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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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한승엽 

 

 

동쪽 끝 책방

 

 

 

오르막길을 오르다가

악기를 잃어버렸다는 이유 때문에 소금밭으로 가야 했지,

소금밭은 이미 옛 소금밭

갇혀 사는 갈대가 책장 넘기는 소리를 남겨두려는 것 같았지

물꿩은 괴로운 몰락을 만났다는 듯

하루살이가 걸려 매달린 거미줄을 찢으며 날아오르고

나는 등대풀 침대에 누워 포스트잇에 쓰인

나의 주인이 오기만을 기다려야 했지,

낮 12시를 조금 지났을 뿐인데

모호하게 뜨겁거나 이마에만 쨍쨍한 뙤약볕

터질 듯 속삭이며 뒤따라온, 출처가 없는 저 길은

짐작하건대 어느 집에서 나와 죽음으로 향하는 기록이겠지

반듯한 생(生)도 죽음의 곁을 지나가는 것이라면

온전히 다 죽을 수 없는 것들이

죽은 듯이 다시 세상에 나와 머뭇거리는 일이란

해안선이 시작되는 곳에서

노래 반주를 도맡았던 악사를 오래 기다려보는 것,

보이지 않는 기별이 있어 긴장하던 눈빛이

파도가 친 밑줄에 독법(讀法)으로 뚫어지게 파고드는데

아주 먼 곳에서

내 목소리가 언제 가장 그리웠느냐고 물어오듯이

아코디언 주름상자가 가슴을 치며 밀려오고, 급기야

말의 굴레를 벗어나 매일매일 신생(新生)하는 모래톱에게

관념의 속살들에 대해 물어보려다가

깊게 호흡을 가다듬는 사이

한 구절 영감(靈感)을 스윽 내밀고 이내 닫으려는

저 물결의 문고리, 사진엽서처럼 손에 잡힐 듯했지.

 

 

 

 

 

 

 

 

 

 

 

 

 

 

 

 

 

 

 

신작시_한승엽.jpg

한승엽 | 제주 출생. 2006년 『문학예술』 등단. 시집 『몰입의 서쪽』 『별빛극장』이 있음, 〈천강문학상〉 〈김만중문학상〉 수상.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6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