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 저자 | 홍일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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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화
이곳에 없는 박쥐처럼 웃고
깨져 뒹구는 얼굴을 벙거지로 쓰고 다니는
검고 화려한 밤
검은 색은 심각해지고 누군가의 말이 규정한 어둠이 혀끝에서 달콤해진다
전염된 열두 시는 열두 시가 되지 않고
지하를 돌아다니는 그림자
밤늦도록 거리를 헤매고 다니는 늙고 추레한 개
고양이 밥을 주던 손이 장총으로 자라고
엎질러진 물처럼 꽃들은 팔다리를 자르고 망명한다
세 모녀가 불타 죽던 저녁
해질녘에 도착한 햇살들이 취하여 우르르 몰려가는 곳
마지막 불씨를 뒤적이면서
시커멓게 탄 살과 뼈로 달아나면서
몸을 지우고 땅속에 숨어서 자라는 그림자를 본다
눈도 코도 본 적 없는 이방인 같은
아무도 부른 적 없는 노래 같은
실뿌리를 타고 올라오는 웃음소리가 필라멘트처럼 발갛게 달구어진다
어디서 복사꽃이 필 것도 같다
나는 불속을 지나 다시 화염 속으로 망명한다

홍일표 |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살바도르 달리풍의 낮달』 『매혹의 지도』 『밀서』, 평설집 『홀림의 풍경들』이 있음.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6.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