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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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어진 

 

 

  동백

 

 

  얼굴보다 먼저 땅에 떨어진 게 있었다

  꽃잎뿐만 아니라, 꽃을 피우도록 애간장을

  다 바친 뿌리의 눈알이 흥건히 고여서…….

 

 

  나무가 뜨거운 불이었을 때, 쉼 없이 활활 타올라 온 몸의 기운이 한쪽으로 쏠리고, 마침내 거대한 숨을 참지 못해, 꽃잎을 피우는 봄밤, 어딘가로 솟구치고 싶은 마음에 방문을 연다

 

  차고 축축한 나뭇가지 안의 방에서 걸어 나오는 겨울 곰 한 마리가 나무 밑에 가 눕는다 당신이 겨울 동안 남극이며 저 북쪽 툰드라 지역 어딘가를 돌아다닐 적에 당신의 가죽이 되어주었던 곰

 

  당신이 그토록 기다리던 동백이 드디어 폈는데, 꽃을 보아줄 이 없으니, 그게 서럽다고 나뭇가지들이 앞 다투어 울었다 나무 속에서 기어 나온 곰이 해맑게 웃는 무색한 봄날, 길게 뻗은 곰의 발바닥 안에서 새싹들이 움텄다

 

  울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겨우 내내 울고 있었다 뿌리에서부터 터져 나온 빗물이 창문마다 철창을 짓고 있었다 누군가 이 성가신 봄을 가만가만 어루만지고 있을 것이다. 똑 하고 떨어진 꽃잎을 검은 곰이 날름날름 핥아먹고 있다 곰, 하고 불러보다 어느 한 날 곰의 얼굴을 빌려올 수 있을까 얼굴이 없어진 날부터 나는 사실, 당신 얼굴을 내 몸 위에 얹고 어슬렁어슬렁 공원을 돌고 있는 상상을 하느라, 꽃잎이 툭하고 떨어지는 줄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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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진 | 2015년 《시인동네》로 등단.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