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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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지상 

 

 

 

 

오선지 위의 시어들 11

— 김용택 시 「그 나무」

"너를 향한 이 그리움은 어디서 오는지"

 

 

꽃이 진다  

새가 운다  

너를 향한 이 그리움은 어디서 왔는지  

너를 향한 이 그리움은 어디로 갈는지  

 

꽃잎은 바람에 날리고  

사랑에는 길이 없다  

 

나는 너에게 눈멀고  

꽃이 지는  

나무 아래에서 하루해가 저물었다  

 

 

  교양이란 말의 정의(定義)가 필요했다. 소위 “교양학부” 혹은 “교양 대학”이란 곳에 적을 두고 산 지가 이십여 년이 훌쩍 넘었으나 교양이란 말의 기준을 세우지 못했던 탓이다. 고작 정갈한 옷차림, 우아한 어투, 서두르지 않는 행동, 때로는 향유하고 있는 상표의 등급 따위가 품위가 되고 교양 있는 자를 판단하는 잣대가 되는 일반적인 규정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일단 나 자체가 교양 있는 자에 속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내가 만나는 대개의 사람들 또한 이 부류에 속하지는 않는다. 개인의 형성과 완성의 과정에서 사회적 보편성을 획득해 나아가기 위한 성찰의 산물이라는 말에는 일반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많이 배웠거나 다양한 예술적 지식을 가졌거나 다방면의 사회적 경험을 통한 출중한 능력치를 보유했다고 해서 모두가 교양 있는 자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많이 겪어봐서 안다.

  어릴 적 어머니가 자주 하셨던 말 중의 하나가 “배 먹지 못한 놈”이었다. 나물을 다듬다가, 양말을 꿰매다가, 화롯불에 군밤을 묻어둘 때 마침 군밤이 툭툭 터지는 때를 기다린 듯 중얼대시는 말씀이었다. 개인적인 섭섭함의 토로는 아니었다. 주로 술버릇이나 말본새가 시원치 않은 이거나 자발없이 끼어들어 다 된 일 그르치는 이를 그렇게 평가하기도 했고 별거 아닌 일로도 거들먹거리거나 모든 셈법에 있어 자신을 빼놓고는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기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기도 했다. 동네에서 그런 사람은 몇 없었다. 어머니는 무학(無學)이었다. 그러니 학력으로야 어머니보다 못 배운 사람은 없었다. “배워먹은 사람”이란 말도 자주 하셨었다. 동네일에 나서되 진중한 사람, 일의 성사를 위해서는 자기 집 일도 잠시 접어두는 사람,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을 그렇게 불렀다. 나보다 세 살 많은 동네 형이 있었다. 그는 국민학교를 졸업하고는 학교에 다니지 않았다. 농사일을 거들었고 부지런했다. 틈틈이 동네에서 유일하게 흐르는 무너진 도랑을 청소했고 끊어진 전기 퓨즈를 연결했고 고장난 펌프를 고쳤다. 모두 자기 집 일이 아닌 다른 집의 일이었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에 그는 동네 사람들 모두가 찾는 큰 일꾼이 되어 있었다. 어머니는 그를 “배워 먹은 사람” 어떨 때는 “배 먹은 얌체보다 훨씬 난 사람”이라고 불렀다. 동네에서 그런 사람 또한 몇 없었다.

 

  대학에서 전공이란 자격(資格)을 획득하기 위한 기초 조건이다.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답하는 첫걸음에 해당한다. 대개의 경우 전공에는 매뉴얼이 있다. 학생들은 누군가 미리 만들어놓은 매뉴얼에 자신의 꿈을 의지한다. 그에 따른 절차에 따라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그중에 몇몇은 성취하고 또 다른 다수는 그와 유사한 자격을 획득하게 된다. 자격은 개인의 행복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오직 그렇다는 말이다. 단언컨대 개인의 자격이 공동체의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2025년 3월 25일 시·소설·평론·아동 청소년·극작·만화 부문을 망라한 작가 414명이 ‘윤석열의 즉각적 파면’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훼손되지 말아야 할 생명, 자유, 평화의 가치를 믿습니다. 파면은 보편적 가치를 지키는 일 입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 소설가 한강은 이렇게 적었다. 소위 공동체의 유지, 발전은 오직 개인의 자격이 아니라 보편적 가치의 회복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묵직한 단문이었다. 그가 언급한 생명, 자유, 평화에 속한 정의·사랑·인권 등등의 보편적 가치는 이웃의 아픔에 대한 연민과 공감 그리고 연대(連帶)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확대되고 오직 그것을 통해서만 세계는 진보해왔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대학에서 교양이란 전공 이외의 부차적인 과목 정도로 치부된다. 필수 과목도 있지만 선택 과목이 더 많다. 하여 나는 이제서야 교양이란 말의 섣부른 정의를 가지려 한다. 교양이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할 의무를 지닌 자들의 부단한 학습”이라고. 또 교양이란 “보편적 가치의 획득을 기반으로 하며 이상적 공동체를 지향한다.”고. 교양을 학습하고 실천하는 일에 경쟁은 필요하지 않다. 보편적 가치의 추구는 경쟁을 수단으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위의 정의는 이를 믿는 이들에게만 적용된다.

  나는 그 한 사람을 안다. 그는 최고의 학부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았고 최고의 자격을 획득했으며 그것을 통해 최고의 지위를 누리며 거의 평생을 살았다. 55년의 공직 생활 동안 5개의 정부를 거치며 국무총리를 두 번씩이나 지낸 사람이다. 그는 2026년 1월 21일 징역 23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12·3 내란의 중요 임무 종사자였다. 대통령이 되려 했으나 그 또한 자신만을 위한 일이었고 실패했다. 자신의 처세를 위해 공동체를 이용하기보다 자신을 고위직으로 만들어준 공동체를 위한 최소한의 헌신이라도 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다. 어머니가 툭툭 던지던 말을 떠올리면 그는 결국 많이 배웠으나 “배 먹지 못한” 사람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가 교양을 획득한 사람이었다면 생겨나지 않을 일이었다.

 

  꽃이 지고 새가 우는 나무 아래서 그저 그리움에만 눈먼 청년을 떠올린다. 그는 섬진강 가의 작은 집에서 태어났고 거기서 자란 시인이다. 사랑으로 가는 길이 막막해 바람에 날리는 꽃잎만 하염없이 응시하다 저무는 하루해를 맞는다. 특별한 서사나 기술 없이 막연하게 써 내려간 이 담담한 시를 받아든 때가 아주 오래전이다. 어쩌다가 한 번씩 부르는 이 노래를 지난해 말 열린 공연에서 불렀었다. 나 또한 특별한 기술은 없었다. 남은 생을 감옥에서 살아야 하는 그이에게 이 시가 미리 전해졌다면 어땠을까를 상상했다. 그리고 “배 먹은 놈보다 나은” 그 형을 동시에 떠올렸다. 둘 다 한 씨 성을 가졌기 때문은 아니다. ‘사람’을 살아가는 일에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는 않다. 교양이란 단지 “배워 먹은 일”로 흔적 없는 발자국을 찍어가는 일일 뿐이라는 걸 어머니처럼 중얼거려 본다. 이 노래를 흥얼거리면서는 올 한 해 또 배워 먹은 사람이 되기 위한 일은 무엇일지를 두리번거리는 것이다. 

 

■ https://www.youtube.com/watch?v=wDl-Ne4ECY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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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상  l

가수. 작곡가. 작가. 1991년 〈통일은 됐어〉 〈내가 그대를 처음 만난 날〉로 작품 활동 시작. 음반 《사람이 사는 마을》 《내 상한 마음의 무지개》 《위로하다 위로받다》 《기억과 상상》 《기억과 상상》 《그리움과 연애하다》 《나의 늙은 애인아》 등, 산문집 『이지상, 사람을 노래하다』 『스파시바 시베리아』 『여행자를 위한 에세이 北』 『대한민국 도슨트—포천』이 있음. 시노래 운동 모임 〈나팔꽃〉 동인.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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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호(VOL.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