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 저자 | 신미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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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하게
자고 일어나 보니
현관 밖에 나도 모르는 길이 생겼어
길은 자기 마음대로 달리고 있어
너무 빨라 따라 갈 수가 없어
아파트 뒷문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하도 빨라 어지러워
거기로 들어설 수도 없어
길은 옆으로 뻗어나가면서 또 옆으로
옆으로 나뭇가지처럼 갈라지면서
줄기차게 달리고 있어
버스 정류장에서 한강 다리까지 가는 길은
이제 보이지도 않아
수많은 가지들이 뻗어나가다 보니
어느 것이 처음의 길이었는지
알 수가 없어
한강 다리에서 물고기가 있는 데까지
간 길은
물고기를 따라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어
하늘로 날아오른 길은
하늘을 촘촘하게 가려버리고
캄캄해진 세상
꿈인지 생시인지
사실, 길은 처음부터 없었던 거야
사실, 멀쩡한 나도 처음부터 없었던 거야
이걸 정신없이 읽고 있는, 너도
그들도

신미균 ■
1996년 《현대시》 등단. 시집 『맨홀과 토마토케첩』 『웃는 나무』 『웃기는 짬뽕』이 있음.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20년 02월
