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김찬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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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둥근 화단
그때, 어머니의 화단엔 사철 푸른 나무는 한 그루도 없었지요 장미나 백합, 수수꽃다리 같은 꽃은 구경조차 할 수도 없었으니까요 봉선화, 나팔꽃, 사루비아, 분꽃, 채송화, 나리꽃, 코스모스, 족두리꽃, 해바라기, 겨울이 오면 뿌리로 저장할 수 있는 꽃은 아마 달리아가 고작이었을 겁니다
봄비가 촉촉한 세상을 안겨주는 날이면 어머니는 호미를 들고 다니며 나팔꽃은 울타리 밑에, 채송화는 토방 밑에, 코스모스는 고샅길에, 해바라기는 벽을 대신해서, 화단 안에 심어지는 것들은 봉선화, 맨드라미, 분꽃, 사루비아, 과꽃 같은 한해살이 꽃들뿐이었지요
꽃밭이라고 해 봐야, 시골집 마당가에 대나무 쪽을 꽂아서 경계를 만든 한 평도 안 되는 좁은 땅이었지요 여린 꽃들이 비좁은 땅에서 치일까봐 각자의 자리에 맞게 모종을 해주었다는 것도, 저녁이면 자식들이 올망졸망 둘러앉아 웃음꽃을 피워낼 수 있는 둥근 밥상이, 진짜 어머니의 화단이었다는 것도 알려고 하지 않았지요
어머니는 따뜻한 화단을 만들기 위해 밥때마다 굴뚝으로 연기를 피워 올렸고, 우린 틈만 나면 검은 굴뚝을 빠져나온 연기처럼 지붕을 벗어날 궁리만 하였으니까요 간절한 만큼 틈새가 열리더군요 서울로 가는 야간열차의 기적 소리는 급기야 시골집 마당에 쳐진 경계를 허물게 했고, 자식들은 하나같이 어머니의 둥근 화단에서 빠져나오고 말았으니까요
봉선화 한 그루 심을 자투리땅도 쉽게 내주지 않는 곳으로……

김찬옥 시인
김찬옥 | 전북 부안 출생. 1996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가끔은 몸살을 앓고 싶다』 『물의 지붕』 『벚꽃 고양이』, 수필집 『사랑이라면 그만큼의 거리에서』가 있음.
월간 웹진 공정한시인의사회 2016. 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