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 저자 | 김경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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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룽다
불이 지나간 자리가 차다
그을음이 울음으로 읽히는 석조대좌에 바람과 구름이 빚어내는 이끼꽃이 뒤덮여 있다
불길이 지나간 그 속에는 스치기만 해도 전 생애가 흔들리는 간절한 기도가 들어 있다
귓가를 스치던 것들의 소리와
멀리 혹은 가까이 바라봤던 것들을 제 몸속에 넣어두고
민흘림기둥이 있던 주춧돌 아래 옛 길을 숨겨놓았다
홀로 서서 느티나무와 거리 재기하며
그림자로 말을 주고받는 삼층석탑
풍탁 소리 번지는 자리마다
지나간 시간을 다 들어 올릴 듯 꽃다지 냉이꽃 피었다
잠들어 있는 것들도 뒤척이며 조금씩 길을 풀어 놓는다
불길이 지나갈 때 하늘 모퉁이에서 몇 번이나 적란운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는가
아직도 숨 닫지 않은 우물에서 흘러나오는 물줄기와
천 년 전의 기억들은 모두 명주실 같은 실핏줄이 되어서 회랑을 돌아다닌다
거돈사지 느티나무,
봄이면 가지 끝에 내다 거는 룽다를 헤아리는 데 천 년이 걸렸다
수억 만 장의 이파리룽다에 그물 무늬로 새겨놓은
옴마니반메홈
폐사지의 주불전이다

김경성 시인
김경성 | 2011년 『미네르바』로 등단. 시집 『와온』이 있음.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6. 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