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김윤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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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이즈 크라임
열차가 역을 무정차로 통과하네. 인근 지하상가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거였네. 열차를 기다리던 여자들이 놀라서 마스크 쓴 채 수화를 하고 “떠나간 거다”와 “머무는 거다”가 부채꽃마냥 공중에 펼쳐지네.
끄물거리는 전등이 켜지고 레일이 놓이네. 혼자 플로어 돌 듯 앞굽에 힘을 실어 걷다가 없는 세계를 바라보네. 허전한 시간 틈새로 바람이 들어차네. 역사에 쳐진 폴리스라인 접근금지, 눈 홉뜨고 멈추어버린 풍경에서 태연한 척 살았네.
열차가 여운을 남기고 기억 속으로 들어가네. 떠나고 머무는 일에 속수무책 갇혀 있는, 숨 턱 막힌 순간에야 교차하는 다른 세계. 내 유일한 재능은 시간을 되돌리는 것이었을까. 외로움으로 사랑은 지탱되고 있었네.
주상복합 건물 지하 1층 식당 원인 미상 화재 발생 수 시간 째. 양방향 무정차 통과하는 열차에 필사적으로 기억은 끌려가네. 마음속에서 도리질을 해봐도 소용없는 그 짓, 유입된 그의 연기를 빼내는 작업 중이네.
운행 재개까지 진행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는 방송이 끊임없이 재생되네. 텅 비어버린 역사에서 탈출이 가능하냐고, 다친 사람은 없냐고, 이빨에 물린 못다 한 말로 지독한 화근내가 피어나네.
열차가 조용한 세계를 갈기갈기 찢으며 도착하고 있네. 멀찌감치 서서 지켜보는 당신도 별수 없다고, 지하철 유실물 센터에 놓인 낡은 물건처럼 나와 같은 구간에 들어와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생을 리플레이하는 녹음기로 누군가 반복하네. Love… is… crime… Love… is…

김윤이 ■
200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흑발 소녀의 누드 속에는』 『독한 연애』 『다시 없을 말』이 있음.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20년 11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