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정수자 | ||
|---|---|---|---|


신작시
잎맞춤 입맞춤
떨면서 첫 입술을 감히 갖다 대어본다
막 내민 촉촉한 첫 혀의 연두들
잘 잤니,
순한 반려들아 두근대는 햇숨들아
벵갈고무 새 잎에 입술을 깊이 주다
그 곁의 수더분한 이름 잊은 순에게도
있었니,
입술을 디밀며 연두를 염탐한다
오늘부터 내 아침은 잎을 여는 입맞춤
창턱의 바람에도 입술 봉긋 내밀고
잘 사니,
지나간 것들아 내일 당도할 꽃숨들아
라오라오
라오라오 라오스로 오라오라 설렁 오라
잊었던 노래 찾듯 제멋대로 라임 붙여
때 없이 격하게 마실 때 눈치는 좀 보였네
비어라오* 과히 즐긴 거품일랑 모자란 짓
비워라 오 오 오, 빈국에서 과식이라니
한 사흘 물 내리는 통에 덜고 덜며 절로 굽어
라오에 깊이 끼친 식민의 그늘 다시 보다
‘원 달러’ 없던 길도 공산(共産)의 항심인지
씁쓸히 똥물까지 털 때 메콩이 메롱 등을 치네
*Beer Lao : 라오스의 대표 맥주
어스름의 음계
그가 짚는 것마다
슬픔이 묻어난다고
바람의 귀띔에 귓불이 파래진 날
내력은 차마 못 물었는데
능선이 슴벅 겹쳤네
묵묵한 목덜미에는
묵은 그늘이 서너 말쯤
홀로 걸어온 독립유공 후손으로
저물면 울음 거둬 먹이듯
기타 제(祭)를 올린다네
자선시
금강송
군말이나 수사 따위 버린 지 오래인 듯
뼛속까지 곧게 섰는 서슬 푸른 직립들
하늘의 깊이를 잴 뿐 곁을 두지 않는다
꽃다발 같은 것은 너럭바위나 받는 것
눈꽃 그 가벼움의 무거움을 안 뒤부터
설봉의 흰 이마들과 오직 깊게 마주설 뿐
조락 이후 충천하는 개골(皆骨)의 결기 같은
팔을 다 잘라낸 후 건져 올린 골법(骨法) 같은
붉은 저! 금강 직필들! 허공이 움찔 솟는다
늦저녁
저기
혼자 밥 먹는 이
등에서 문득
주르르륵
모래 흘러내려
어둠 먹먹해져
지나던
소슬한 바람
귀 젖는다
鳴沙……
소심한 고백
꽃 한 송이 피우는 데 가담한 적 없는데
꽃 진다, 찍는 것도 가소로운 간섭 같아
숙이며 지나치려 하니 발 놓을 데 가뭇없네
아픈 쪽에 가담해온 詩 자취도 희미할 때
뒤트는 지렁이들 피해 서던 아래쯤엔
말없이 기는 것들이 흙빛 윤을 돋우려니
가벼운 적선만 같아 ‘좋아요’ 망설이듯
슬픔도 함부로는 호명치 않으리라
테라도 우웅 울려야 꽃숨 얹는 가담이려니

정수자 | 1984년 세종숭모제전 전국시조백일장 장원 등단.
시집 『비의 후문』 『탐하다』 『허공 우물』 『저녁의 뒷모습』 『저물녘 길을 떠나다』가 있음.
〈중앙시조대상〉 〈현대불교문학상〉 〈이영도시조문학상〉 〈한국시조대상〉 등 수상.

모나리자 효과와 숭고미의 비밀
1.
시인은 자아와 세계 사이 미적 가치를 추구하면서 ‘있어야 할 것’과 ‘있는 것’ 속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미학을 획득하려고 한다. 미학적인 시는 시인의 미적 체질과 등가 관계에서 사유의 속도로 시적 자아를 통해 세계를 바라본다. 미에서 촉발된 시의식은 없는 것이라는 결핍과 있는 것이라는 충족을 감각적 언어로 형상화하는데, 우리는 이것을 숭고미와 우아미, 비장미와 골계미 등 미적 가치의 범주로 살필 수 있다. 숭고미는 결핍과 충족이 조화를 이루면서 결핍으로 있는 충족을 변경하며 발생하는 미학이며, 우아미는 결핍과 충족이 조화를 이루면서 충족으로 결핍을 부정하는 미학이다. 반면 비장미는 결핍과 충족의 부조화 속에서 갈등을 이루면서 결핍으로 충족을 변경하며 발생하는 미학이며, 골계미는 결핍과 충족의 부조화 속 갈등을 이루면서 부재로 결핍을 부정하는 미학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 시인들은 이 카테고리 안에서 미학과 비미학을 나타내며, 그것을 우리에게 시적 언어로 단순화시켜서 보여준다.
오늘날 폭넓게 쓰이는 시의 영역에서 시적 미학은 주관적인 것으로써 객관화하여 일별할 수 없으며, 어디까지나 미적 가치의 카테고리를 통해 시인의 기호와 독자의 선택에서 소통될 뿐이다. 우리 시조단의 경우 숭고미라는 자신만의 고유성을 담보로 미적 성격과 시적 미학으로서 시조라는 형식에 담아 온 시인이 있다. 정수자 시인은 1984년 등단한 이래 최근에 출간한『비의 후문』(2016)을 비롯하여『탐하다』(2013),『허공 우물』(2009),『저녁의 뒷모습』(2004),『저물녘 길을 떠나다』(2000) 등의 시집을 통해 시조 미학과 숭고미라는 시적 사유를 선보였다. 그녀의 시편을 점유하고 있는 미학적 담론이, 바로 있어야 하는 것과 있는 것 사이 결핍으로 충족을 메우는 숭고미라는 점이다. 그녀의 시조는 일상의 공기와 같이 포획되거나, 고정할 수 없는 숭고를 미적 언어 안으로 끌어들여 시조 형식으로 향유하게 만들면서 순간적으로 ‘숭고의 언어’ 앞에서 무릎을 꿇게 한다.
한국현대시조사의 관점으로 정수자 시인을 조명할 때 여성이라는 사회적 편견과 문학적 한계를 극복하고 자신의 시세계를 모던하면서도 밀도 있게 보여준 시조시인도 드물다. 작금의 시조단은 “‘현대시조 태동기’(1910)를 기점으로 ‘현대시조개척시대’(1920~40), ‘현대시조형식의 안정기’(1950) ‘현대시조의 독자성 확보기’(1960~1970) 등을 거치며 ‘현대시조의 개성화’(1980~2000) 시대에 이르렀다. 최근 시조단에서 활약하고 있는 시조시인으로는 박시교, 이우걸, 유재영, 민병도, 이정환, 박기섭, 오승철, 문무학, 정수자, 홍성란, 권갑하, 이지엽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들은 논거한, 한국시조문학사의 연장선에서 독자적인 시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시조시인들이다. 열거한 시조시인들은 1940년 이후 출생한, 한국시조단을 대표하는 중진시조시인으로서 현대성과 문학성을 아우르며 나름대로의 전통성을 계승하면서 세분화된 형식 실험을 통한 ‘자구적 창작방법’과 ‘보편적 시의식’으로서 현대시조를 다양한 시조미학의 변체로 구현, 발전시키고 있다.” 오늘날 ‘현대시조의 개성화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시조단은 시조 형식의 전승에서 다양한 변체로 전환되고 있는 추세이며, 이 가운데 활동하고 있는 정수자의 시적 경향은 현대적 감각과 언어적 질감을 통해 ‘숭고미의 육체’를 본질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2.
그녀가 보여주는 시적 미학은 언어로 언어를 넘어설 때 ‘미적 아우라’가 생기며, 우리는 그 속에서 그녀가 보여주는 숭고미를 마주할 수 있다. 이 때 언어는 사물과 세계를 배경으로 하지만 그것에의 경계로부터 이탈하여 그 윤곽이 남기는 형식의 여운과 의미의 음영 사이에서 숭고가 성립된다는 것이다. 그녀의 시조에서 “형태와 윤곽은 경계를 한정하며 그것은 미의 영역이지만 탈경계는 숭고의 영역이다. 칸트는 무한과 가장 밀접하고 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탈경계를 완전히 들어낼 수 없지만, 숭고미는 가장자리에서 발생하는 움직임이다.” 그녀의 시조는 가장자리에서 경계를 지워서 미적인 것을 찾아내고, 그것의 의미를 형식에 담아서 행간에 기록한다. 여기서 생겨나는 미학은 그녀가 보여주는 시편 대부분을 차지하는 바, 형식이라는 형태와 의미라는 윤곽의 언어로 짜여 있는 듯하다. 이를테면 시적 형식과 의식은 사물의 형태로서 본질의 윤곽을 횡단하며 시적 경계의 가장자리에서 소멸하면서 생겨나는 데 있다. 또한 한정된 경계로부터 경계의 바깥쪽 사물의 외연에 대한 이탈과 경계 지움의 탈경계성 안에서 작동한다. 이른바 경계의 가장자리 세계에서 사라지는 소멸성과 외부 세계의 경계 지움에 대한 탈경계성의 시적 흔적이, 곧 숭고미라는 것이다.
시조 미학에 천착하는 그녀의 창작 방식은 언어의 소멸과 사물의 경계 지움에서 시작되는 바, “군말이나 수사 따위 버린 지 오래인 듯/뼛속까지 곧게 섰는 서슬 푸른 직립들”(「금강송」) 로서 미적인 것을 출현시킨다. 이것은 결핍과 충족의 경계에서 소멸하는 언어로서 사물과 세계 간에 결핍으로 충족을 채우는 숭고의 언어로서 발휘된다. 따라서 그녀의 시의식이 다다르고자 하는 곳은 “개골(皆骨)의 결기 같은” 사물의 경계를 지워 “팔을 다 잘라낸 후 건져 올린 골법(骨法) 같은/붉은 저! 금강 직필들!”로서 ‘형식적 사설’과 ‘언어적 주설’을 최소화시키거나, 사라진 상태의 원흔적만 남아있는 비장한 시공간을 찾아가는 데 있다.
떨면서 첫 입술을 감히 갖다 대어본다
막 내민 촉촉한 첫 혀의 연두들
잘 잤니,
순한 반려들아 두근대는 햇숨들아
벵갈고무 새 잎에 입술을 깊이 주다
그 곁의 수더분한 이름 잊은 순에게도
있었니,
입술을 디밀며 연두를 염탐한다
오늘부터 내 아침은 잎을 여는 입맞춤
창턱의 바람에도 입술 봉긋 내밀고
잘 사니,
지나간 것들아 내일 당도할 꽃숨들아
-「잎맞춤 입맞춤」전문
이 시에서 ‘첫 입술’로 ‘입맞춤’하는 주체의 발화는 ‘잎맞춤’이라는 ‘새잎’으로부터 전도된다. “막 내민 촉촉한 첫 혀의 연두 새잎은” 허공이라는 여백을 지우며 나온 새순이라는 점에서 있어야 할 것에서 있는 것으로 이동한 경계의 흔적이다. 여기서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입과 잎의 병치관계에 놓인 ‘순한 반려’ ‘햇숨’ ‘꽃숨’ 등으로 상정되는 연두빛이다. “입술을 디밀며 연두를 염탐”하는 연두빛의 생명력은 “오늘부터 내 아침은 잎을 여는” 새로운 시작이며, “내일 당도할” 미래의 설레임으로 나타난다. 스에나가 타미오는 연두색을 “자연을 상징하는 원초의 색”이라고 하면서 “최초의 지상에 등장한 색이 연두였을 것이다. 생물이 상륙하기 전 먼저 이끼나 씨앗류 등 식물의 조상들이 바다로부터 상륙해 들어와 지구의 산소를 생산했던 것이다. 그리고 꽃이 피고 벌레나 동물 들이 생겨나 풍부한 생명 세계가 펼쳐졌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연두색은 신이 인간에게 보여준 최초의 색채로서 지구라는 황무지의 여백을 ‘연두색―있음’으로 지워서 녹색으로 채웠음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연두라는 결핍의 입은 실존의 잎을 드러내는 ‘숭고의 빛깔’이 아닐 수 없다.
3.
꽃 한 송이 피우는 데 가담한 적 없는데
꽃 진다, 찍는 것도 가소로운 간섭 같아
숙이며 지나치려 하니 발 놓을 데 가뭇없네
아픈 쪽에 가담해온 詩 자취도 희미할 때
뒤트는 지렁이들 피해 서던 아래쯤엔
말없이 기는 것들이 흙빛 윤을 돋우려니
가벼운 적선만 같아 ‘좋아요’ 망설이듯
슬픔도 함부로는 호명치 않으리라
테라도 우웅 울려야 꽃숨 얹는 가담이려니
-「소심한 고백」전문
꽃은 꽃씨가 변환된 것으로서 스스로 피고 만개하며 지는데, 우리는 꽃의 일대기를 관찰하며 세계의 생태를 깨닫기도 한다. ‘꽃 한 송이’만으로도 자아의 감정을 표현하고 세계를 표상할 수 있으며, 거기에 놓인 세계의 표시적 언어를 대체하는 ‘비언어적 미감’으로 사용할 수 있다. 형형하고도 다양한 색채와 질감의 “꽃 한 송이 피우는 데 가담한 적 없는데” 꽃이 피고 지는 것은, 꽃씨가 흙 속에 파묻혀 꽃씨로 ‘있어야 할 것’이 꽃으로 ‘있는 것’으로 수정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허공이라는 공간을 지우거나, 자신을 허공 속에서 지우는 것을 꽃이 핀다, 혹은 꽃이 진다라고 하는 것이다. 다만 ‘간섭과 가담’은 동조와 동의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갈등인 반면 “말없이 기는 것들이 흙빛 윤을 돋우려니”에서 보여주듯 땅과 꽃씨의 결합은 조화로운 꽃을 피워낸다. 화자는 경계를 지우고 나온 꽃의 바깥에서 그것을 ‘꽃숨’이라는 시어로 포착한다. 원래 ‘꽃씨’였으나 ‘씨’를 버리고 ‘꽃’만 남기는 꽃의 미학은 ‘당신이라는 씨’를 남기려고 ‘자신의 씨’를 땅에 묻으면서 희생으로 피워 올린 숭고한 사건이다.
그가 짚는 것마다
슬픔이 묻어난다고
바람의 귀띔에 귓불이 파래진 날
내력은 차마 못 물었는데
능선이 슴벅 겹쳤네
묵묵한 목덜미에는
묵은 그늘이 서너 말쯤
홀로 걸어온 독립유공 후손으로
저물면 울음 거둬 먹이듯
기타 제(祭)를 올린다네
-「어스름의 음계」 전문
꽃을 피우듯 시인이 피워낸 언어의 경계에서 지워진 것에 관한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그가 짚는 것마다/슬픔이 묻어난다고” 화자가 주목하는 것은 ‘슬픔’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나간 슬픔의 자리다. 여기에 놓인 것은 슬픔의 흔적으로서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결핍과 있는 것이 사라진 부재 사이에서 생겨난 ‘감정의 울음’을 보여준다. 시인의 ‘어스름의 음계’는 하루에서 멀어진 저녁의 바깥에서 숨죽이며 내는 ‘고요의 소리’를 현현한 것이다. “바람의 귀띔에 귓불이 파래진 날”은 남아 있는 상처의 빛깔로서 보이지 않는 바람의 진동이 얼굴 가장자리 귓불을 파랗게 만들어 버린 것 역시 무색채였던 귓불을 파랗게 지우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결핍이 충족을 지우면서 동시에 새기는 미적인 것의 출몰은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며 무의식과 무한의 영역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시인이 그것을 미적인 언어로 형상화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경계 없음에서 벌어지는 무한한 세계 형상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 그녀의 시는 “홀로 걸어온 독립유공 후손”과 같이 남아서 슬프고, 쓸쓸한 징후의 언어로서 “저물면 울음 거둬 먹이듯/기타 제(祭)를 올리”는 것이다. 그녀에게 한편의 시는 제의과정으로 숭고에 바쳐지는 축문이며, 시인은 제사장이 되며, 그것은 곧 숭고의식이 된다.
4.
저기
혼자 밥 먹는 이
등에서 문득
주르르륵
모래 흘러내려
어둠 먹먹해져
지나던
소슬한 바람
귀 젖는다
鳴沙……
-「늦저녁」전문
결핍과 부재로서 실존하는 경계를 넘어서려는 그녀의 시세계는 “무심의 흰 경계를” “말의 안과 밖과 너머를” “아픔 고픔 슬픔의 곳곳을” “못 미치는 말로 탐하다”에서 보듯 외롭고, 높고, 쓸쓸한 것을 탐망한다는 것. 경계를 넘어서기 위해 경계를 지운다는 것. 말의 안과 밖을 언어로서 넘어간다는 것, 또한 숭고해지기 위해 숭고의 언어를 탐방한다는 것이다. 시인이 언어에 대한 끊임없는 집착과 사유에의 욕망을 통해 숭고를 탐하고, 미학을 있게 한다는 것은 그다지 녹록하지 않다. 그것은 ‘늦저녁’ “혼자 밥 먹는 이”의 “등에서 문득/주르르륵” 흘러내리는 슬픔과 모래 씹히는 고독한 소리를 내고, 그것을 홀로 들어야 하는 눈물겨운 일인 줄 모른다. “숭고가 어떤 미의 과잉이라면 그것은 오직 결핍에서만 그러하다. 숭고는 실제로 미이고 지양이다. 그것이 바로 숭고의 진실이다. 숭고는 미의 미완이며, 스스로를 완결하려는 과정의 미인 것이다.” 미적 완결은 오로지 숭고를 통해 가능하지만 언제나 숭고미는 미적 미완으로 남는 것과 같이 그녀의 시쓰기는 그것을 완성하고자 하는 움직임이며, 미적 완성에 최대한 가닿기 위한 철저한 자기 수행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도 “미쳐 미치지 못한” 숭고미를 향한 그녀의 글쓰기는 미적인 것을 “찾고 헤고 기룬 것들을/세상에 머리맡으로 보내는” 심상으로 의지를 굽히지 않고, 시인의 길을 다지며 왔을 것이다. “어둠 먹먹해져” 오는 늦은 저녁 “지나던/소슬한 바람”에도 그녀는 미적 가치에 귀를 ‘사유의 시간’에 젖어보지만 숭고는 쉽게 ‘미학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정수자 시에서 볼 수 있는 숭고란 식별할 수 있는 가시적인 것이 아니라 불가시적인 것으로써 미학과 결합되는 지점에서 숭고미를 발견할 수 있다. 정수자 시인의 숭고미는 없는 것이 있는 것을 사라지게 하는 여백의 미학에 존재하기도 하고, 있어야 할 것을 지워냄으로써 거기에 숭고를 새겨 넣기도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 ‘모나리자’의 눈썹이 없는 이유 역시 모나리자 미소를 강렬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 눈썹을 지워냄으로써 숭고미가 생기는 원리와 같이, 그녀의 시적 아우라는 결핍과 부재, 여백과 충족의 조화로서 있어야 할 것을 통해 없는 것들의 자리를 비춰줌으로써 생겨나는 ‘숭고의 비밀’이라는 점에서 ‘모나리자 효과’로 명명할 수 있다.
글 · 권성훈 | 시인·문학평론가. 2013년 『작가세계』 평론 신인상 당선. 한신대 종교학과, 경기대 대학원 국문학과 박사 졸업. 고려대 국문학과 박사 후 과정 수료. 시집 『유씨 목공소』 외 2권, 저서 『시치료의 이론과 실제』 『폭력적 타자와 분열하는 주체들』 『정신분석 시인의 얼굴』과 편저 『이렇게 읽었다―설악 무산 조오현 한글 선시』 등이 있음. 고려대 연구교수 역임, 현재 경기대 국문학과 초빙교수.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6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