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 저자 | 이병일 | ||
|---|---|---|---|
편경
ㅡ 전쟁이 나면 편경을 가장 먼저 숨겨라*
이것은 ‘ㄱ’모양의 옥돌인데 화음이 115°로 휘어져 있으면서 강약이 교차하는 예악기(禮樂器)이기도 하다. 무슨 술 이름 같지만 이것은 황종, 대려, 태주, 협종, 고선, 중려, 유빈, 임종, 이칙, 남려, 무역, 응종, 청황종, 청대려, 청태주, 청협종이란 음계를 지녔다.
부메랑 같기도 하지만 이것은 영생을 얻고자 악기가 되었다. 돌에서 난 빛은 굼실거렸으나 음이 되지 못했고 정물이 되었다. 물고기였던 내가 옥돌에서 발견되었을 때, 웅덩이에 오래 고인 구름이 비가 되듯이 해 지는 쪽에서 온 옥돌만이 소리를 낸다. 고적감 따위는 찾을 수가 없었다.
해와 달이 훌쩍 지나가도 이것은 부식이란 말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다. 딱딱한 직립으로 공중의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차고 맑은 소리로 적신다. 눈 덮인 산을 넘는 오랑캐가 쳐들어왔을 때, 나는 우물 속에서 발견되었다. 우물이 인왕산을 올려다보는 땅에서. 물빛 먹은 돌이 악기로 몸을 바꾼 건 그때부터였다.
*『大典通編』.

이병일 ■
2007년 《문학수첩》 등단. 시집 『옆구리의 발견』 『아흔아홉개의 빛을 가진』 『나무는 나무를』 등이 있음.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20년 09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