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 저자 | 조창환 | ||
|---|---|---|---|
환한 그늘
백담사에서 오세암 가는 길
구절초인지 쑥부쟁인지, 아니면 개미취인지
작고 흰 꽃들이 뭉텅이져 흔들린다
가을 오솔길에서 마주친 다람쥐가 걸음을 멈추고
빤히 바라본다
조금 더 걷다가 시든 풀숲으로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뱀, 누룩뱀 만난다
뱀은 놀라지 않고 태연히 미끄러진다
높은 가지 위에서 오색딱따구리가 제 할 일 하고
가을 단풍은 태평무심이다
젖 많이 나는 여인 같던 계절 지나
혓바닥으로 빨던 젖 풀고 가만히 숨 돌이키는
그늘, 환한 그늘
환한 그늘은 식지 않은 고요들에 젖은 입김을 나누어준다
백담사에서 오세암 가는 길
반쯤만 훔쳐본 비밀, 환한 그늘 속에 깃든

조창환 시인
조창환 | 1973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벚나무 아래, 키스자국』 『마네킹과 천사』 『수도원 가는 길』 『피보다 붉은 오후』 등이 있음. 〈한국시협상〉 〈한국가톨릭문학상〉 〈경기도문화상〉 등 수상. 현재 아주대학교 명예교수.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6.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