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송영희 | ||
|---|---|---|---|


신작시
지나가고 있다고 쓴다
지금 비가 내리고 있다는
새벽부터 밤중까지 종일 비가 내리고 있다는
그 아픈 말쯤
이젠 너의 뒷모습도 어깨도 너무 멀리 보여서
그만 너를 잃어버린 거 같다는
그 먹먹한 말쯤
아직도 꿈속에서 네가 내 몸속에서 잠이 들었다는
어제도 내 몸을 지나갔다는
그 슬픈 말쯤
이제는 버스를 기다리며 달려오는 불빛에
쓸 수 있다
이별 후에 오는 것들이 이제는 쯤 쯤 쯤으로
녹아지는 때
겨울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우산 속처럼 따뜻하다
누군가 켜놓은 불빛 때문에
인가의 불빛 때문에 나는 문을 열고 신발을 벗고
식탁에 앉을 수 있는 거
언제 나 그렇게 단단해졌나
혼자 밥을 먹고 혼자 길을 건너고
혼자 잠에 드는 일
그동안 쓰러질 그 한 곳을 찾지 못해
이제는 버스를 기다리며
달려오는 불빛에 쓴다
목에 두른 털목도리를 여미며 쓴다
오늘이
지나가고 있다고
거짓말처럼 지나가고 있다고
내가 머물고 싶은
버스는 끝없이 긴 포도밭을 지나고 있었다
포도 삼모작을 한다는 이 나라에서는
10월에도 싱싱한 포도 잎들이
바다를 향해 줄줄이 넝쿨을 뻗고 있었다
우리의 사라진 사랑도 삼모작이었다면
복원될 수 있었을까
한 해에 세 번씩이나
푸르디푸른 입술로 돋아날 수 있었을까
내가 처음 부른 네 이름 네 눈썹 네 머리카락
반짝이며 지금까지 남아 있을 수 있었을까
어디에 떨구어 놓았는지
지중해 연안을 향해 달리면서
젊음이 발효되지 못해 미숙해진
그해 일모작 포도 알들을 떠올려본다
멀리서 이별이 번개처럼 달려와도
저편 세상인 듯 아물아물 어제가 잊혀져가도
마지막 내가 머물고 싶은, 지상에 딱 한 곳
토스카 폴리아 붉은 마을
아프지 않고 늙어갈 수 있겠다
봄비
구름의 거품은 얼마나 겹겹인지
얼마나 가벼운지
어쩌다 하늘 능선에서만 사는
희망의 입술은
아직도 저리 격렬한지
바로 이렇게 뜨겁게 닿을 수 있다는
그 몽상의 시간마저 없었다면
당신과 나
어찌 새가 되어
저 버들잎 연두에 날아갈 수 있었을까요
뭐,뭐,뭐,
그럴 수 있지요
내 마음인데
밤새 날아갈 수 있다는 거
그거……
자선시
폭포
이제서야 이별의 힘 얼마나 무서운지 알겠다
산산이 부서질 수 있는 그 중심이
얼마나 눈부시고 황홀한지도 알겠다
두려움 없이 폭음 속으로 사라지는
한순간의 그 전율이 바로 우리의
목숨이라는 것도 알겠다
어차피 이 세상 제물로 놓여 썩어지는 것
오늘은 저 희고 부드러운 제단 문으로 들어가
깊이깊이 온 정신의 피를 모두 쏟아내고 싶다
물 한 방울로밖에는 사라질 수 없는 그 껍질을
꽃잎 지듯 저 절벽 아래로
던져버릴 수 있다면
대낮, 죽음을 통과하고 있다.
어느 날 그 소식을 들었다
여름 폭우가 무섭게 지나간 뒤 큰 새가 작은 새들에게 말했다 “숲속의 벌레들이 많이 죽었어 고약한 비 때문이야 이제 숲은 우리 모두 함께 살아가기엔 너무 힘겨워 그래서 너희들 중 누군가는 이 숲을 떠나야 해 그래야 나머지 식구들이 살아갈 수 있거든” 작은 새들은 날개를 접고 시름에 잠겼다 이 숲을 떠나면 어디로 가야 하나 그리고 과연 누가 떠나야 될까,
몇 날 밤이 지나서 큰 새가 어느 작은 새를 붙들고 말했다 “오늘밤 아무도 모르게 이 숲을 떠나거라. 그리고 다시는 이 숲에 오지 마라.” 깊은 밤 작은 새는 소리 없이 울면서 그 숲을 떠났다.
평화도 같이 그 숲을 떠나갔다.
전주(前奏)에 대하여
강원도 고샅길이 그렇듯 우리 마을도 길 끝, 암자로 올라가는 숲길 있네 그 길가 군데군데 오래된 두릅나무가 있어 산벚 후르르 날릴 무렵이면 동네 아주머니들 들일 잠깐 제치고 둘씩 셋씩 어울려 나물 소풍 나가시는데 나도 슬쩍 그 나들이 길에 섞여보는데, 가시 돋친 딱딱한 줄기 위로 화사한 깃털들 톡톡 꺾기 모두 안쓰러우신가, 집집마다 한 끼 나물거리만 거두어 가시네 뜯긴 그 자리 감싸주듯, 순 한번 다시 피긴 하지만 여름 한철 넓은 잎 되긴 하지만 엄동 지나 제일 먼저 봄빛에 생살 떼어놓고, 물 오른 공양 첫 제물로 바쳐놓고, 그 몸은 점점 가시가 되어가는, 오직 외줄기 하나로만 지탱하는
끓는 물에 살짝 데쳐놓으니 그 시 한 편 얼마나 향기로운지, 세상 모든 시집들은 전주(前奏)가 있었네.

송영희 | 서울 출생. 1968년 《여원》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시집 『그대 요나에게』 『불꽃 속의 바늘』 『나무들의 방언』 등이 있음. 『시문학』 〈우수작품상〉 수상.

절망의 시, 희망의 시
사랑과 문학은 공통적으로 모순성을 기반으로 한다. 사랑의 감정에 휩싸였을 때 이성보다 감성의 논리가 작동하고 남들의 충고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렇게 뜨거운 감정을 갖게 되는 것은 사랑이 이루지기 힘들 경우에 더 처절해진다. 하지만 사랑을 쟁취하면 어떤가. 인간은 이렇게 본질적으로 모순 덩어리이고, 문학이 이것을 진정성 있게 접근하여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사랑의 신, 큐피드도 떠오른다. 그는 황금 화살과 납 화살을 동시에 가지고 존재증명을 하는데, 황금 화살로 가슴을 맞은 사람은 사랑에 빠지고, 납 화살에 맞은 사람은 증오심을 갖는다고 한다. 그러니 사랑과 애증은 결국 하나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송영희 시인의 시편들도 동전의 양면처럼 절망과 희망을 지니고 있다.
인간의 모순은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삶과 욕망의 불일치에서 기인하는 연장선상에서 보면 인간의 삶은 유한하기 때문에 아름답고, 사랑도 영원하지 않아서 안타까운 것이다. 이런 비극성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상황적 아이러니가 다음의 시에 담겨 있다.
버스는 끝없이 긴 포도밭을 지나고 있었다
포도 삼모작을 한다는 이 나라에서는
10월에도 싱싱한 포도 잎들이
바다를 향해 줄줄이 넝쿨을 뻗고 있었다
우리의 사라진 사랑도 삼모작이었다면
복원될 수 있었을까
한 해에 세 번씩이나
푸르디푸른 입술로 돋아날 수 있었을까
내가 처음 부른 네 이름 네 눈썹 네 머리카락
반짝이며 지금까지 남아 있을 수 있었을까
어디에 떨구어 놓았는지
지중해 연안을 향해 달리면서
젊음이 발효되지 못해 미숙해진
그해 일모작 포도 알들을 떠올려본다
멀리서 이별이 번개처럼 달려와도
저편 세상인 듯 아물아물 어제가 잊혀져가도
마지막 내가 머물고 싶은, 지상에 딱 한 곳
토스카 폴리아 붉은 마을
아프지 않고 늙어갈 수 있겠다
―「내가 머물고 싶은」 전문
부재하는 “너”를 그리워하며 화자인 “내”가 버스를 타고 “끝없이 긴 포도밭을 지나”간다. “포도 삼모작을 한다는 이 나라에서” 화자는 “우리의 사라진 사랑”이 “삼모작이었다면/복원될 수 있었을까” 생각에 잠긴다. 이 시는 이렇게 “너”와 “나”와의 단절된 관계를 제시하며, “입술”, “눈썹”, “머리카락” 등의 시어를 통해 함께하던 몸의 기억을 반추한다. 헤어진 후 몸과 마음으로 “너”의 부재를 확인하는 일이 얼마나 아픈지는 겪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시간이 흘렀어도 함께한 추억들을 상기하면, 당시의 열기가 전해온다. 화자는 “젊음이 발효되지 못해 미숙해진/그해 일모작 포도 알들”을 돌아보며 이제는 “멀리서 이별이 번개처럼 달려와도” 삼모작을 하는 “토스카 폴리아 붉은 마을”에 머물고 싶어 한다.
성숙한 인간관계란 어떤 것일까. 살면서 참으로 어려운 게 좋은 만남을 사랑으로 오래 유지하는 것이다. 화자는 젊은 날 미숙해서 발효되지 못했다고 기술했는데 이 부분이 생의 아이러니다. 젊은 날은 누구나 좌충우돌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다. 많은 세월이 지나야 터득하는 생의 비의며 지혜를 그 당시에 어찌 다 알 수 있나. 성숙의 중요한 표식은 시야가 넓어지는 것이며, 역지사지의 입장으로 상대를 배려할 때다. 그런 정신적인 여유가 다른 사람과 같이 느껴보는 감정의 이입이고, 나아가서는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입장에 서서 자신을 돌이켜보는 능력이다. 이 시를 읽으며 저마다 바쁘게 돌아가는 생활 속에서 “아프지 않고 늙어갈 수” 있는 좋은 관계 맺기에 대한 상념이 계속된다.
아래의 신작시에서도 자분자분 아픈 이별의 말들이 그림자 지는 걸 보니, 시인의 몸속 어딘가에 그늘이 있나 보다.
지금 비가 내리고 있다는
새벽부터 밤중까지 종일 비가 내리고 있다는
그 아픈 말쯤
이젠 너의 뒷모습도 어깨도 너무 멀리 보여서
그만 너를 잃어버린 거 같다는
그 먹먹한 말쯤
아직도 꿈속에서 네가 내 몸속에서 잠이 들었다는
어제도 내 몸을 지나갔다는
그 슬픈 말쯤
이제는 버스를 기다리며 달려오는 불빛에
쓸 수 있다
이별 후에 오는 것들이 이제는 쯤 쯤 쯤으로
녹아지는 때
겨울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우산 속처럼 따뜻하다
누군가 켜놓은 불빛 때문에
인가의 불빛 때문에 나는 문을 열고 신발을 벗고
식탁에 앉을 수 있는 거
언제 나 그렇게 단단해졌나
혼자 밥을 먹고 혼자 길을 건너고
혼자 잠에 드는 일
그동안 쓰러질 그 한 곳을 찾지 못해
이제는 버스를 기다리며
달려오는 불빛에 쓴다
목에 두른 털목도리를 여미며 쓴다
오늘이
지나가고 있다고
거짓말처럼 지나가고 있다고
―「지나가고 있다고 쓴다」 전문
‘나’와 ‘너’의 관계성에 초점을 맞추며 감상해보자. 세상에 영원한 것이 있을까. 우리의 삶은 오가는 관계들의 연속이라서, 만남 뒤에는 언젠가는 이별이 오고, 헤어지고서야 그 존재의 의미를 실감하게 된다. 기쁨도 슬픔도 영원한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지나간다. 지금 화자는 이별의 슬픔을 견디며 “지나가고 있다고” 쓴다. ‘너’를 위한 위로가 애틋하며 후반부로 가면서 나를 다독이는 태도도 엿보인다. 여기서 결별에 대처하는 화자의 독백에 귀 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아직도 꿈속에서 네가 내 몸속에서 잠이 들었다는/어제도 내 몸을 지나갔다는” 부분을 보면 몸은 사랑의 여진으로 흔들리는 것 같다. 몸으로 느끼는 곡진함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이 전해오고 ‘너’에 대한 염려가 순정하게 전달된다. “새벽부터 밤중까지 종일 비가 내리고 있다는” 마음에 내리는 비는 사랑이라는 대상을 둘러싼 아우라까지를 포괄한다. 나와 너의 별리에 따른 동병상련이자 연민의 미학이다.
누군가를 못 견디게 그리워하고 사무쳐본 사람은 끄덕일 것이다. 눈길이 닿은 곳마다 그 사람 모습이 겹치고 음악을 들어도 그 얼굴이 떠오를 때, 이 시의 심정을 헤아리리라.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 마음이 더 확실한 실존이라는 사실을. 이 작품을 두고 무엇을 무엇에 비유했다는 식의 도식만 분석하는 것은 문학의 은밀한 본질을 놓쳐 버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송영희의 시는 사춘기를 거친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만 소재로 보편성을 획득하면서 관념의 유희로 빠지지 않고 진솔하게 독자에게 다가가고 있다.
또한 송영희의 시에는 비밀의 여운이 있으며, 그럼에도 희망을 노래한다.
구름의 거품은 얼마나 겹겹인지
얼마나 가벼운지
어쩌다 하늘 능선에서만 사는
희망의 입술은
아직도 저리 격렬한지
바로 이렇게 뜨겁게 닿을 수 있다는
그 몽상의 시간마저 없었다면
당신과 나
어찌 새가 되어
저 버들잎 연두에 날아갈 수 있었을까요
뭐,뭐,뭐,
그럴 수 있지요
내 마음인데
밤새 날아갈 수 있다는 거
그거……
―「봄비」 전문
태생적으로 시인은 “구름”처럼 자유롭게 떠돌며 외로운 운명이다. “몽상의 시간”이나 “새”의 이미지가 이를 대변한다. 이 신작시는 이미지와 분위기로 이끌어가며 전면에 주제의식을 강력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그럼에도 “희망의 입술”을 꿈꾸면서 “격렬하고”, “당신과 나”는 “버들잎 연두”에 “날아갈 수 있”다는 것으로 보아 시에서 다 말하지 않은 울림이 있다. 시라는 장르는 특성상 인과관계를 일목요연하게 다 보여주지 않고 여지를 두었을 때 감상의 몫이 증대되는데 이 시에서는 “봄비”와 내 안의 심상을 견주어 단아하고 담백한 멋을 살려내고 있다. 날씨와 마음 상태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되는 풍경화를 보는 듯하다.
“비” 이미지로 치환하여 이 시는 물 흐르듯이 흘러간다. 그것은 화자가 ‘관계의 적정거리’를 두어서 그렇지 않을까. 간격은 통로와 같다. “당신과 나” 사이 간격이 있다고 서운하게 생각할 것은 아니다. 마치 나무와 나무 사이가 너무 빽빽하지 않고 적당히 서 있을 때 잘 자라듯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알맞은 거리가 있어야 심미적이다. 이는 이제부터 소개하는 송영희 시인이 뽑은 자선 대표시에서부터 이어져 온 아름다운 관계를 위한 태도에 해당한다. 우리는 여러 대인관계 때문에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한다. 그만큼 만남과 유지는 중요하고 힘들다. 아름다운 거리는 결국 욕심과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며, 계절의 순환처럼 다시 봄이 오고 빗물로 흐르게 하는 소통이다.
여름 폭우가 무섭게 지나간 뒤 큰 새가 작은 새들에게 말했다 “숲속의 벌레들이 많이 죽었어 고약한 비 때문이야 이제 숲은 우리 모두 함께 살아가기엔 너무 힘겨워 그래서 너희들 중 누군가는 이 숲을 떠나야 해 그래야 나머지 식구들이 살아갈 수 있거든” 작은 새들은 날개를 접고 시름에 잠겼다 이 숲을 떠나면 어디로 가야 하나 그리고 과연 누가 떠나야 될까,
몇 날 밤이 지나서 큰 새가 어느 작은 새를 붙들고 말했다 “오늘밤 아무도 모르게 이 숲을 떠나거라. 그리고 다시는 이 숲에 오지 마라.” 깊은 밤 작은 새는 소리 없이 울면서 그 숲을 떠났다.
평화도 같이 그 숲을 떠나갔다.
―「어느 날 그 소식을 들었다」 전문
동화를 연상시키는 위 시에서 ‘희생양 제의식’이 떠오른다. 인간의 죄와 고통을 다른 어떤 존재에게 넘겨 대신 감당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이런 생각을 근거로 자신이 감당하고 싶지 않은 고난을 가령, 힘 있는 자가 힘이 없는 자에게 떠넘긴 수단은 얼마나 많은지. 여기서 생태계의 약육강식이 생기고 지배와 피지배의 논리가 생기며 소외의식까지 파급되는 것이다.
화자는 측은지심을 갖고 연약한 것들에 대해 갸륵한 눈길을 보내고 있다. 사물을 관심 있게 보고 삶의 알레고리로 환치한 사례이다. “큰 새”를 ‘갑’에 비유하면 “작은 새”들은 ‘을’에 해당할 것이다. “비”라는 시련이 닥쳐올 때 기선제압을 하는 것은 “큰 새”이다. “작은 새”들이 숲을 떠나자 “평화도 같이 그 숲을 떠나갔다”는 슬픈 이야기는 단지 “숲”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인간사회는 우격다짐이 훨씬 많다. 평화가 깨지면 생태계의 순환도 깨지는데 어떻게 해야 공존을 할지 화두일 때, 이어지는 예시는 소박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강원도 고샅길이 그렇듯 우리 마을도 길 끝, 암자로 올라가는 숲길 있네 그 길가 군데군데 오래된 두릅나무가 있어 산벚 후르르 날릴 무렵이면 동네 아주머니들 들일 잠깐 제치고 둘씩 셋씩 어울려 나물 소풍 나가시는데 나도 슬쩍 그 나들이 길에 섞여보는데, 가시 돋친 딱딱한 줄기 위로 화사한 깃털들 톡톡 꺾기 모두 안쓰러우신가, 집집마다 한 끼 나물거리만 거두어 가시네 뜯긴 그 자리 감싸주듯, 순 한번 다시 피긴 하지만 여름 한철 넓은 잎 되긴 하지만 엄동 지나 제일 먼저 봄빛에 생살 떼어놓고, 물 오른 공양 첫 제물로 바쳐놓고, 그 몸은 점점 가시가 되어가는, 오직 외줄기 하나로만 지탱하는
끓는 물에 살짝 데쳐놓으니 그 시 한 편 얼마나 향기로운지, 세상 모든 시집들은 전주(前奏)가 있었네.
―「전주(前奏)에 대하여」전문
먹이사슬에 의해 먹고 먹히는 관계는 생태계의 자연스러운 논리이다. 그런데 이것은 먹고 살기 위해서는 무언가는 희생되어야만 하는 처지에서 보면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이때 시인은 일정량만큼만 취하고 나머지는 보존하는 사례를 형상화하면서 마구잡이로 훼손하는 것에 대해 반성을 한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나물 소풍”으로 “두릅나무”를 뜯으러 가서는 “집집마다 한 끼 나물거리만 거두어”온다고 표현한 부분에서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시에서 “두릅나무”의 마음이 되어 서술하는 부분은 긍휼의 자세다. “봄빛에 생살 떼어놓고, 물 오른 공양 첫 제물로 바쳐놓고, 그 몸은 점점 가시가 되어가는” 모습이 애석하다. 이 시 역시 「어느 날 그 소식을 들었다」와 함께 희생양들을 어루만지는 시인의 따듯한 마음이 실려 있다. 두릅나무의 모습은 시인 자신의 시적 상징으로 보아도 무방하겠다. 이렇게 송영희 시인은 자신의 삶과 밀접한 공간에서 주제의식과 육화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전주(前奏)”가 되는 것들이 새삼 감사하고 거룩하게 느껴져서 속죄양을 해야 할 것 같다.
이제서야 이별의 힘 얼마나 무서운지 알겠다
산산이 부서질 수 있는 그 중심이
얼마나 눈부시고 황홀한지도 알겠다
두려움 없이 폭음 속으로 사라지는
한순간의 그 전율이 바로 우리의
목숨이라는 것도 알겠다
어차피 이 세상 제물로 놓여 썩어지는 것
오늘은 저 희고 부드러운 제단 문으로 들어가
깊이깊이 온 정신의 피를 모두 쏟아내고 싶다
물 한 방울로밖에는 사라질 수 없는 그 껍질을
꽃잎 지듯 저 절벽 아래로
던져버릴 수 있다면
대낮, 죽음을 통과하고 있다.
―「폭포」 전문
송영희 시인은 내재된 열정이 참 많겠다는 짐작을 해본다. “저 희고 부드러운 제단 문으로 들어가/깊이깊이 온 정신의 피를 모두 쏟아내고 싶다”는 표지가 증명한다. 또한 시인은“폭포”가 쏟아질 때 “죽음을 통과하”고 “제물”을 발견하는 놀라운 직관력을 지녔다. “이별의 힘”이 “황홀한” 경지였다가 뜨겁게 떨어져 “죽음”이 되는 논리에서 인간의 기본적 욕망구조인 아이러니적 정황이 포착된다. 이 시에서처럼 “한순간의 그 전율” 즉 폭포가 쏟아지는 모습은 ”목숨”이요, “꽃잎”의 시절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세상만물은 꽃으로 비유할 수 있는 절정을 지향한다. 모든 탄생의 궁극은 꽃을 피우기 위한 것이고, 만고풍상을 견뎌나가는 것도 결국은 꽃을 위한 것이다. 살면서 좌절하고 절망하다가도 희망하는 것은 꽃으로 현현하기 위함이다. 꽃의 기원에는 수많은 희생제물이 있다는 의미에서 꽃은 상처를 매개로 한다. 송영희 시인의 시세계에서 상처로 피운 진경이 아름다운 까닭이다.
글 · 박수빈(시인, 문학평론가) 광주 출생. 2004년 시집 『달콤한 독』으로 작품 활동 시작. 《열린시학》 평론 등단. 시집 『청동울음』, 평론집 『스프링 시학』이 있음. 현재 상명대학교 강사.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6. 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