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 저자 | 류성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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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퍼 클라우드
늙은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듣다
그가 열두 살 때 시력을 잃었단 걸
뒤늦게 들었다
장님이 원래는 존칭이었다는 걸
모두가 잊은 것처럼, 나는
암막커튼 밖에서 주머닐 뒤적인다
심호흡을 하고, 가벼운 산책을
나가고, 따뜻한 허브티처럼 혹은
삼각파도처럼 몰리는 위로 속에서
우리는 상가들처럼 문을 닫으며
저문 하루 아래 우리가 잃는 건
길인지, 거길 걸어낼 다리들인지
도움을 아무리 주워 모아도
우리는 우리를 구하지 않아, 그런 걸
더러 흙 묻은 돌처럼 말하는 이들의
밤과 낮들이 더 고즈넉이 모이는 걸
본다, 그것만이 저녁을 쫓던 우리를
붉은 구름 속에서 눈 띄울지 몰라
너무 오래 버려두었다
가시덤불엔 안팎이 없어, 너희가
포기하지 말라고 오래 말하던
풍화된 흙이 다시 돌에 묻듯이
선물 포장처럼 반짝이는
출출하고 졸린 내일이
높은 골목을 걸어올 때
어쩌면 우린 너무 오래
행복했던지도 몰라
더는 해 뜨지 않는 곳
마지막 종이 구름을 띄운다

류성훈 ■
201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보이저1호에게』 『라디오미르』 『산 위의 미술관』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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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호(VOL.1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