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 저자 | 정혜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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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치엘로
그것은 어린아이 머리만 했다 이게 레몬인가 천진한 아이처럼 생전 처음 레몬을 보는 것처럼
그녀의 이름이 안젤리나였던가
그녀는 별채의 집을 내어 주었고 나는 이태리 남부 이스키아섬에서 며칠을 묵었다 따스하고 낯선 친절이 천국이었을까 이스키아를 생각하면 바닷가 낭떠러지 옆에 서 있는 하얀 성당과 바람 소리가 들려온다
가파른 화산섬에서 파란 하늘과 잇닿은 파도 속으로 곤두박질하는 하얀 날개가 떠오른다
햇살일까
지리일까
거리일까
시력의 차이일까
레몬을 생각하면
내가 그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기 주먹만 했다가 아기 머리만 했다가
아주 멀리 사라졌다가
그런 것 같다
이태리 사람들이 서너 시간 먹은 만찬을 계속하기 위하여 레몬치엘로를 마시고 다시 만찬을 이어가는
레몬은 레몬이고 치엘로는 하늘인데
레몬 껍질의 화학 작용은 사람과 만나서 레몬하늘이 된다는 말
입안에 침이 가득 고이는 레몬하늘
레몬치엘로를 먹으면 하늘이 노랗게 보이는걸까
이미 너무 많은 하늘
하늘은 천국일까 하늘은 레몬의 노란 신맛일까
산도가 심해서 서너 시간 먹은 음식을 금방 다 녹여버리는 레몬치엘로
나의 어리석음과 게으름과 후회마저도 그 순간 사라지는 것 같은
레몬첼로
치엘로가 아닌 첼로
그동안 레몬치엘로라고 알고 있던 이름이
레몬첼로라고 한다
그래도 내겐 레몬치엘로.

정혜영 ■
2006년 《서정시학》 등단.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20년 02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