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 저자 | 김안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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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 지고
살구다,
살구나무에서 살구가 떨어졌다
너 살구나무였니? 몰라봤어
아파트 화단에 놓인 수십 개의 살구알
잔디밭이 켠 전구들
벌써 살구가 맺힐 날이던가
떨어진 살구는 옅은 노을색
초여름 풀내가 나고
아무 노력 없이 받는 살구
대가를 바라지 않고 피는 살구
추리닝 바람, 고개 푹 숙인 낙과 같은 얼굴에게
살구 좀 같이 드실래요?
묻고 싶은 걸 참는다
어디 가세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
쓰레기 분리수거장
천변 운동
동네 마트
강아지 산책
종종걸음은 살구를 놓친다
외면한다
어떤 열매도 낳아 본 적 없는 나는 헛배만 불러
슬픔의 검침원 수시로 찾아오는데
오늘은 살구가 왔다
살구가
잼으로 졸일 수 없는 생각들이
이렇게나 작고 어여뻐,
나만 아는 살구나무 농장에서
백 년이 간다면

김안녕 l
2000년 《실천문학》 등단. 시집 『우리는 매일 헤어지는 중입니다』 『사랑의 근력』 등이 있음. 제2회 〈길동무문학창작기금〉 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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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호(VOL.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