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 저자 | 김명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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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斜陽)
엄마의 꽃밭 위로 날이 저무네
음지의 호박잎이 저무는 해처럼 늙어가고
오지의 이 마을은 저 호박잎처럼 낡아가네
오가피 뿌리를 파내고
깨밭을 갈아엎고
상추며 실파며 무 대신
온갖 꽃을 심은 엄마의 꽃밭은
더 이상 늙기 싫은 당신 속내 같네
눈망울이 바다를 닮은 주워온 고양이는
이 마을에서 제일 어린 생명
제일 어린것이 낡아가는 모든 것을
천천히 둘러보네
고양이는 짖지 않아서 좋고
늙은 엄마는 말이 없어서 좋네
또 한 계절의 뜨거운 권태가 가고
가을이 오고 또 가을의 권태가 올 것이네
오래된 선풍기가 쇳소리 내며 돌아가는 저녁
출처를 알 수 없는 바람의 끝을 따라
한 고요가 다른 고요를 깨우며 점점 이슥해지는데
다만 습관 같은 이 적요(寂寥)만이
더 이상 낡을 줄을 모르네

김명기 | 2005년 《시평》으로 등단. 시집 『북평 장날 만난 체게바라』가 있음.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6.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