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020
Extra Form Output
저자 김정수 

나이테

 

 

  태양은 일 년에 한 번 나무 속으로 스며든다 마지막 꽃잎이 쿵, 떨어지는 순간 꽃받침과 꽃턱 틈새를 굴뚝새처럼 통과한다 꽃잎 지는 소리가 헐렁한 새 떼의 그늘을 만든다 태양은 깃털 흐르는 감촉에 오돌톨 잠이 든다 햇빛의 먼 고행이 힘겨웠으리라 서 있는 허공을 지탱하느라 허리가 아팠으리라 보이지 않는 힘으로 야생의 그림자 찍어내는 뿌리, 수피는 갑옷보다 단단하다 나무 속에서 혁명이 일어나는 동안 불안이 숲으로 난 길을 갉아먹는다 마법에 걸린 창이 아직 오지 않은 밤을 부른다. 예기치 않은 행차에 나무가 창을 닫고 숲의 한때가 술렁인다 출렁거린다 영문도 모른 채 창문이 어두워진다 뒤늦게 태양의 잠행을 눈치챈 별들이 논병아리처럼 몰려와 소심한 가지에 다닥다닥 앉아 수다를 떤다 꽃 진 자리마다 밝은 열매가 태어난다 한동안 지상에 머문 꽃잎이 바람을 부른다 나무 속에서 눈을 뜨는 태양, 맨 안쪽에 둥글고도 환한 화인(火印) 하나 찍혀 있다 야생과 손톱 사이로 새 떼가 날아오른다 나무의 원심력으로 사과가 옷을 갈아입는다

 

 

 

 

 

 

 

 

 

 

 

 

 

 

 

 

신작시_김정수.jpeg

김정수​ ​■

1990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 『하늘로 가는 혀』 『서랍 속의 사막』이 있음. 〈경희문학상〉 수상. ​

​

​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20년 0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