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 저자 | 이용헌 | ||
|---|---|---|---|
또 다른 사랑
나비는 나비가 되어 날고
오랑캐꽃은 오랑캐꽃으로 피어나는 봄에 대해
당신은 말해 주지 않았지만,
냇물은 냇물로만 흐르고
바닷물은 바닷물로만 출렁이는 여름에 대해
당신은 귀띔해 주지 않았지만,
먼 길 돌아와 마른나무 곁에 서면
외람되이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고
들리지 않는 것이 들리는 가을에 대해서도
당신은 결코 이야기해 준 적 없지만,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어
누구에게도 구할 수 없어
무릎을 낮추고 두 손을 모으고
마음의 눈발 속을 산짐승처럼 헤맨 후 알았지만,
끝내 알고 싶은 것은 계절이 아니어서
끝끝내 묻고 싶은 것은 죽음 너머가 아니어서
알아도 행복하지 않고
몰라도 불행하진 않았지만,
이제 나는 당신을 믿지 않기로 해요.
보아요.
나비가 하늘대는 하늘에 살인 드론이 날고
아이들 웃음꽃이 피어나는 땅에 미사일이 박히는
당신이 주재하는 또 다른 나라,
당신이 사랑하는 또 다른 사랑을.

이용헌 l
2007년 《내일을여는작가》 등단. 시집 『점자로 기록한 천문서』, 엮은 책 『님의 침묵 다시 읽다』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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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호(VOL.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