닌 남의 인생을 빌려오는 2인칭이거나 엿보거나 슬쩍 훔쳐오는 3인칭이었다. 1인칭의 나는 언제나 진창에 빠진 생쥐 같았다. 1인칭과 멀어졌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나는 1인칭에서 벗어났다. 나와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똑바로 쳐다볼 수 없어서, 그럼, 나는 나를 부정할 것 같았다. 여기저기서 자신을 사랑하라고 떠들지만 그 말은 그저 오래된 먼지처럼 가슴을 움직이지 못하는 말이었다. 어딘가에 매몰되었다 어느 순간 깨지거나 터져버릴 존재처럼. 그러다가 갑자기 나를 향해 훅 불어오는 혼돈이라는 바람에 종종 사로잡혔다.

  식물의 성장에 필요한 것은 물, 바람, 햇빛이다. 물과 햇빛만으로는 식물이 자랄 수 없다. 바람이 없다면 식물인간 아니 그저 목숨만 연명하는 삶이다. 바람이 없으면 머지않아 식물은 썩는다. 바람은 생명에게 어떤 존재일까. 그것은 혼돈이 아닐까. 흔들리고 꺾이고 쓰러지기를 반복하면서 하나의 존재로 당당하게 서 있는 것. 니체가 말했듯이 ‘춤추는 별을 탄생시키기 위해 사람은 자신들 속에 혼돈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꽃을 피워올리기 위해서도 혼돈은 중요하다. 고통 없이 상처 없이 피는 삶은 없는 것처럼. 바람은 혼돈의 중심에 있었다. 우리는 그 바람을 데려와 상징으로 도구화했다.

  하지만 혼돈을 회피하기 위해 자신의 방문을 걸어 잠근 이들도 많다. 히키코모리라고도 하고 은둔형 외톨이라고도 부른다. 관계에 대한 피로감과 두려움으로 숨어버린 사람들이다. 공동체 의식을 강조하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치중하던 문화들이 점점 낡은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분명 다른 세기가 밝았다. 『어린 왕자』에서 관계란 ‘서로에게 길들여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는 것, 그래서 황금색 밀밭이 바람에 휘어질 때 어린 왕자의 머리칼을 떠올리게 되는 일이라고. 그러나 지금은 서로에게 ‘길들여지기’보다 ‘길들여지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튼 듯하다. 관계에서 오는 피로를 아예 차단하겠다는 말이다. 거기에 쏟을 에너지와 열정을 차라리 나 자신에게 쏟는 것이 여러모로 이익이라고 생각한다. 남보다 나 자신에게 투자하는 삶을 살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흐름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관계에 문을 닫아걸고 마음을 닫아거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외로운 죽음이 늘 수밖에 없다. 지구의 피가 점점 차가워지고 있다. 바람이 비구름 속에 숨어 우리를 엿본다. 이따금 혼돈을 몰고 오면서. 사람은 혼자서는 지구를 지탱할 힘을 만들지 못한다는 걸 제발 좀 알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관계는 혼돈의 시작이기도 하지만 살아가는 데 절대적이다. 수없이 부는 바람에 꿋꿋하게 한 생을 버텨내기 위한 위로다. 인간의 생태적 운명이다. 그러기에 생은 혼돈을 겪은 사람만이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무대다.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는 가족이라는 혼돈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그 이후에도 수많은 관계의 혼돈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그 바람을 잘 타고 넘어야 한다. 줄넘기하듯. 때론 미풍이고 또 때론 회오리이고 거센 태풍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가장 힘든 시기는 그런 바람조차 없을 때다. 무기력과 권태가 수시로 우리를 찾아올 때다. 그러니 바람은 우리가 믿는 만큼 불어오고 흘러가는 만큼 강도가 달라진다.

  바람은 우리가 바라는 대로 흘러가기도 한다. 이제 와 깨달은 건 나답게 살지 말자. 나답게 산다는 건 지금까지의 나를 반복하는 일이다. 하고 싶은 말을 속에 꾹꾹 담아두고 거절을 못해서 억지로 할 때도 많고 쉽게 상처받던 나였다. 조금 더 간결하게 살아야겠다. 관계의 부피를 줄여 내 열정을 쏟아부을 자리가 어디인지 찾아야겠다. 수많은 바람 중에 어떤 바람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도 달라질 것이다. 물론 이렇게 바람을 데려와 쓰는 일조차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신선하지 않다. 한여름 나무 그늘에 앉아 내게로 불어오던 바람처럼 쓰지 못한다. 그 한줄기 바람이 막혔던 가슴을 뻥 뚫고 지나가던 순간처럼 쓰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혼돈의 바람에 몸을 맡긴다. 세상에 없는 말, 세상에 단 하나뿐인 말, 그 바람이 춤추는 별이 되어 내 안에서 반짝거리길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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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선  l

2004년 《리토피아》 등단. 시집 『서른다섯 개의 삐걱거림』(문화체육관광부우수도서), 『오늘의 연애 내일의 날씨』 『어느 악기의 고백』(2020년 아르코문학나눔도서), 합동시집 『시골시인-J』가 있음. 〈시와경계문학상〉 〈서귀포문학작품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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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