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 저자 | 권상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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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나이
저장된 번호 하나를 지운다
화면은 금세 숫자를 잊었지만
추억은 그리 간단치가 않았다
낮에는 웃으며 뷔페를 먹었고
저녁은 멀건 소고깃국
단지 하루 동안의 일이었는데 우리는
세상 기쁜 표정을 더없이 슬픈 눈동자로
어렵지 않게 바꿀 수 있었다
감정에는 차츰 내성이 생기고
언술은 자꾸만 세련되어 갔다
편의점 데크에서 맥주 캔을 따며
슬프냐 묻는 친구의 말에
슬픔이 더는 감정이 아니라 형식 같다는
나의 대답은 진심이었다
그럴 나이라고 했다
빈 캔을 구기며, 그가 내민 말을
마른안주처럼 오래 씹었다
아릿한 뒷맛이 누군가의 부재보다
오래 슬펐다

권상진 ■
2013년 〈전태일문학상〉 수상 등단. 시집 『눈물 이후』 『노을 쪽에서 온 사람』, 공저 『시골시인-K』 『베토벤을 읽다』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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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호(VOL.1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