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조성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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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등마을 들입의 살구나무 청솔 양옥
팔각 정자가 있는 마당에는
먹기와 지붕을 덮는 살구나무 한 주와 노거의
청솔 한 그루가 서 계셨다
대대로 발동기방아를 짓찧던 주인 홍여사는
분가한 아들네 따라 서울로 올라가고 가끔 임대한 집세가 밀리면
전에 없이 친절하게 살구나무 안부를 물어왔다
지금은 퇴계학이나 릴케 데카르트를 전공한 선생 몇몇이
두툼한 인문 책장에 붉은 밑줄을 그으며 살았다
밤도 와 그들을 지키며,
버려졌으나 그들에게 밥을 빌어먹는 견공과 앳된 길고양이가 더불어 살았다
코딱지만 한 미닫이창으로 내다보이는 동천의 달빛이나
북두칠성 같은 별자리들이
살구목 청솔 우듬지에 걸터앉아 쉬어가고는 하였다
쉬어 가는 길에 목젖이나 적시라고 세작의 찻물 끓는 소리가 났다
종종 살 빼려고 줄넘기를 뛰던 여학생이 무심코 떨어뜨린 시루핀 녹슬듯
산들산들 이우는 바늘이파리와 같이
저만치 떠밀려가서도 학교 밖
학교의 숫총각 문학 선생을 힐끔 훔쳐보며 살구꽃처럼 붉어지기도 했다
정자 처마 서까래 밑에 진흙집을 짓던,
멱 붉고 등이 검푸른 새도 자주 깃들려 왔으나 그걸 알고
잔뜩 웅크려 매복하던 길고양이
재게 물어드린 것도 여러 번 보였다
살구꽃 저물듯 몇 군데 자리가 비긴 했으나 어느새 푸른 열매 맺듯
그냥 풋풋하게 맑았다 때때로
조붓한 방의 주인이 들고 났으나 마냥 짙푸르렀다

조성국 ■
1990년 《창작과비평》 등단. 시집 『슬그머니』 『둥근 진동』 『나만 멀쩡해서 미안해』 등, 동시집 『구멍 집』, 평전 『청년 이철규』 등이 있음.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20년 09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