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 저자 | 이관묵 | ||
|---|---|---|---|
無香軒
겨울인데도 비가 왔습니다
밖에서 돌아와 문 걸어 잠그고 듣는 슈베르트 아르페지오
나는 오후를 내성적으로 틀어놓고 고요 쪽으로 머리를 두었습니다
이불 뒤집어쓰고 앓아누운 겨울 곁으로
빗소리를 오려 가진 비
제집 가는 길 몽땅 털린 비
오래 불 때지 않아 냉골인 마음 열어주었습니다
늦은 밤
비와 독대했습니다
지도에도 없는 길을 물어물어 찾아오느라 수고한 비
내가 살아본 적 없는 삶을 지껄이는 비
멀리 사시는 하루가 도착하자 부랴부랴
비는 겨울에게 사과하고…
겨울은 비를 용서하고…
비가 잠 안자고 캄캄한 밤에다 끼적거린 낙서들
시가 아닌
그냥 낙서들
문득 비에게서 시 냄새가 납니다

이관묵 | 197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시간의 사육』 등이 있음.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6.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